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아들’ 공방전

자녀 놓고 벌이는 헛심 공방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가상자산(코인) 논란이 여의도 정가서 끊임없이 터진다. 이번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아들이 문제다. 김 대표는 아들이라는 역린을 건드리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아들을 걸고 넘어졌다. 서로 물타기 중 한쪽에선 완벽히 동의하는 척 하고, 다른 한쪽에선 이 사태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만 하고 있다. 

이번에는 아들 논란을 두고서 여야가 시끄럽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으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온갖 공세를 당했다. 김 의원의 탈탕까지 이끌어냈다. 결국 정치권의 코인 논란은 여당인 국민의힘으로 확전됐다. 이번에는 김기현 대표의 아들이 블록체인 업체에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지도부
리스크

민주당도 즉시 공격을 가했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김 대표가 단순 직원이라고 해명했는데, 최고운영책임자(COO)다. 대표급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상파악을 위해 민주당은 가상자산조사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할 계획이다. 

물론, 근무 자체만으로는 논란거리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대체불가토큰(NFT)과 게임 관련 회사의 억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부분에 더해 해당 회사가 러그플, 즉 ‘먹튀’ 논란이 있던 곳이라는 점이다. 

앞서 김 대표의 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블록체인 회사의 NFT 프로젝트가 과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해당 NFT는 메타버스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아바타 NFT로 소개됐다. 일반 투자자 대상 민팅서 완판 기록을 세울 정도로 유망한 NFT로 꼽혀왔다. 원화로 따지면 16억~17억원상당을 판매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회사가 1년 가까이 약속된 로드맵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삼았다. 또 담당 팀원 규모를 축소했다며 먹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이 회사는 일부 투자자들의 주장일 뿐이라며 논란에 대해 일축했지만 러그플 의혹은 김 대표의 아들 발언서도 확인 가능하다. 

김 대표 아들이 지난해 2월, NFT와 관련한 음성채팅 프로그램에 남긴 글이 화근이 됐다. 아들 김모씨는 “불장이 다시 왔을 때 다바로 인생 엑싯(탈출)해야죠”라고 언급한 것. 즉 상승장일 때 한 방에 인생을 역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엔 여러 공격들이 들어온다. 김 대표가 직접 나서 아들의 가상자산을 공개하라며 옥죄고 있다. 또 민주당은 아들의 회사가 전무투자사 해시드의 자회사인데, 해시드는 수조원대 코인 사기 행각을 벌인 테라, 루나의 초기 투자자로 유명하다고 꼬집었다.

앞서 김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이었던 2021년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주장한 바 있어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가상화폐가 불안한 청년들의 자화상”이라며 “투자자 보호장치부터 준비하고, 과세 시점도 유예해야 한다”고 가상화폐 과세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김 대표 아들은 SNS와 링크드인, 유튜브에 출연했던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아들이 봉급을 받는 중소기업의 회사원일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공격 들어오자 다시 아들로 역공
신고 ‘본인’만 있어 사실상 꼼수

앞서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도 아들이 단순 회사원이라고 해명했으나 ‘50억 퇴직금’ 논란이 일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던 바 있다. 


지난 15일, 김 대표는 상황이 다급해지자 아들의 가상자산 보유 내역을 여야 합의로 처리한 국회법과 공직자윤리법 절차에 따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향해 김남국 코인 논란을 감추기 위한 물타기라고 몰아갔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질의응답 과정서 해당 논란에 대한 질의를 받자, 오히려 ‘NFT가 코인이냐’며 되물으면서 즉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 전 있었던 국회의원 가상자산 소유 현황 및 변동내역서 발견됐다. 국회사무처가 지난 9일, 국회의원 가상자산 등록 안내서를 각 의원실에 배포했다. 이번 달 말까지 가상자산 보유 내역을 모으기로 했다. 

여야 의원들은 21대 국회 임기 시작인 2020년 5월30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가상자산 소유 현황과 변동내역을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세부 내역은 가상자산 거래일자, 거래 비용, 거래 상대 등이 포함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가상자산 공개 대상이 본인으로 한정돼있다는 점이다. 

가족은 등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공직자 재산신고는 본래 직계존비속으로 법률화돼있는데, 공직자윤리법 제3조, 제5조, 제6조에 따라 공개 의무가 있다. 즉, 가상자산 공개 시 본인으로만 한정해 양당이 가상자산 등록에 합의한 셈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게다가 국회의원 가족의 경우는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 재산등록을 하도록 공개 시점이 미뤄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 대표 아들이 이미 가상자산을 팔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현재로선 가상자산 보유 논란이 불거진 NFT 외에 그의 아들이 다른 가상자산을 얼마나 보유했는지 알 방법이 없는 셈이다. 

