문재인 VS 윤석열 ‘배우자 리스크’

한 술 더 뜨는 영부인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 이념적으로 권위주의가 강한 나라에서는 국가수반의 배우자를 ‘국모’로 칭하곤 했다. 한국에선 ‘영부인’ ‘퍼스트레이디’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그동안 대통령을 내조하는 역할에만 국한됐던 영부인이 최근 전면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영부인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리스크’ 역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부인의 본래 뜻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영부인은 사실상 법적 명칭은 아니다. 대통령등의경호에관한법률(대통령경호법) 4조(경호대상)는 ‘대통령과 그 가족’을 경호 대상으로 명시했다.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2조(가족의 범위)는 대통령 및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가족으로 규정한다.

법에도 없는
가족에 불과

대통령경호법과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어디에서도 ‘영부인’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 배우자라는 표현이 정식 명칭에 가까운 셈이다. 역대 대통령 배우자는 김건희 여사를 비롯해 총 12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이 모두 남성이어서 대통령 배우자에 관한 주목도가 상당했다. 

대통령 배우자는 법적으로 대통령의 가족일 뿐 어떤 권한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 배우자’라는 타이틀은 현실에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존재로 큰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 최근 들어 대통령 배우자의 대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는 언론 노출 빈도가 역대 대통령 배우자와 비교해 꽤 높은 편이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리스크’라는 꼬리표가 붙은 상태였다. 선출직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윤 대통령은 대선 경선, 본선을 통해 이른바 ‘검증의 산’을 넘어야 했다. 


이 과정서 김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쏟아지면서 ‘김건희 리스크’로 통칭됐다. 첫 손에 꼽히는 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다. 권오수 전 회장 등은 2009년 12월부터 3년간 91명 명의의 계좌 150여개를 동원해 허위 주문을 반복, 2000원대 후반이었던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8000원까지 띄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과정서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 명의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의혹에 관한 재판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김 여사의 연루 의혹이 해소돼야 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특검’으로 가기 위한 동력을 얻을 필요가 있는 상태였다. 1심 재판부는 권 전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을 선고했다. 

대선후보 시절 각종 논란
조용한 내조 약속했지만…

권 전 회장에 대한 법원 판결을 두고 정치권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야당의 주장이 깨졌다고 해석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 여사를 본격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봤다. 검찰과 권 전 회장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정쟁의 불씨는 살아있는 상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김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 중 유일하게 남은 혐의다. 다시 말해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해당 의혹이 해소되면 ‘김건희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셈이고,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 프레임에 써먹을 수 있는 카드 하나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김 여사가 운영한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의 ‘대기업 협찬’ 의혹은 올해 불기소 처분됐다. 김 여사가 2018~2019년 진행했던 전시서 대기업의 협찬 의혹이 불거졌고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2020년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뇌물 혐의로 고발했다.


이 과정서 협찬 업체 대표 등은 강제수사를 진행한 것과 달리 김 여사에 관한 조사는 두 차례의 서면으로 끝나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기에 김 여사가 허위경력으로 대학 강사 등에 채용됐다는 혐의 역시 지난해 9월 불송치로 결정됐다.

허위경력 해명 과정서의 거짓말 의혹 혐의, 아파트 전세권 설정 관련 거짓 해명 의혹 등도 무혐의 처분됐다.

문제는 수사기관의 판단으로 사건이 마무리돼도 또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는 의혹이다. 마치 ‘김건희의 풍선 효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풍선 효과는 풍선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어떤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을 뜻한다. 

논란마다
정쟁으로

최근에는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으로 김 여사가 언급되고 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을 양평군 양서면서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하는 과정서 김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정쟁으로 확산됐다.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은 29㎞로 짧은 거리에 불과하지만 오랜 지역 숙원사업이다. 2017년 1월 국토부의 ‘고속도로 건설 5개년 계획’에 포함된 데 이어 2019년 4월 예비타당성조사에 착수했다. 2021년 4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이때까지 노선의 종점은 양평군 양서면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종점이 양평군 강상면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강상면 일대에 김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윤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취임 초와 맞물리는 시기다. 김 여사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종점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특혜 의혹이 ‘땅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바뀐 종점 인근에 민주당 인사의 땅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해당 의혹을 ‘민주당 게이트’로 명명하고 공세를 펼치는 중이고 민주당은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여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또 다시 정쟁의 중심에 선 셈이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수습 바쁜
대통령실

<뉴시스>가 지난 9~10일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0.8%로 나타났다. 지난 조사와 비교해 2%p 떨어진 수치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와 함께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김 여사를 둘러싼 여러 논란은 문재인정부 시절 김정숙 여사를 떠오르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배우자가 논란의 불씨를 제공하고 정치권이 반응하면서 정쟁으로 번지는 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정숙 여사는 임기 말 각종 논란에 휘말리면서 ‘비호감’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문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대선 도전 당시 김정숙 여사는 ‘유쾌한 정숙씨’로 불리며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배우자로 큰 인기를 누렸다. 김정숙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고 과거 일화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관심을 모았다. 

문 전 대통령이 임기 초 높은 지지율로 전 국민적 사랑을 받을 시기 김정숙 여사의 지분은 상당했다. 수해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자와 부대끼며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정숙 여사의 서민적이면서 적극적인 행보는 대통령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로 국민을 자극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김정숙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연이어 불거지기 시작했다. 김정숙 여사는 문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대부분 동행했다. 이 과정서 외유성 순방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김정숙 여사의 인도 순방과 관련한 논란은 정권이 교체된 뒤 열린 지난해 국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소탈한 이미지로 호감도 높았다가
옷값·외유성 순방 논란 ‘비호감’

김정숙 여사의 순방 논란은 김건희 여사의 해외순방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건희 여사의 해외순방을 문제 삼은 민주당 의원이 김정숙 여사의 순방을 감싼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의 해외순방에 문제를 제기하자 국민의힘서 김정숙 여사의 해외순방 사례를 들고 맞불을 놓는 식이다.

‘옷값 의혹’은 김정숙 여사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 논란이었다. 2018년 6월 시민단체 납세자연맹은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과 김정숙 여사 관련 의전비용 등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김정숙 여사가 옷값으로 세금 수억원을 지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국가 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 포함돼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납세자연맹은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청와대는 1심에 불복, 즉시 항소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서 15년이 지나야 열람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여기에 김정숙 여사의 이름이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방미 중인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민주당 소속 전직 양평군수가 자신의 배우자와 김정숙 여사간 친분을 강조하며 노선 변경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총장의 발언을 두고 ‘물타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전임 정부의 대통령 배우자와 현 정부의 대통령 배우자가 동시에 입길에 오른 상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닮은 꼴?
다른 꼴?

김건희 여사는 윤 대통령 취임 전 각종 논란에 관해 해명하면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취임 1년이 지난 현재 김건희 여사의 보폭은 누구보다 넓은 상태다. 김정숙 여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논란으로 퇴임 이후에도 문 전 대통령과 부정적인 이슈로 소환되는 중이다. 김건희 여사는 이미 김정숙 여사의 전철을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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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