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이해하려 들지 말고 느껴라 ‘테넷’

“도대체 뭘 본 거지?” 최고 난이도 ‘놀란 고시’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관객의 수준을 최소 석사 학위로 전제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신작 <테넷>을 내놨다. 이전까지 영화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가 사칙연산 수준의 영화라면, <테넷>은 열역학법칙에 해당하는 난이도를 보여준다. 이른바 ‘놀란 고시’로 불리는 그의 영화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 테넷 스틸컷

영화를 홍보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이 ‘스포일러’다.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을 미리 알고 보면, 정작 작품을 봤을 때 쾌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넷>만큼은 스포일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영화를 본다고 해도 핵심을 간파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인버전

시간을 거스르는 ‘인버전’을 통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려는 미래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현재 세력이 뒤섞인 시공간 안에서 싸우는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서 동시에 협공하는 미래 세력에 맞서 같은 얼개로 시간을 이용해 방어하는 현실 세력인 테넷을 그린다. 이 과정서 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을 매우 복잡한 플롯으로 풀어낸다. 

크리스토퍼 놀란(이하 놀란) 감독이 20년 동안 아이디어를 개발해나갔으며, 6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아울러 <인터스텔라>서 함께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킵 손이 참여해 오류를 잡아줬다. <인셉션>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기초했다면 <테넷>은 열역학과 양자역학에 근간을 뒀다. 

에너지의 흐름을 시간과 공간으로 치환했고, 엔트로피 법칙을 확장시켜 ‘인버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인버전이란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마저도 거스르는 미래 기술이다. 사물은 물론 사람 역시 특수한 문을 통해 과거로 갈 수 있으며, 과거에서도 시간을 순행하거나 역행할 수도 있다. 


역행할 때는 기존의 환경이 반전을 일으킨다. 불이 나면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도가 떨어져 얼어붙는 개념이다.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흐름이 아닌,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가는 현상도 나타난다. 총을 쏘면 총알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벽에 박혀 있는 총탄이 탄창으로 돌아가는 형태다.

<인셉션>의 경우 꿈 설계 초보자 ‘아리아드네’(앨런 페이지 분)가 있어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눈높이 교육을 충분히 하는 데 반해, 이 영화는 주도자(존 데이비슨 워싱턴 분)가 몇 가지 짧은 설명만으로도 인버전의 속성을 완전히 깨닫고 미션을 수행한다. 관객이 이해할 틈을 조금도 주지 않고 감독은 곧바로 사건으로 몰아넣는다.

시간의 정방향과 역방향을 오가는 비주얼에 눈과 귀는 감탄을 하는데, 이런 현상이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다. 포스터와 예고편서 강조하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문구야말로 이 영화를 대하는 적절한 태도다. 

이야기가 다소 어렵더라도 볼만한 요소는 상당하다. 프롤로그 격인 오페라 하우스 테러 사건부터 747 보잉 비행기를 터뜨리는 쾌감, 순방향과 역방향이 혼재된 시공간서의 카체이싱은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영화로 안겨줄 수 있는 쾌감이 <테넷> 안에 무수히 존재한다. 

20년 넘게 준비한 놀란 유니버스의 정수
N차 관람은 필수…얕은 주제의식은 실망

아쉽게도 <배트맨: 다크나이트>나 <인셉션> <인터스텔라>서 보여준 깊이 있는 주제의식이 <테넷>에서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조커(히스레저 분)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 선악에 대한 성찰, 코브와 피셔(킬리언 머피)의 두 삶의 공통점으로 알려준 사랑의 의미, <인터스텔라>의 인류애 등 주제의식이 분명했던 것에 반해 <테넷>은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얕다. 이 같은 측면서 실망했다는 씨네필도 적지 않다. 


또 놀란 감독을 향한 비판 중 하나가 배우들을 장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이 만든 철저히 통제된 세상서, 배우들은 인형처럼 움직인다는 것. 그런 측면서 배우의 역할이 가장 한정된 작품이 <테넷>이다. 극 중 인물들은 복잡한 세상을 비춰주는 장기 말에 불과하다.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존 데이비드 워싱턴

역할이 작지만 배우들은 최상의 연기력을 펼친다. 주도자 역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미식축구 선수 출신 다운 파괴력 있는 몸짓으로 놀라운 액션을 선보인다. 덴젤 워싱턴의 아들인 그는 일부 감정적인 연기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요원 닐 역할의 로버트 패틴슨은 전반적으로 절제된 얼굴로 주도자를 돕는다. <트와일라잇> 등에서 감정을 절제하는 연기로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 그는 이번에도 침착한 얼굴로 새로운 세계 속에서 현실감을 더한다. 

남편의 협박에 굴복해 절망 속에서 복수의 칼을 가는 캣을 연기한 190cm의 장신 엘리자베스 데비키는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며, 지구 종말의 결정권을 가진 사토르 역의 캐네스 브래너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배우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영화의 제목은 <TENET>이다. 앞으로 읽어도, 역으로 돌려봐도 <TENET>이다. 순행과 역행의 조화를 의미한다. 대사를 통해서도 수미쌍관을 적용한 지점이 꽤 있어, 원어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울러 물리학서 가장 중요한 이론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캣처럼 인물과 사물의 이름 속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내가 무엇을 본 거지?’라는 충격에 휩싸인다. 혼자서 놀란이 제시한 숙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까운 지인과 각각 수집한 정보를 꺼내놓고, 퍼즐을 풀 듯 수다를 떨 때 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진입장벽

물리학을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해설을 확인한 뒤 N차 관람을 하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밀을 알았을 때의 쾌감은 그 어느 영화를 봤을 때보다 강렬할 것이라 자부한다. 다만 놀란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초심자라면 <인셉션> 때와는 달리 진입장벽이 한없이 높아진 이번 놀란 유니버스에 빠져들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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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