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물갈이’ 칼 빼든 김종인의 타깃

피도 눈물도 없는 ‘피갈이’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간판을 바꿔 달면서 쇄신 닻을 올렸다. 당은 올해 내 당무감사를 마무리하고 현역 당협위원장들을 대거 물갈이할 예정이다.  현역에는 당내 '환부'이자 콘크리트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강경보수 세력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김 위원장의 칼날은 어디까지 향할까.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정치권에선 석 달간 공들인 당명 선정과 정강정책 교체 작업으로 당 혁신의 첫 단계가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국민에게 혁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는 ‘극우’ 세력과의 절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취임 100일
쇄신 작업

당은 지난 2일, 당명을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서 국민의힘으로 교체했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함축한 것이라는 게 당의 설명이다. 다소 파격적인 당명으로, 낯설고 어색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만 신한국당, 한나라당, 자유한국당과 같이 ‘국가’를 강조한 과거 정당명과 달리 ‘국민’을 강조한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자유’와 ‘보수’ 같은 정파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 탈이념적 정당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돋보인다.

또 ‘기본소득’ 정책과 같이 중도·실용 노선을 반영한 정강정책 개정안도 채택됐다.


국민의힘은 지금껏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김 위원장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빵 먹을 자유’를 언급하며, 약자와 동행하는 당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 출범 100일을 맞이해 올린 SNS에는 4차 추경 편성과 재난지원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대한 촉구가 담겼다. 메시지만 봤을 때 여당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좌클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김종인 비대위는 대체적으로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0일간 김 위원장의 정무적 감각 능력은 크게 돋보였다. 그는 호남 수해 지역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선제적으로 방문했고, 4차 추경 편성과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5·18 묘역 방문 후 무릎 꿇고 사죄한 사례는 ‘신의 한수’였다. 호남 주민들 사이서도 호평이 나왔고, 지지율은 반등했다. 정치 관록으로서의 감각이 ‘과연 김종인’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김 위원장과 같은 대표급 인사가 추모탑 앞에서 무릎 꿇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당시 김 위원장의 깜짝 행보는 당내 인사들도 몰랐으며, 당시 묘역서 함께 동행했던 의원들 역시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무릎 꿇기에 덩달아 합류해야만 했다고 한다.

당무감사로 물갈이? 당 내홍 조짐
재보궐 잡고 대선 가려면 필수코스?

당내서도 김 위원장에 대한 호평이 나왔다. 연일 김 비대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장제원 의원 역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고, 조수진 의원도 “역시 김종인답다”며 치켜세웠다.


80세가 넘은 김 위원장이 무릎 꿇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그림이 됐다. 덕분에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8·15광복절 직전까지 상승세를 탔다. 잠시였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의 지지도를 추월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여당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여론 악화가 지지율 상승의 큰 원인이었지만, 김종인 비대위의 변화 행보 역시 보탬이 된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상승세는 광복절을 지나면서 속절없이 꺾였다. 8·15광복절집회를 이끈 극우세력 대다수가 국민의힘과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집회를 주최한 것도 아니고, 참여를 독려한 것도 아니고, 연설한 것도 아니다. 대단히 억울하다”고 밝혔지만 소용 없었다.
 

▲ 당명 개정 브리핑 갖는 국민의힘 ⓒ고성준 기자

집회금지 처분 효력을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단체 대표는 국민의힘 민경욱 전 의원으로, 그는 현재 인천 연수을의 현역 당협위원장이다. 아울러 현역인 홍문표 의원뿐만 아니라 차명진·김진태 전 의원, 유정복 전 인천시장의 참석도 확인됐다. 차 전 의원은 21대 총선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통합당 타이틀을 달고 출마했으나, ‘세월호 텐트 막말’ 논란을 일으켜 당에서 제명됐다.

무엇보다 당시 집회를 이끈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를 스타로 만들어준 건 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였다. 황 전 대표는 전 목사와 함께 지난해 청와대 앞 농성과 광화문집회를 수 차례 함께했다. 지난해 말 태극기부대에 의한 국회 점령 당시, 황 전 대표의 말에 따라 본청 곳곳서 ‘아멘’이 울려 퍼진 엽기적인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황 전 대표의 극우적 행보에 대한 잔상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국민들은 여전히 국민의힘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쇄신 카드는 총선 패배를 당한 당의 단골메뉴였지만, 계파 싸움으로 그치는 게 다반사였다. 외연 확장 역시 그렇다. 중도강화론은 MB정권서부터 제기된 내용으로, 공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의 반발이 있어 쉽게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인적 청산
피의 숙청

그렇다고 해서 김 위원장이 극우 세력과 선을 긋지 않으면,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당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절연하지 않는 한 국민의힘은 극우 정당이란 오명을 벗어날 수 없는 셈이다.

중도확장은커녕 국민의힘이 극우세력과 궤를 함께 한다는 여권의 프레임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당이 제 아무리 중도실용을 외친다고 해도,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퍼붓는 격일 뿐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절벽 끝에 서 있다. 지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 총선까지 내리 4연패를 했다. 내년 4월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재보궐선거까지 패배하면 2022 대선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셈이다. 심지어 내년 재보궐선거는 국민의힘이 우위를 점한 판이다.

