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최근에도 근로자의 과로사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충남 당진우체국서 근무하던 40대 집배원이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로사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직장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숨진 집배원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과로사로 추정되는 집배원 사망자가 9명이나 나왔다.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된 이후에도 과로사를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산재 신청 건수는 100건이 넘는다. 그중 산재로 인정받은 사람은 40여명이다.
전체 근로자 인원에 비해 극히 적은 인원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질병이 생기거나 사망하는 사례는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드물다. 과로사에 대응되는 영어 단어도 없었다.
지금은 카로시(karoshi)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과로사를 뜻하는 일본어를 그대로 로마자 표기로 옮긴 것이다.
의학적으로 사망원인에 ‘과로’라고 기재하는 경우는 없다. 과로사인 경우 심근경색, 뇌출혈 등이 사망원인이 된다. 즉 과로사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명칭이다. 그러므로 과로사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비타민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근로기준법 개정도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효과가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과로사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근로환경을 만들어 과로사를 예방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금보다 느긋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빠르고 급하다. 오늘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을 다음 날 받게 된 것은 오래 전이다. 이제는 다음 날 오지 않으면 클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밤 11시에 주문한 식품을 다음 날 오전 7시 전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인터넷에 사고 싶은 물건이 품절이면 하루도 기다리지 못한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늘 불을 밝히고 있어 필요한 것을 즉시 구입하러 갈 수 있다.
밤늦게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새벽에 오려면 한밤중에 가져다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새벽에 배달하는 이들은 낮에는 무엇을 할까? 잘 쉬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투잡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에는 과로를 피하기 어렵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는 깊은 새벽에도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새벽녘에 편의점 물품이 들어오면 졸음을 참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간에 여러 물건을 옮기고 진열하고 쌓아두어야 한다.
주문한 지 8시간 만에 배달받은 물품 중 그때 받지 못하면 안 되는 시급한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본다. 새벽 배송이 되는 것의 대부분은 농산물이나 축산물이다. 못 받는다고 먹을 것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밤늦게 편의점서 어떤 긴요한 물건을 구입한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정용 상비약 몇 가지를 팔기는 하지만 해열제, 소화제 정도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굳이 빨리 배달하고, 급하게 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지금부터라도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지내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내가 빠른 서비스를 받으면 누군가는 그만큼 무리해야 한다. 또 나도 누군가에게 빠른 서비스를 해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늦은 시간까지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일과 개인의 삶이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주 52시간제 도입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일보다 인간 중심의 사회가 되도록 하자. 과로사회,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