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지난 19일, ‘합격자 수에 일희일비 말고 로스쿨도 유사직역 정리에 동참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변협이 변호사들을 위한 이익단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유사직역 정리’라는 문구는 정도를 지나쳤다.
변호사 단체에서는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자격을 통칭해 ‘유사직역’이라고 칭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유사’라는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유사품, 유사종교, 유사과학 등의 용례를 보면 유사란 단지 비슷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면서 그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 정도의 폄하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해당 자격들 모두 별도의 법률에 의해 인정되는 상호 동등한 자격이다.
자동차 운전면허의 예를 보자. 2종 보통면허는 1종 보통면허와 운전할 수 있는 종목은 비슷하나, 승차인원이나 적재중량에 따른 제한이 있다. 그러나 운전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고 해서 2종 보통면허를 ‘유사 1종 보통면허’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업을 비롯한 조직서 변호사는 주로 법무팀에 소속돼있고 공인노무사는 인사팀이나 노사협력팀,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는 재무팀이나 IR부서서 근무한다. 작은 기업인 경우 서너 개 부서로 업무를 처리하지만,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점차 기능을 분화시켜 여러 부서를 두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복잡다기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직종이 형성된 것이다.
각 국가는 연혁적으로 고유한 자격·면허체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은 전문자격사를 법률로 규정한 것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사정에 맞춰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전문자격사 체계는 잘못됐고 필연적으로 통폐합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변호사 중심의 국가들과 다른 것뿐이다.
변협은 최근의 성명서를 통해 ‘소송건수가 2015년부터 감소추세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다른 전문자격사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 행정심판이나 그 이전의 조정단계서 분쟁을 마무리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긴 시간과 큰 비용을 들이는 소송 대신 간이한 행정심판서 전문자격사들이 활약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전문자격사 간 업무영역을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다. 논의에 앞서 타 전문자격사 간 상호존중의 자세가 전제돼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유사직역이라는 사실상의 멸칭(蔑稱)을 사용하고 ‘정리’한다고 표현하면서는 협상이 시작될 수 없다.
과거 변호사를 포함한 7개 단체가 모여 ‘법조전문자격사 포럼’을 구성한 바 있다. 변호사단체는 당시 ‘법조전문자격사’라는 명칭의 단체에 참여한 이후로도 수시로 유사직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법조전문자격사라는 명칭도 어폐가 있다. 법조전문자격사는 변호사와 법무사뿐이다. 공인노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등은 자신들의 고유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법률을 잘 알고 있을 뿐 ‘법조’와는 관계가 없다. 인사전문자격사, 회계 및 세무전문자격사, 관세전문자격사인 것이다.
소송대리권을 달라는 전문자격사들의 요구도 경제적 목적에 앞서 자신들의 고유업무를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생각의 발로다. 변협에서는 타 국가서 전문자격사에게 쟁송대리권이나 참여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여러 국가에서는 일정한 조건하에 법무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관세사에게 소송대리권, 소송참여권, 행정심판대리권을 부여했다. 이 같은 사실까지도 논의 테이블에 놓고 허심탄회하게 협의해야 한다.
협상서 일방적인 승리란 있기 어렵다. 변호사 단체에게 타 전문직역을 존중하는 태도와 상호 업무조정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요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