여권 인사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이마저도 패배할 경우 당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다.

국민의힘은 올해 중으로 당협위원장을 물갈이하는 당무감사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선거 주자로 뛰는 후보자들을 뽑는 데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당협위원장을 교체한 후 선거를 승리로 이끌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당무감사 대상자는 전국 지역구 253곳 가운데 원외인사가 당협위원장으로 있는 147곳과 공석인 22곳이 교체될 전망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84곳은 제외된다. 최대 169곳이 교체될 예정으로, 전체 지역구의 3분의 2(66.8%)에 육박하는 수치다.

정치권에선 당무감사가 인적 청산의 태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인적쇄신을 통한 당 혁신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줄 기회라는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지지율 반등으로 인해 김 위원장의 칼날이 어느 때보다 예리하다. 김 위원장이 극우세력과 같은 당의 오래된 환부를 도려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이들과의 선 긋기에 나설 뜻을 공공연히 표명해왔다. 특히 이번 8·15광화문집회에 참여한 김진태·차명진·민경욱 전 의원은 숙청의 첫 타깃이 될 공산이 높다. 이번 집회는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의 기폭제가 되면서, 당내서도 이들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주자 없는 야
셀프 대망론?

대표적 소장파인 하태경 의원은 “썩은 피를 내보내고 새 피를 수혈해야 보수가 건강해진다”고 주장했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집회 참석자들을 두고 “심리 진단을 한번 해봐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의 핵심에는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황교안 전 대표가 있다. 그는 21대 총선서 패배한 후 현재 종로서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실질적인 당협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황 전 대표가 종로서 기반을 잡아 남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황 전 대표는 현재 총선 참패의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강경보수파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당을 ‘우클릭’했다. 이로 인해 극우세력으로 불리는 태극기부대가 대다수 입당했고, 이들은 당협위원장을 맡아 21대 총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황 전 대표가 콘크리트 지지층들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도층의 목소리가 닫힌 셈이다.

황 전 대표 역시 공식적인 당협위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당무감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 참패의 주역임에도 그는 여전히 당내 유력 대권주자로 꼽힌다. 아울러 총선 직전 개혁보수 세력인 유승민 전 의원의 새로운보수당과 합치며 보수진영의 통합을 이끌었던 공로도 있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영입을 주도한 인물이 황 전 대표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칼날이 그를 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이도저도 못하는 ‘계륵’이 된 셈이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과 황 전 대표 사이의 계파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을 찬성했던 이들은 당내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온건 보수 세력들이었다. 출범 전 내홍을 겪을 당시 이들은 이대로 전당대회를 개최할 경우, 또다시 강경 보수파들이 당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당의 체질개선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국민의힘 내 강경 보수파는 전당대회론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당내 혁신을 위해 칼자루를 휘두를 경우, 이들의 입지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만약 김 위원장의 당무감사로 당내 반발이 심해질 경우, 황 전 대표와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또다른 세력이 구축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친황계 향하나?
반기 세력과 전면전

국민의힘은 이달 중으로 당무감사를 실시하고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를 구성하는 등 당 조직 혁신 작업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강특위는 당무감사의 자체 기준에 따라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 쇄신의 키를 쥘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조강특위 인선 및 조직을 물갈이하는 과정서 당내 잡음이 날 공산도 높다.

장제원 의원은 지난달 30일 SNS를 통해 “낙선의 아픔을 겪은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피갈이’와 ‘피의 숙청’ 대상이 될 것”이라며 “진정으로 반성을 바탕으로 개혁의 칼을 휘두르고 싶다면, 21대 총선 공천자 전원의 공천 과정을 정밀 감사해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그 어떤 권력자도 원천적으로 사천(私薦)을 자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공천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 발언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고성준 기자

김종인 비대위가 지난 21대 총선 참패의 원인을 중앙당의 공천 전략이 아닌 지역 당협위원장들에 책임을 돌린다는 게 장 의원의 지적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소 김 위원장은 독단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당 전체를 움직이는 리더십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비대위원장 혼자 단독 플레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에도 조강특위 인선을 두고 잡음이 난 적이 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8년 조강특위 위원으로 전원책 변호사를 위촉했다. 하지만 조강특위 운영 전권 등을 놓고 갈등이 계속되자 당은 전 변호사를 해촉했다. 또 2017년에는 친박 좌장으로 꼽히는 서청원 전 의원을 포함 58명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했다가 강한 반발을 샀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당협위원장 교체를 통해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힐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야권서 내년 재보궐선거와 대선 유력주자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마땅한 인물이 없다. 정치권서 ‘국민의힘에는 김종인만 보인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는 배경이다.

강경 보수파
앉아서 당할까

당내에선 ‘김종인 대망론’까지 점쳐진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본인이 주자로 뛰는 것보다 무너지는 국민의힘을 재건하겠다는 뜻만을 밝혀왔다. 하지만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자리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면 이는 국민의힘 분열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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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