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험 의료자문 약관의 비밀

‘의료법 위반’ 당당한 보험사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보험회사 직원들도 보험 가입자들도 화났다. 보험 가입 시에는 없었던 약관을 들이밀어 고의로 보험금을 미지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회사 직원들은 “이런 식이면 누가 보험에 가입하느냐”고 토로한다. 하지만 보험회사가 제시한 약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료법 위반사항이 확인된다.

보험은 ▲예기치 못한 사고 ▲큰 질병에 노출 ▲은퇴 후 소득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가입한다. 보험상품 중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필수로 가입하는 상품이다. 실손의료보험은 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치료 및 약 처방을 받을 때 비용을 지원한다. 

미꾸라지

실손의료보험에 제외되는 대표적인 항목은 ▲미용 ▲성형 ▲정신질환 ▲고의적 사고 ▲치질 ▲임신 ▲출산 ▲치아우식증 ▲잇몸질환 ▲간병인 비용 등이 있는데, 보험사는 제외 질환을 계속 늘려 보험금 지급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실손의료보험은 ‘팔리면 팔릴수록’ 보험사가 손해를 보는 구조기 때문이다. 

지난해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 손실액은 1조9696억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은 1조7838억원으로 1858억원 늘었다.


손실액은 보험료 중 사업관리·운영비용을 제외한 위험보험료에서 보험금 지급액(발생손해액)을 뺀 금액이다. 그렇다고 보험 계약자들이 이익을 얻는 구조도 아니다. 소수의 가입자가 보험금의 대부분을 청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2020년 보험금을 한 번이라도 청구한 가입자는 37.6%로 1313만명이다. 가입자 10명 중 4명만 보험금을 타간 셈이다. 

이마저도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8.4%인 6조7000억원을 받았다. 이들의 평균 수령액은 514만원이다. 반면 하위 10%에게 지급된 보험금은 303억원으로 1인당 2만3100원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지급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이해되긴 하지만, 보험회사 직원들과 보험 가입자들은 보험회사의 보험금 미지급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손실액만 늘어나는 실손보험
덩달아 보험금 미지급도 늘어

27년째 보험회사 설계사로 근무 중인 A씨 역시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A씨는 2008년에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다.

14년 뒤인 지난 3월3일과 3월4일, A씨는 이틀에 걸쳐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보험회사에 수술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A씨에게 돌아온 것은 ‘보통약관 제5조(보험금 지급 사유 미합의 시 분쟁해결), 의료자문에 협조하라’는 요청문이었다.


의료자문을 받지 않으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심사를 종료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이후 보상 담당 직원과 통화하니 ‘백내장은 수정체 혼탁도 여부가 보험금 지급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의료자문’과 ‘수정체 혼탁 여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27년째 보험설계사로 근무한 A씨도 처음 들어본 약관이었다.

이 일은 비단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7일 법조계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서울고등법원은 현대해상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약관상 본건 치료(백내장 수술)는 입원치료로 볼 수 없고, 통원치료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해당 판결 이후 보험회사들은 백내장 수술을 받은 사람들에게 ‘의료자문’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같은 상황에 놓인 B씨는 이 문제를 두고 ‘의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B씨는 약관에 나오는 “본건 계약에서 실손의료비 및 질병 입원 일당이 지급되기 위해서는 질병의 진단과 함께 수술의 필요성과 직접 치료 목적이 인정돼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인정’할 수 있는 주체는 기존 보험 약관상에서 ‘보험사’가 아니라 ‘의사’다.

그러나 보험사는 환자의 진단서를 보고 병을 직접 판단한다. B씨의 약관에는 ‘고객님의 세극등(현미경 안과 검사) 영상 및 병원의 진료기록을 확인한 결과, 세극등 사진과 진료기록의 백내장 등급이 일치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당사로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기재돼있다.

보험회사 ‘셀프’ 진단 기록 
진찰 없는 의사에 자문 맡겨

여기서 말한 ‘세극등 영상 및 병원의 진료기록을 확인한 결과 부적합하다’는 ‘의료 행위’ 중 진료(진단)에 해당한다. 의료 행위는 ▲환자가 지닌 이상 상태 파악 ▲적절한 처치를 위한 근거 ▲질환명을 결정하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즉 보험회사가 B씨의 세극등 영상과 병원의 진료기록을 가지고 백내장 등급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자체가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험회사가 의료인이 아닌데 환자의 진단서를 판단하고 있는 부분이다.

무면허 의료 행위 등 금지에 관한 의료법 제27조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의료법 제87조의2 2항에는 ‘제27조 제1항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밖에도 B씨가 받은 약관에는 ‘현재 의료자문에 대한 동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약관상 지급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심사 진행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보험금 심사가 멈춘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약관상 지급 사유는 ‘진단 확정 여부’ ‘수술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B씨는 “보험회사들이 보험금을 청구하면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삭감할 명분으로 동의 없이 진료기록을 보험사 자문의에게 제공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법 17조에 따르면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만 진단서 등을 환자에게 교부할 수 있다고 나와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의료법 89조에 따라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미 2020년 금융소비자연맹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거부 및 삭감을 위해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불법 소견서를 8만건 이상 발급받고 있으며, 수수료 명목으로 연간 160억원을 넘게 지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직무유기

B씨는 “보험회사가 의료자문을 방패 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보험 계약자를 우롱하는 사기행위”라며 “악의적인 보험금 지급 거부에 대해 힘 없는 보험 계약자들이 대응할 수단은 민사소송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소송은 승소를 장담하기 어렵고 시간이나 비용의 부담이 크다”며 “보험회사의 의료자문은 사실상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다. 보건복지부는 보험회사의 불법을 인지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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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