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온상’ 미성년 랜덤채팅 실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9.14 11:01:55
  • 호수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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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 노리는 검은 유혹

[일요시사 취재2팀] 구동환 기자 = 온라인은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랜덤채팅에 접속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점을 악용해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들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랜덤채팅’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미성년자 범죄의 온상이었던 랜덤채팅 앱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고시됐다. 지난 10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불특정 이용자 간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랜덤채팅 앱에 대한 제재를 3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둔 후 오는 12월1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익명 보장
철통 보안

랜덤채팅 앱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앱 접속자들끼리 무작위로 일대 일 대화가 가능하므로 나이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여가부는 실명이나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인증 기능이 없거나 대화 저장, 신고 기능 등 안전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없는 앱들은 유예 기간 동안 개선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유해표시 의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성인인증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윤효식 여가부 청소년 가족정책실장은 “이번 랜덤채팅 앱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 결정을 통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화서비스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며 “랜덤채팅 앱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모니터링)을 통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 행위 등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랜덤채팅 앱은 가출청소년이 많이 사용한다. 집에서 나온 이들은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채 임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앱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정불화, 친구 관계, 연인 관계, 개인적인 고민 등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점을 이용해 청소년들을 노리는 성인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지난해 랜덤채팅 앱에서 이뤄진 2230명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미성년 이어도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등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7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상대방이 미성년임을 인지한 뒤에도 대화를 지속하는 비율도 61.9%에 달했다.

여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정원에 의뢰해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이번 조사에선 온라인서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랜덤채팅 앱의 대화 패턴과 성매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심층 분석했다.

2012년 무작위 채팅 우후죽순 생겨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 76% 웃돌아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중 ‘랜덤채팅 앱 현황 분석’ 결과 여성가족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399개 랜덤채팅 앱 가운데 77.7%가 만 18살 이상 ‘성인’ 등급으로 설정돼있으면서도 실제로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연구자가 13·16·19·23살 여성으로 가장해 랜덤채팅 앱에 접속한 뒤 조사 대상자 2230명과의 대화를 수집·분석했는데, 대상자의 10명 중 9명이 30대 이하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21.4%는 미성년자에게 대가를 제공하는 성적인 만남을 요구했다.


성적인 내용을 담은 채팅(12.3%)을 하거나 음란 사진과 영상을 공유(7%)하는 경우도 있었다.

랜덤채팅 앱은 2012년 초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랜덤채팅 앱 1세대로는 앱은 ‘심톡’ ‘살랑살랑 돛단배’ ‘부엉이 쪽지’ ‘두근두근 우체통’ ‘하이데어’ ‘1km’ 등 수십여 개다. 이들 앱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연결하는 일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 ⓒpixabay

다만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상대를 연결하거나,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또 나이와 성별 정도만 입력하면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고, 만나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하지만 이용자 중 일부가 익명성을 악용해 이들 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채팅 앱에는 본인 확인 절차가 없어 음란성 메시지나 노골적으로 성관계 상대를 찾는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보낼 수 있다.

상대방이 음란 이용자를 신고하더라도 이용제한 외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그런데 신고된 이용자가 앱을 삭제하면 기록도 지워지기 때문에 앱을 재설치할 경우 이용제한도 의미가 없어진다.

채팅 앱이 이렇게 변질되면서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사람만 이용자로 남는 상황이 됐다. 현재 각종 스마트폰 채팅 앱은 사실상 음란정보의 창구나 잠자리 대상을 찾는 도구로 전락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안드로이드 기반의 심톡 등 일부 앱은 성관계 대상을 찾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서 심톡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심톡 여자’ ‘심톡 홈런’(성관계 성공을 의미하는 은어), ‘심톡 조건’ 같은 말이 뜰 정도다. 친구에게 성매매를 시키다 구속된 오양 등이 이용한 것도 심톡이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한 만남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전화번호 외에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범죄 의도를 가지고 대포폰을 이용한다면 유일한 정보인 전화번호마저 의미가 없어진다. 

오프라인으로 만나서도 신상을 속이게 된다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범죄 노출의 우려가 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채팅으로 성인끼리 만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스마트폰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이 잠재적인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우려된다. 인터넷 남성 커뮤니티나 유흥정보 사이트에는 스마트폰 채팅으로 여성을 만난 경험담이 ‘어플 작업녀 후기’ ‘어플 홈런기’라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글을 올리는 남성은 여성을 만난 과정과 채팅 내용, 성관계 내용까지 자랑스럽게 올린다. 심지어 자신의 글이 사실임을 증명하려고 상대 여성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인증사진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나체사진이 찍히고, 그것이 인터넷에 떠돌아 피해자가 된다.
 

