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서울 이태원 클럽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이제 겨우 막 기지개를 켜려 했던 영화계가 다시 얼어붙었다. 전무후무한 상황으로 인해 극장가는 배를 쫄쫄 굶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던 개봉 예정작들마저도, 줄줄이 개봉을 연기하고 있다.
매년 4∼5월만 되면 국내 언론에선 일제히 ‘한국 영화 위기론’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쏟아내왔다. 그만큼 4월과 5월은 국내 극장가서 비수기로 점치는 시기다. 마블사를 비롯한 굴지의 해외 영화들이 이때 한국시장을 노렸다. 이 시기 개봉하는 한국 영화가 대체적으로 저예산 제작 영화거나 다양성 영화 등 경쟁력이 약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해외 블록버스터로서는 적기였다.
성수기까지
엄청난 제작비에 히어로로 무장한 해외영화들이 국내 영화시장을 잠식했고, 그렇게 위기 아닌 위기론이 불거졌었다. 하지만 6월부터 8월에는 흥행 스타와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작품이 개봉돼 위기론은 금세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국영화계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하루 100만명 이상이 영화관을 찾던 과거 어린이날과 달리 이번에는 10만명 수준에 그쳤다. 황금연휴인 것까지 감안한다면 충격적인 스코어다. 영화관은 생존의 문제에 봉착했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역시 휘청거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러 영화들이 상반기 개봉을 잠정 결정했다가 슬며시 미루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매년 ‘한국영화 위기론’에 대해 질문을 받았었다. 사실 그때의 위기론은 6월이나 7월이 되면 사그라드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전에 없던 위기다. 영화관은 물론 영화 콘텐츠 산업도 힘들다. 배급사 대부분 각 2∼5월 중 개봉하기 위해 준비했던 영화들을 자체적으로 미뤘다. 이 여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장을 찾은 일일 총 관객 수는 사흘째 2만명대를 기록 중이다. 황금연휴 이전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던 때로 회귀한 모습이다. 천문학적 숫자의 경제적 타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CGV 관계자에 따르면 CGV 1/4분기 실적은 예년에 비해 약 50%가 감소했으며, 영업손실은 716억원에 이른다.
이 관계자는 “작년 4월에는 1300만 관객이 들었는데, 올해 4월은 97만명만이 영화를 봤다. 1/13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금 나아지나 했는데, 다시 얼어붙고 있다. 이 사태가 6~7월 성수기까지 이어지면 정말 아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4월 말부터 코로나19가 보완세로 접어들면서 5월 개봉을 예정했던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하고 있다. 특히 3월 개봉을 예정했다가 한차례 미룬 <침입자>와 <결백>은 5월 개봉을 결정했으나,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또 개봉을 미루게 됐다.
오는 21일 개봉을 결정했던 <침입자>는 내달 4일로 개봉을 재차 미뤘다. 이 영화는 제작비 50억원 안팎의 중형 영화 중 가장 발 빠르게 개봉을 결정했다. 배우 송지효와 김무열이 출연하는 공포 장르의 <침입자>는 지난 14일 언론·배급시사회에 이어 배우 및 감독 인터뷰도 진행하려 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어린이날 총 관객 10만, 1/10토막
“한국영화 위기” 극장가 얼어붙나
<침입자> 측은 “당초 심사숙고 끝에 21일로 개봉을 확정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증가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짐에 따라 영화 개봉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배우 배종옥과 신혜선이 출연하는 영화 <결백>도 개봉을 연기했다. 아빠의 장례식장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 기억을 잃은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마의 결백을 밝힌다는 내용의 <결백>은 배종옥의 파격 변신이라는 측면서 관심을 받으며, 오는 27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논의 끝에 6월 중으로 개봉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결백> 측은 “제작진 및 관계자는 현 사태를 끊임없이 예의주시할 예정이며 관객 분들을 가장 적기에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20일 진행 예정이었던 언론배급 시사회 및 일반 시사회 일정 역시 연기된다.
같은 날 개봉 예정이었던 <프랑스의 여자>도 내달 4일로 개봉을 연기했다. 20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가 서울로 돌아온 미라(김호정 분)의 얘기를 담은 영화로, 국내외 영화제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8회 롯데크리에이트브 공모전서 수상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희정 감독이 연출도 맡았다.
<프랑스의 여자> 측도 “사회적 우려가 커짐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일정을 추후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5월 개봉하는 영화는 배우 조민수와 래퍼 치타가 출연하는 <초미의 관심사>가 유일하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예정된 일정으로 진행된다. <초미의 관심사> 관계자는 “오는 27일 예정대로 개봉한다. 18일 진행되는 언론 대상 시사회도 정상 개최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에 오는 것 자체를 주저하기도 하지만 볼 만한 신작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일부 소규모 영화 입장에서는 지금이 개봉 기회일 수 있지만,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 없어 개봉을 추진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6월 개봉을 예정한 영화들도 고민이 커졌다. 회복세에 접어들었던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추세가 되자 장기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반도>, 윤제균 감독의 <영웅>,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등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현재까지는 큰 여파 없이 영화 제작에 몰두하고 있지만, 6월에도 코로나19가 이어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특히 거론된 영화들은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다. 2월부터 5월까지는 비수기여서 그렇다 쳐도, 성수기마저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영화계를 엄습하고 있다.
또 연기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이례적인 사건이다. 레퍼런스로 할 만한 사안이 없다. 모든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며 “어떤 예견을 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