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묻히는’ 노인 대상 성범죄 실태

“할머니는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성범죄는 피해자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악질 범죄로 꼽힌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들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이유로 피해 사실을 알리길 꺼려한다. 물론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 궁금한이야기Y ⓒSBS

지난 22일 경악스러운 사건이 전파를 탔다. 한 시골 마을의 이장이 80세가 넘은 할머니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따르면 마을 이장 박씨는 지난해 7월 85세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씨는 할머니의 신체를 만졌다. 추행은 그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수치심에…

박씨의 성폭력 사건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영상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가 강간으로 보기 힘들었다”고 답했다. 법률상 강제 성폭행, 성추행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거부 의사가 확인돼야 하는데 이러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박씨는 “노인네가 남자가 그립다고 했다. 증거는 없고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박씨의 아내도 “그 할머니가 다른 집에서도 그랬다. 돈을 뜯으려고 우리한테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할머니는 “자기는 실컷 만지다 가지. 기운이 없고 힘이 없지. 그래갖고 내가 놔뒀어. 그때는 그만 무섭고 마음으로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내 마음대로 못 해요. 팔만 안 아프면 어떻게 할 텐데. 기운이 없지. 이러니까 내가 달려들지 못했어요”라고 제작진에게 털어놨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박씨에 대한 비판은 물론 CCTV 영상을 고스란히 공개한 제작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공개한 CCTV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가 됐지만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제작진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매년 사건은 늘지만
대책 마련 지지부진

일각에서는 이날 방송이 ‘노인 성폭행’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라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인 대상 성범죄는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에서 노인 관련 문제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노인 빈곤율은 말할 것도 없고, 독거노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일이 증가했다. 문제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잠깐 관심을 받을 뿐 대책 마련에는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2015년 9월 김모씨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산길 입구에서 80대 할머니를 따라가 폭행하고 현금 등을 빼앗았다. 피해 할머니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후 도망치던 김씨는 다시 피해 할머니에게 돌아와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할머니의 옷을 벗긴 뒤 신체 중요 부위에 물체를 집어넣은 것이다.

피해 할머니는 1시간가량 쓰러져 있다가 행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2012년에는 요양원에서 상습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피해 할머니는 요양원 총무에게 9개월간 70여 차례나 성폭행당했다. 가족 없이 기초생활수급비 45만원으로 생활하던 피해 할머니는 신고하면 요양원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감췄다. 범행은 할머니의 하소연을 들은 요양원 직원이 수사기관에 제보하고 나서야 끝났다. 
 

▲ ⓒpixabay

언론보도를 통해 해당 사건들이 알려진 뒤 누리꾼의 반응은 들끓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조명이 이뤄졌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사건은 잊혔고 노인 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회의 변화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노인이 피해자인 성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60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 검거 현황에 따르면 2015~2019년 사이 총 3442건의 노인 대상 성범죄가 일어났다. 2015년 565건에서 2016년 599건, 2017년 698건, 2018년 765건, 2019년 815건으로 최근 5년간 44.2% 늘었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강간·강제추행이 3185건(92.5%)으로 가장 많았다.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이 95건(2.8%), 나체 사진을 보내는 등 통신매체 이용 음란이 128건(3.7%), 공공 화장실 등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이 34건(1.0%)이었다.

누가 노인을 그러겠어?
사회 인식에 신고 ‘뚝’

더 큰 문제는 노인 대상 성범죄는 수면 위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성폭행 피해 신고율을 10% 내외로 보고 있다. 노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 이보다 더 낮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노인이 무슨 성폭력 피해자야’라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용기 내 신고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옛날엔 강간 신고율이 10%도 안 됐다. 피해자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성범죄 피해를 당한 할머니 입장에선, 명예가 엄청나게 침해당한 것이기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애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실제 노인을 대상으로 상담해보면 경찰 신고까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이를 고려하면 드러나지 않은 노인 성폭력은 훨씬 많을 것”이라며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경찰 수사 단계부터 구체적 수사 지침이나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고, 노인들의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성폭력 피해 구제 절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궁금한이야기 Y ⓒSBS

지난해 8월 국내에서는 조용했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장년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 <69세>다. 69세 효정(예수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한다. 긴 고민 끝에 동거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효정은 치매 환자로 매도된다. 

영화는 69세의 효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 나가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과정을 부단하게 쫓았다. 여성으로서, 노인으로서, 사회에서 약자가 감내해야 할 시선과 편견에 대한 화두를 던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입 다문다

임선애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2013년 노인 성폭력 사례를 인용한 칼럼을 읽었다. 노인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사회적 편견, 이를 악용해 노인 여성을 성범죄 표적으로 삼는다는 현실이 충격적이었다”며 “성폭력 사건은 많이 영화화됐지만 노인 여성 상대 성범죄는 국내외로 거의 다뤄진 적이 없더라. 창작자로서 남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과 함께 누군가 운을 떼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했다”고 전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