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클럽’ 사라진 권순일 전 대법관 나비효과

쏙 들어간 ‘재판거래’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정치권은 물론 수사기관, 사법부 전부 발칵 뒤집혔다. 이미 측근으로 분류된 사람들 몇 명은 구속됐고 일부는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비효과’의 첫 바람을 일으킨 인물은 조용하다. 권순일 전 대법관 이야기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사건과 관련해 ‘50억 클럽’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뇌물 의혹과 관련해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재점화됐다. 특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해당 판결에 대해 직접 언급하면서 쟁점으로 떠올랐다. 

돈의 성격
뇌물 쟁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지난 8일, 곽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벌금 800만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는 무죄, 곽 전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공여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남욱 변호사는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첫 판결이 나온 터라 관심이 높았다. 

쟁점이 된 부분은 ‘50억원’의 성격이다. 곽 전 의원은 2021년 4월 화천대유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아들 병채씨의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원(세금 등 제외 25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 돈을 뇌물로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곽상도 피고인의 아들 곽병채에게 화천대유가 지급한 50억원은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면서도 “50억원이 알선과 연결되거나 무엇인가의 대가로 건넨 돈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곽상도 피고인이 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정이 있지만 결혼해 독립적 생계를 유지한 곽병채가 화천대유서 받은 이익을 곽상도 피고인이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곽 전 의원의 50억원 수수 의혹에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여론이 들썩였다.

한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 그 정도 상황이 있었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에 누가 동의하겠느냐. 저도 동의하지 못하겠다”면서 “항소심서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말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곽 전 의원의 1심 무죄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묻자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곽상도 전 의원 ‘무죄’
다른 사람도 영향 가나?

곽 전 의원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판결이 소위 ‘50억 클럽’ 멤버로 알려진 인물에 대한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 50억 클럽 멤버들은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두고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50억 클럽 멤버로 거론되는 인물은 곽 전 의원, 박영수 전 특검, 권순일 전 대법관, 최재경 전 대통령 민정수석, 김수남 전 검찰총장, 홍선근 전 <머니투데이> 사장 등 6명으로 홍 전 회장을 제외한 5명이 법조계 인사다. 이 가운데 재판까지 간 건 곽 전 의원이 유일하다.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권순일 전 대법관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이후 화천대유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월 1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대장동 사건보다 권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을 중하게 본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JTBC는 2020년 3월 김만배씨와 이성문 전 화천대유 대표, 정영학 회계사가 만나 나눈 대화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재판 관련 내용의 대화였다. 이 대표는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인 때였다.   

6명 가운데
1명만 수사

김씨는 이날 대화에서 이 대표의 재판 정보를 줄줄 꿰고 있는 듯한 말을 한다. 이 전 대표가 “이재명 시장은 선거 지나고 한 6, 7월에 선고 나죠?”라고 묻자 김씨는 “선거 끝나야 돼”라고 답했다. 또 “전원합의체 안 가고 소부서 아직 1차 보고서도 안 갔고 인제 형사조 공동연구관이 이번에 바뀌어서. 어쨌든 바뀌면 기록을 보는데”라고 재판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김씨가 언급한 재판 관련 내용은 법원 내부서도 알기 힘든 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재판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모두 비공개다. 그럼에도 김씨는 보고서의 보고 여부, 대법원 연구관 교체 등에 대해 말한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김씨가 이 같은 말을 하기 전 권 전 대법관을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서 대법관 7대5로 이 대표에 대한 ‘무죄 취지’의 선고가 나왔을 때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사회생한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대선서 윤석열 대통령에 지긴 했지만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가 ‘링’에는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 셈이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9~2020년 대법원 출입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2019년 7월16일부터 지난해 8월21일까지 8차례 권 전 대법관실을 방문했다. 이 대표의 대법원 판결 전후다. 

고비마다
방문했다


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2020년 6월15일 이 대표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되고 난 다음 날, 권 전 대법관을 찾아갔다. 같은 해 7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 다음 날도 김씨는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마지막 방문 시점은 2020년 8월21일. 이후 같은 해 9월8일 권 전 대법관은 퇴임했다. 권 전 대법관은 두 달 뒤인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을 맡았다가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임했다. 고문료를 받으면서 변호사로 등록하지 않아 변호사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문제를 제기한 전 의원은 “김씨의 방문일자는 이재명 대표(당시 경기도지사)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일, 선고일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며 “이 대표를 생환시키기 위한 로비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씨 측은 “2019년 2월께 법조팀장에서 부국장 겸 법조 선임기자로 발령나면서 10여년간 출입했던 대법원 기자실을 떠나게 됐는데 그 이후에도 10여차례 대법원 청사를 방문한 적은 있다”며 “방문 목적은 대부분 청사 내 근무하는 후배 법조팀장을 만나거나 단골로 다니던 대법원 구내 이발소 방문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권 전 대법관과 동향이라 가끔 전화하거나 방문해 만난 적은 있어도 재판에 관련된 언급을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화천대유 고문으로 1500만원
이재명 재판 때 김만배 방문


권 전 대법관은 2014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2017년 제20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선관위원장 취임에 대해서도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대법관 임기 종료 후에도 선관위원장직을 유지하려 해 논란을 빚었다.

이를 두고 정치적 중립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논란이 일자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9월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 뒤로 화천대유 고문 활동을 하다 대장동 사건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말 그대로 ‘두문불출’ 상태로 보인다. 다만 언론 보도를 통해 김씨의 육성이 나오면서 권 전 대법관을 비롯한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검찰의 칼끝이 아직 권 전 대법관을 향하고 있지 않지만 수사가 본격화되면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여기에 50억 클럽 사건을 두고 ‘특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을 함께 진행하자는 입장을 내세우는 중이다.

곽 전 의원 판결을 두고 국민 여론이 들끓자 민주당이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일단 정의당이 먼저 물꼬를 텄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50억 클럽은 전·현직 정권과 유착된 거대 양당의 정치인이 법조계, 언론계와 얽히고설켜 화천대유의 첫 활동자금을 만들었음에도 수사 선상에 오른 건 아들의 퇴직금 문제가 불거진 곽상도 전 의원뿐”이라며 “이제 검찰, 사법부의 무능과 제 식구 감싸기로 진실을 감춘 화천대유 50억 클럽에 대한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검 가나
장관 반대

한 장관은 특검 도입에 대해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곽 전 의원에 대해 새로운 범죄사실을 찾는 것이라면 특검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이 사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기 위해 특검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구조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수사 의지나 능력이 없을 경우 도입하는 제도”라며 “현재 서울중앙지검 송경호 수사팀이 수사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권순일 방지법’ 나올까

변호사 등록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권순일 전 대법관의 변호사 등록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을 두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재발을 막기 위해 ‘권순일 방지법’을 제안했다. 

앞서 등록심사위원회는 지난달 22일 권 전 대법관에 대한 변호사 등록 여부를 심의한 후 등록 거부 안건을 부결하기로 결정했다.

등록심사위는 변호사법 10조에 따라 판사·검사·교수·언론인·변호사 등 외부 인사로 구성된 독립기구다.

변협,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변호사 등록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돼 위원회에 회부된 사안을 심사·의결한다.

변협은 “권 전 대법관은 두 차례에 걸친 변호사 등록신청 자진철회 요구에도 소명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협회는 부득이하게 등록심사위에 안건을 회부했다”며 “등록심사위의 심사 규정이 제한적이고 법원도 협소한 해석 기준을 적용해 판단하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이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변협은 변호사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사에 대해서는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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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