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또 논란’ 김명수 대법원장 지난 5년 풀 스토리

문정부 신데렐라, 윤정부 천덕꾸러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법원장은 국회의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5부요인으로 불린다. 사법부 최고 상급기관인 대법원의 수장이다. 2017년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일요시사>가 김 대법원장의 지난 5년을 훑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와 함께 사법부 양대 최고 법원이다. 대법관 수는 총 14명으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12명의 대법관이 상고심(법률심)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장은 사법행정업무만 맡는다. 

사법부 수장
5부 요인

2017년 9월부터 대법원을 이끌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문재인정부 ‘신데렐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장을 맡았다가 국정감사 발언 이후 한직으로 밀려났다. 문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승진한 뒤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바 있다.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때 김 대법원장은 춘천지방법원 법원장이었다. 대법원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김 대법원장의 지명은 ‘파격’으로 여겨졌다.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2기)보다 무려 13기수나 낮고 대법관 13명 중 9명이 김 대법원장보다 기수가 높아 ‘기수 파괴’라는 반응도 이어졌다.

문정부 청와대는 “인권 수호를 사명으로 삼아온 법관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를 배려하는 한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틀을 다진 초대회장”이라며 “국제연합이 펴낸 인권편람의 번역서를 출간하고 인권에 관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법관으로서 인권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지명 당시 김 대법원장은 “법원이 처한 현실이나 상황이 대내외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국민과 법원 구성원의 수준에 맞는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일선 재판 현장에서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례적인 상황이라 걱정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의 지명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문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가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 지명 당시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박근혜정부 ‘양승태 대법원’에서 시작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한창 번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 행사를 법원행정처 소속 고위 판사가 부당하게 축소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법원행정처에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소집된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법원장서 대법원장 직행
사법개혁 적임자 vs 코드 인사

반면에 대법관 경험이 없는 대법원장이라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은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과 3, 4대 조진만 대법원장 등 2명을 제외하고 49년 만에 처음으로 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케이스다. 당시 야당에서는 이 부분을 문제삼아 김 대법원장의 인선이 문정부의 ‘코드 인사’라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력이 도마에 올랐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화국에서 임명된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서명운동을 진행한 ‘제2차 사법파동’ 이후 설립된 법관 모임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법원 내 학술단체로 사상 최대 규모라고 전해진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대법원이 안팎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17년 9월26일 김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정점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구성원들과 어울려 함께 소통하는 모습에서부터 사법부의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일성을 남겼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이제 9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쪽으로 쏠린다. 임기 중 불거진 코드 인사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거짓말 논란’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사법부 독립 등 사법개혁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무색해졌다. 

지난 5일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제기됐다. 법관회의는 전국 각급 법원을 대표하는 120여명의 판사가 사법행정을 논의하고 대법원장에게 건의하는 조직으로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인 2017년 상설화됐다.

신뢰 회복
실패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코드 인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왔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제도로 2019년 처음 도입됐다.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가운데 지방법원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인선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2~4명의 추천 후보 가운데 최다 득표자를 공개하지 않고 대법원장이 법원장을 결정하는 부분이 문제로 떠올랐다.

앞서 4월에 열린 법관회의에서도 코드 인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 당시 법관 대표들은 ▲일부 법원장의 이례적인 3년 재임 ▲특정연구회 출신의 서울중앙지법 발령 등을 거론했다. 사법 농단 의혹 재판을 맡았던 윤종섭 부장판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가 3년 근무라는 관행을 깨고 각각 6년, 4년간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한 점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 내년 전국 20개 지방법원으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확대 시행하기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법원장 후보자에서 배제하는 ‘원천 봉쇄 규정’을 만든 사실이 드러났다. 불공정 인사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법원은 지난 10월31일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운영 등에 관한 예규’를 신설했는데 법원장 후보 자격을 ‘법조 경력 22년 이상, 법관 재직 10년 이상인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제한했다. 기존에 지방법원장이 될 수 있었던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법원장 진출이 막힌 셈이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이하 한변)은 법원장 후보추천제 확대 시행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배제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변은 지난 8일 “추천제는 이미 인기투표제로 전락해 법원을 선거판으로 만들고 직업적 양심이 따르는 법관이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부작용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상가상 그간 대법원장에 대한 내부 견제자 역할을 해오던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법원장 후보 추천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는 것은 법원장 알박기 인사를 통해 사법의 정치화를 가속하겠다는 의도”라며 “이는 추천제와 결합해 법원 권위와 신뢰 추락, 재판의 형해화를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짓말 논란
리더십 붕괴


판사 탄핵 관련 거짓말 논란은 김 대법원장을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국민은 물론 법조계의 신뢰를 크게 잃은 사건이기도 하다. 거짓말 논란은 지난해 2월 처음 불거졌다. 당시 국회에선 사법 농단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던 부산고등법원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이 추진 중이었다.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 추진이다. 

임 부장판사는 2020년 5월 사표를 제출했는데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 탄핵 추진을 언급하면서 수리를 거부했다고 폭로했다. 김 대법원장이 당시 정치 상황에 휘둘려 자신의 사표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임 부장판사의 주장에 대법원이 직접 나서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당시 상황이 담긴 녹취가 있었던 것. 

당시 녹취에는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탄핵이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은데, 일단 정치적인 그런 것은 또 다른 문제니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삼권분립이 확립돼있고 사법부의 수장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판단한 부분에서 비판이 잇따랐다.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망신을 당한 김 대법원장은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지난해 5월경에 있었던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녹음자료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임기 9개월 남아
부정평가가 대세

대법원장 공관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에 거액의 예산을 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의혹은 2019년 감사원이 시행한 대법원 재무감사결과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당시 감사원은 2017년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시행된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사업에 4억70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이 전용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9년 11월 전상화 변호사가 이 사건과 관련해 김 대법원장을 고발했다. 경찰은 지난 9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국고 손실 혐의로 고발된 김 대법원장 사건을 각하하고 불송치했다. 절차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예산을 개인적으로 착복하거나 횡령하는 등 불법적으로 쓰이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땅콩 회황’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2017년 12월 대법원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제는 그 직후인 2018년 초 대법원 공관에서 한진 법무팀이 만찬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한진 법무팀에는 김 대법원장의 며느리인 강모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행위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미 김 대법원장 후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제도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고, 외부에서는 리더십이 붕괴된 수장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교체된다. 사법부 대변혁이 예고돼있는 상황. 특히 내년 9월 신임 대법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사법 지형도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취임한 오석준 대법관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음 누구?
후임에 관심

오 대법관은 윤석열정부 첫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향후 사법부 인적구성 방향을 예측해볼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진다. 그는 보수나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면서 현재 진보 우위의 대법원이 윤정부 기간 내 서서히 보수 우위로 변모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김 대법원장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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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