국회법에 따라 독립생계자일 경우 고지를 거부하면 공개할 의무도 없어진다. 실제 김 대표는 올해 아들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던 만큼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이번 기회에 소속 의원 전원이 국회의원 가상자산 전수조사를 위한 전원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 절차를 마치며 국민의힘을 더욱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 같은 행위도 요식행위에 그칠 수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정보 제공 동의서라는 게 문서 양식이 있긴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양식이 다 다르다”며 “(민주당이)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힌 수준이고, 해당 동의서로 실제 조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회사마다 양식이 달라 어떤 분야는 빠져 있는 등 제각각인 셈이다. 한 의원실의 경우 직접 양식을 만들어 제출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게 ‘정치적 보여주기’가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다른 국회 관계자도 “요식행위일 수 있다. 국민의힘도 이를 알고 실효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 동의서를 내지 않았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의원실서 만든 형식을 윤리감사관실서 만든 것처럼 의원들에게 보내면 동의서를 보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또 회사 내에서 정보를 받으려면 저마다 동의서를 내야 한다. 현재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동의서만 제출해놓은 상태라 실효성이 없는 셈이다.


먹튀 논란
둘 다 위험

그러나 현실적으로 김 대표 아들 논란이 커져버린 까닭에 민주당의 주장은 힘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아직까지도 동의서 제출에 유보적인 태도다. 전수조사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달까지 입법 절차인 가상자산 신고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전수조사 반대 이유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문재인정부 인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포함시켰다. 

채택된 결의안은 여야 합의 사안이다. 국민의힘서 유일하게 제출한 인사는 안철수 의원뿐이다. 이런 탓에 논란은 국민의힘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론 민주당의 한발 앞선 조치가 먹혀든 셈이다. 

현재 청년층은 일시적이나마 국민의힘에 지지를 보내는 중이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전수조사로 자꾸 시간을 끌 경우인데, 전 위원장이 물러나고 난 뒤 뒤늦게서야 전수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아들 논란이 더 확전될 경우 걷잡을 수 없게 돼 당 차원서 대응책을 고심해야 한다. 

전수조사 역시 여야가 합의한 사안이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도 “(가상자산 전수조사는)우리 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다”고 언급했었다. 


양당이 가상자산으로 공방을 벌이던 중 김 대표 아들이 공격을 받자 국민의힘은 반대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아들을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다.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다. 앞서 이 대표 역시 아들 논란서 자유롭지 않다. 아들 이모씨가 성매수와 도박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바 있다. 

민주당 조사 응하는 척 요식행위
앞으로 더욱 대화 단절될 가능성

해당 논란은 대선 기간인 2021년 터졌다. 이씨가 미국에 서버를 둔 한 온라인 포커 커뮤니티 게시판에 200개 정도 게시글을 올린 게 문제였다. 해외 포커 사이트의 게임머니를 거래하자는 글도 다수 올렸다. 또 스스로 서울과 경기도 소재의 불법 도박장을 방문했다는 글도 포착됐다. 

민주당은 2019년부터 2020년 7월까지 1년 반 동안 도박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즉시 조사팀을 꾸렸다. 자체조사를 통해 이 대표의 아들이 한 사이트서 2020년 7월까지 도박했고, 포커를 쳤다며 시인했다. 성매수 의혹도 이씨가 “특정 마사지 업소가 위치한 지역과 상호 중 일부를 언급하며 다신 안 가겠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작성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해당 업소 이용자들이 여러 커뮤니티에 성매수 후기를 퍼다 나르면서 이씨 역시 성매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게시글들은 모두 삭제됐다.

이 대표도 즉시 “아들이 쓴 글이 맞다. 다시는 해당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재발 방지와 함께 머리를 숙였다. 아들 역시 입장문을 내고 속죄의 시간을 갖겠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성매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상습도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성매매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로 확대됐다. 경찰은 성매매 혐의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검찰의 재수사 요청 및 보완수사까지 이뤄졌다. 경찰은 성매매 의혹 사건에 대해 혐의를 증명할만한 새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기존 불송치 결정을 유지했다.

이처럼 아들이라는 역린을 건드리자, 양당의 분위기는 한층 더 냉랭해지는 모양새다. 결국 가족 리스크가 당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양상이다. 이런 탓에 TV 토론회와 관련된 협의가 난항을 맞고 있다. 회동 논의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정책 대화를 하자며 이번에는 손을 내미는 듯 보였으나,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껏 지도부의 논란은 수차례 있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명이 징계를 받았고, 재보궐선거까지 이뤄졌다. 

이제는 양당의 아들 공방으로 이어져 당 대표 리스크가 재차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도부 수장의 리스크가 커지자 양당 모두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다. 

너나 나나
가족 숨기기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양당 모두 당 대표 리스크가 터진 꼴이다. 이런 탓에 앞으로 토론은 물론 대화도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지도부 리스크가 아니라 당 대표 리스크로까지 확전돼 논란이 가라앉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흔들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정부 내정자도… 아들 학폭 논란

새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특보는 이와 관련해 내정되기 전에 입장문을 내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고, 외압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피해 학생과 화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는 4명으로 ‘피해자로 몰지 말라’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3명의 입장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특보가 화해했다고 밝힌 피해자도 1명뿐인 가운데, 윤석열정부는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커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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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