▲ ⓒpixabay

랜덤채팅 앱을 규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스마트폰 보급 초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선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본인 인증 조처를 하도록 하고, 청소년 성매매 암시·유발 정보를 발견했을 때 삭제 또는 전송 중지하는 의무를 규정했다. 

그러나 인터넷기업협회는 랜덤채팅이 아동·청소년 성매매 등의 범죄 통로로 이용되는 것은 본래 서비스 제공의 목적이 아닌 악용 사례 중 하나로써 서비스 자체가 불법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실시간 대화 형식의 서비스 전체서 음란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명확한 상황이 아님에도 ‘가능성’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측면으로, 이 같은 반대에 부딪쳐 랜덤채팅의 규제를 위해 제안된 아청법 일부개정안은 모두 폐기됐다. 

속고 
속이고

이 때문인지 랜덤채팅으로 인한 미성년자 성범죄는 해가 가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채팅앱이 각종 범죄의 통로가 됐다.

최근 전모가 드러난 전주 살해 사건 용의자 최신종씨는 지인 외에도 부산에 거주하는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했는데, 랜덤채팅을 통해 부산 여성을 전주까지 유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착취물 제작·유포가 드러나며 공분을 산 N번방 가해자들도 랜덤채팅을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하기도 했다. 랜덤채팅을 통해 황당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남성 A씨는 자신을 여성으로 속이며 “당하고 싶다.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후 연락해온 남성 B씨에게 아무 원룸 주소를 알려줬다. 이후 B씨는 해당 원룸을 찾아가 애먼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해 7월에는 광주서 20대 2명이 알고 지내던 미성년자 3명을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하도록 하다가 적발됐다. 미성년자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채팅앱에 접속하는 경우도 있다. 채팅앱에 접속해 여성이라고 표기만 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등 성매매 암시 글이 1분 만에도 수십 개의 쪽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서 유통되는 랜덤채팅 앱은 대략 300∼400개로 파악된다. 현재 상당수의 랜덤 채팅 앱은 특별한 아이디를 만들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회원가입 이후에는 상대방의 어떠한 인적사항도 확인되지 않으며 무작위 채팅이 이뤄진다. 최근의 앱들은 GPS를 이용해 서로 간의 거리를 알려주고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 당사자끼리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때문에 제3자의 개입이 없다. 또 한쪽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차단하면 그동안의 모든 대화가 삭제되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상의 신분으로 가입이 가능한 탓에 야한 사진과 영상, 성매매 제안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특히 일부 앱은 미성년자의 가입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매매에도 이용될 소지가 크다.

N번방·성매매 등 범죄 수단 활용
신고당해도 재설치하면 의미 없어

한 청소년 상담사는 “가출청소년의 경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같은 랜덤채팅 앱을 이용해서 나이를 속이거나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아내 성매매를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성매매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14236호)에 의거, 처벌받게 된다. 또 법 제13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이상 5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제15조에서는 알선 영업행위 등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 정보통신망서 알선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성매매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들이다.

그러나 랜덤채팅 대화 내용은 사용자가 지우는 순간 대부분 삭제되기 때문에 경찰이나 관계당국서 단속이 쉽지 않다. 또 가입 전 이용자들의 정보를 저장해두지 않는 앱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해도 수사가 어렵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런 문제점이 지속되자 송봉규 한세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조건 만남, 온라인 그루밍, 아동 성 착취, 아동 성적 학대, 디지털 성범죄 대상이 되는 ‘아동·청소년 대상 랜덤채팅’에 관한 책을 지난 5월 출간했다.

송 교수는 “성매매는 범죄이고, 성매매알선은 범죄행위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불법 사업”이라며 이뤄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 다뤘다. 송 교수는 구매자와 판매자, 성매매 알선업자와 업소 운영자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성매매 구조를 분석했다.

성매매라는 불법 사업은 인터넷,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사이버 공간(기술)으로 간판없는 공간(무점포)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진화해 사업비용과 단속의 위험성은 낮아지고 수익은 안정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이버공간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 공간에 성매매업소가 없거나 간판이 없는 공간으로 단시간에 이동하거나 오피스텔처럼 일시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형태의 성매매인 조건 만남, 다양한 마사지업, 오피, 보도방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300∼400개
간단한 개설

또 다른 합법적 사업과 동일하게 불법적 사업인 성매매알선도 사이버 공간이 현실 공간을 지배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의 분석대로 이 같은 불법적 사업영역은 10대 조직폭력배와 가출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청소년에게도 불법 기회를 줬고 인터넷 채팅 웹사이트를 시작으로 랜덤채팅 앱을 통한 아동·청소년 조건만남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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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