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낭만닥터 현실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4.13 10:33:08
  • 호수 12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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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도 아니고…‘3분 진료’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병원서 1시간이 넘게 기다렸다가 진료는 5분도 채 받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거기다 퉁명스럽게 건네는 의사 말 한마디는 환자를 더욱 불쾌하게 만든다. 
 

tvN서 방영 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친절한 의사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드라마 속 의사들은 환자의 기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쓴다. 하지만 실제 병원의 모습은 드라마 속 장면과는 다른 게 현실이다. 

잇단 피해담

환자들은 몸에 문제가 생길 때 병원을 찾는다. 종합병원 입원 환자나 보호자가 되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의사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지만, 정작 회진 시간에는 의사들이 무리 지어 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만 늘어놓는다. 환자에게는 설명 한 마디 없이 병실을 나가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참으로 야속하지만, 불만을 표하지도 못한다. 자칫 치료 과정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의 경우 오래전부터 ‘3분 진료’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3분 진료란 ‘1시간을 대기하고 3분 진료를 본다’는 말로, 병원서의 짧은 진료 시간을 비꼰 표현이다. 실제 지난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연구팀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병원의 평균 외래 진료 시간은 환자 1명당 평균 4.2분이었다.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대부분 의사와의 소통 기회가 적다는 점을 불만스러워했다. 설문 문항 중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만 제기하기’는 100점 만점에 73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다. 치료 결정 과정서 환자 자신의 의지를 반영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9월 YTN서 한 병원을 찾아 오전부터 반나절 동안 환자 진료 패턴을 관찰했다. 환자 49명의 평균 진료 시간은 6.26분이었다. 다만 평균의 함정이 있었다. 5분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와 10분 이상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가 각 8명으로 동일했다. 3분 진료는 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 명뿐이었지만 진료가 2분밖에 안 된 환자도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힘들게 진료실에 들어간 후에도 의사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의사가 환자 대신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기 때문이다. 의사 1인당 하루 평균 100여명을 진료하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엔 뭔가 억울하다.

‘환자 먼저’ 의사 주인공 작품 인기
1명 평균 진료 4.2분…인력난 원인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정부와 의료기관은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의사 인력을 확충해,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소통할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진료 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가 진료 도중 환자에게 욕설을 내뱉은 적이 있어 논란이 됐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한 대학병원을 찾은 A씨는 진료를 보던 의사로부터 “당장(진료실서) 나가!”라는 말과 함께 “XXX야”라는 모욕적인 욕설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이날 그는 부인과 함께 동네 병원서 받은 소견서를 가지고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소견서를 본 의사 B씨는 A씨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직접 설명해보라고 요청했고, A씨는 그간 진료 과정을 상세히 말했다.

그런데 A씨 이야기를 듣던 의사 B씨가 갑자기 말을 끊으며 “그런 내용을 글로 써왔어야지, 여기서 말로 다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A씨는 “진료실에 들어간 지 5분쯤 지났을 때였는데, 의사가 자신의 시간을 빼앗는 거라는 듯 화를 내서 당황스러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의사의 태도에 A씨가 항의하자 의사는 “아침부터 짜증나게…”라고 반응했다. 감정이 격해진 A씨가 언성을 높이자, 의사 B씨는 급기야 A씨를 향해 “당장(진료실서) 나가”라고 소리치며 “XXX야” “경비 불러!” 등 거친 말을 내뱉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진료받을 때 환자가 어떻게 아픈지 A4용지에 써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동네 의원과 달리 의사가 이렇게 고자세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의사가 소견서와 진료기록을 보고 진료를 하는 게 맞지, 환자에게 설명해보라는 게 말이 되느냐. 목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환자에게 화풀이하는 의사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의사들 역시 짧은 진료 시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의사 5명 중 3명은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전용 지식·정보 공유서비스 업체 인터엠디(intermd)는 지난해 12월26∼30일 일반의 및 전문의 1002명을 대상으로 직무 만족 등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의사 60.7%는 ‘진료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환자 한 명당 평균 진료 시간은 ‘3∼5분’이 48.2%로 가장 많았고, ‘5∼10분’ 25%, ‘3분 이내’ 19.9%, ‘10분 이상’ 6.9% 순으로 나타났다.

해법은?

고병수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고병수의 가슴앓이’ 칼럼을 통해 “환자가 많아서 잘되는 병원이라면 빨리빨리 증상을 듣고 약을 처방해서 보내는 식으로 상품을 찍어 내듯이 진료를 하게 된다. 환자 3명씩 진료실로 들여보내서 약속된 처방을 모니터로 금방 출력하면서 환자를 본다는 병원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의 경우, 환자가 없더라도 그 의사는 환자에게 2~3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진료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기도 하고, 이미 몸에 밴 진료 습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심층진찰 실효성은?

정부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외과계를 살리기 위해 일명 ‘심층진찰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일선 개원가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최근 정부가 ‘외과계 교육상담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 추가 모집에 나서는 등 제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외과계 개원가인 비뇨의학과 의사들 역시 저수가와 복잡한 행정절차 등에 불만을 토로하며 제도 참여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는 지난해 11월 열린 추계학술대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외과계 교육상담 시범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이동수 회장은 “심층 진찰료 도입 배경은 내과 대비 수익구조가 열악한 외과 개원가의 보상 차원이었지만 생각보다 과정이 복잡해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나 진료시간 등을 고려해 전문 과목 내지는 의사 개별로 초진, 재진 진찰료에 차이를 둬야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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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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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