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는' 농협 태아보험의 함정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4.08 10:54:44
  • 호수 1369호
  • 댓글 2개

약관에 없는 ‘제3자 의료자문’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뱃속 아기들의 3명 중 2명은 태아보험에 가입한다. 이는 선천성질환과 출생 과정의 위험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약관상 문제가 없는데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은 보험사가 약관을 제멋대로 바꿔서 보험비를 못 타게 만들고 무조건 시간을 끌어 지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태아보험은 기본 어린이보험에 태아 보장 특약이나 산모 보장 특약을 추가해서 가입하는 구조다. 여기서 태아 보장 특약은 아이가 태어난 후 1년까지가 만기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미리 가입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발생하는 질병과 상해사고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이 보험은 아기가 태어난지 1년 이후에 어린이보험으로 자동 전환된다.

한 달 96만원

태아 보장 특약은 ▲저체중 입원 ▲신생아 질병 입원 일당 ▲장애 출산 담보가 보장된다. 어린이보험으로 전환되면 ▲선천성질환 ▲암 ▲뇌혈관 ▲허혈성 진단비 ▲상해·질병 일당 및 후유장해 ▲기타 각종 진단비 ▲수술비 보장 등이 있다.

어린이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것은 ▲Q00-Q04 코드의 선천성 뇌질환 ▲F04-F99의 정신 및 행동장애다. 즉 장기간 치료를 하더라도 효과를 볼 수 없는 자폐증과 같은 질환은 보장하지 않는다.

이를 판단하는 것은 진단서에 기록된 질환코드다. 하지만 보험을 가입한 부모들은 이런 기준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A씨는 아기 B를 임신했을 때 ‘NH농협 손해보험 무배당꿈모아어린이보험(이하 보험)’에 가입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이었다.

B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잘 컸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말이 늦었다. 어린이집 교사가 A씨에게 B가 말하는 것이 느리고 한 글자씩 단어 구사를 하는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동네에 실손보험 처리가 되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B의 진단명은 ‘기대되는 정상 생리학적 발달의 상세 불명 결여’로 ‘언어발달지연’에 해당했고, 진단 코드명은 ‘R629’다. 

병원 치료비는 꽤 비쌌다. 언어치료 수업은 1회에 8만원이고, 의사는 주 3회 수업을 권장했다. 한 달 치료비만 96만원. 하지만 언어발달지연은 아기가 하루라도 어릴 때 신속히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아기마다 언어발달 시기는 다 다르지만, 언어발달지연이 있는 아기는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래와 비슷하게 언어능력을 올려주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A씨의 경우는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치료비의 80%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B가 35개월이었던 지난해 3월부터 치료를 시작했고 꾸준히 언어치료 수업을 받았다.

치료비 80% 보장받고 언어치료 수업
6개월 후 돌연 실사 조사…지급 중지


B는 치료에 잘 적응했다. 언어치료에 핵심인 라포 형성도 잘 됐고, B의 언어치료는 순조로웠다. 그러던 와중 지난해 10월쯤 NH농협 손해보험이 A씨에게 연락을 했다. 보험사에서 실사조사를 나온다는 것이었다.

설계사는 A씨에게 “실사조사는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그냥 넘어간다. 대신 ‘제3자 의료자문’을 동의해달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제3자 의료자문’은 B의 보험비를 받기 위해 B의 진단서류를 보험사가 지정한 다른 병원 의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약관에는 이 항목이 없었다. A씨는 B를 직접 보지도 않은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고 여겨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보험사는 A씨에게 ‘제3자 의료자문’을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비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기대되는 정상 생리학적 발달의 상세 불명 결여’ ‘R629’ 진단서로는 보험금 심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6개월에 60회 치료를 받았어도 치료가 안 됐다. B는 언어지연이 아니다. 다른 코드 질병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보험사에 ‘제3자 의료자문’을 동의하면 어떤 병원에서 자문을 받게 되는지 물었지만, 보험사는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NH농협 손해보험 꿈모아어린이보험의 특별약관 제4관 보험금의 지급 제8조 보험금의 지급 절차에는 보험금 지급 사유에 대해 합의하지 못할 때에 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약관에는 ‘보험수익자와 회사가 함께 제3자를 정하고 그 제3자의 의견에 따를 수 있다. 제3자는 ‘의료법’ 제3조(의료기관)에 규정된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 중에서 정하며, 보험금 지급 사유 판정에 드는 의료비용은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고 명시돼있다.

약관 어디에도 ‘제3자 의료자문동의’에 해당하는 설명은 없었다. 보험사도 해명하지 않았다. A씨는 ‘제3자 의료자문’을 하지 않았다. 

‘제3자 의료자문’을 동의했다가 아이의 진단 코드가 R 코드에서 F 코드로 바뀌었다는 걸 주위 엄마들에게서 많이 들었고, 환자를 의사가 직접 보는 것과 의무기록지만 보고 진단한 소견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 코드를 받으면 보험금은 그냥 종결된다.


“다른 의사의 진단 결과”
“보험비 안 주려고 꼼수”

하지만 치료를 마냥 늦출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올해 3월 A씨는 약관 내용을 그대로 보험사에 제3의 병원을 같이 정해서 동시 감정을 받자고 요청했다.

그러자 보험사는 A씨에게 ‘대학병원급 소아청소년과’로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A씨의 집 근처 병원에 언어 지연 관련 진료를 보는 대학병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병원은 코로나19 상황으로 환자 외 보호자 1인만 진료보는 데 입장이 가능했다. 이 소식을 들은 보험사는 “코로나19가 끝나면 동시 감정을 받자”고 말했다. 

이 과정 중 B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초진을 봤다. 대학병원 의사는 F 코드에 해당한 지능검사는 아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언어 검사만 진행됐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의미 있는 말을 인지하는 수용언어 수치는 지연이 있지만 정상이었다. 다만 발음이 많이 부족한 것으로 진단됐다.


대학병원에서 B는 ‘R478’ 코드인 ‘말하기 장애’ 진단을 받았다. B는 언어 평가상 자음 정확도 53.5%, 모음 정확도 70%가 저하됐다. 의사는 언어치료를 권했다.

해당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진단서를 보험사에 제출했지만, 보험사는 “우리와 상의 없이 임의로 받은 코드기 때문에 관련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결국 보험사와 조율에서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 말, A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다. 보험사 역시 금감원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현재 분쟁 건이 너무 많다”며 “3~6개월 기다리고 했는데, 지금은 6~9개월 기다려 달라”고 통보했다.

A씨는 현재 사비로 B를 치료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 주 1회 치료를 받다가, 치료가 늦춰지는 게 걱정돼 이달부터는 주 2회 치료로 늘린 상황이다.

“부당하다”

A씨는 “보험을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보험에 가입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이건 너무 부당하다”며 “또 내가 지금 사비로 치료하고 있고, B가 성장하면서 나을 수도 있다. 그때 동시 감정받으면 이상이 없다고 나올 수 있지 않는가. 지금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가 너무 많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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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