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날개 없는 추락 사연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 ‘양파회장님’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임직원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응해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공금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임직원들에 이런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마지막으로 잠적했다. 현재 선 회장에 걸려있는 혐의 내용은 1000억원대의 재산 해외도피와 탈세, 회사의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배임, 그리고 수억원의 골프장 회원권 구입을 납품업체에 강매한 의혹 등. 이번 일로 하이마트 역사의 ‘산증인’이자 국내 전자제품 유통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선 회장은 경영자로서 일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상황은 심각하다.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양파와 같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는 말이 딱 선 회장을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인수자 선정 편의 대가로 600억원 유진과 이면계약
임직원 몫으로 지급된 ‘위로금’ 200억원 챙긴 혐의

검찰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중앙수사부가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을 향해 칼을 빼든 건 지난달 25일. 1000억원대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잡고서다. 중수부는 하이마트 본사와 관계사, 선 회장의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택 등을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먼지 하나까지 샅샅이 털어내겠다는 각오다.

검찰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린 1000억원대의 회삿돈과 개인재산 중 일부를 아들 현석씨와 딸 수현씨에게 증여한 혐의를 포착했다. 특히 검찰은 빼돌린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거쳐 세탁한 것으로 보고 계좌추적을 벌였다. 또 1500억원대 골프장 리조트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협력사에 장당 2억원의 회원권을 강매했다는 의혹도 집중 추궁하고 있다.

1000억대 자산 해외
빼돌려 세탁한 혐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선 회장이 회사 안팎을 가리지 않고 저인망식으로 부당한 돈을 긁어모은 정황이 드러났다. 한 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나오는 모습이 마치 양파와 같다.

먼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지분 매각 입찰 당시 유진그룹이 인수자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선 회장이 600억원 가량을 받기로 유진 측과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유진그룹은 1500억원 높은 입찰가를 써낸 GS홀딩스를 제치고 인수자로 선정됐다. 검찰은 이 같은 선 회장의 행위가 하이마트에 손실을 끼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또 M&A 성사 이후 임직원들 몫으로 지급된 ‘위로금’ 500억원 가운데 100억~200억원이 선 회장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간 정황도 포착됐다.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배를 불린 셈이다.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선 회장은 M&A 직후에만 800억원을 챙긴 게 된다.

또 지인들을 협력사인 납품업체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도 드러났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하이마트 협력업체는 모두 12~13곳. 선 회장은 이들 회사에서 각종 리베이트와 횡령 등을 통해 뒷돈을 챙겨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이들을 사장으로 앉혀 놓고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납품업체 가운데 일부는 선 회장의 자녀들에게 수년간 법인카드나 회사 차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 회장이 하이마트에서 매년 100억원대 연봉을 받아온 사실도 확인됐다. 하이마트는 선 회장을 포함해 31명의 임원이 있는데 임원 연봉의 총 한도가 210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임원 전체 연봉의 절반을 선 회장이 받아가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연봉을 결정한 이사회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 측 관계자는 “선 회장이 이면계약으로 막대한 돈을 받기로 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임직원에게 돌아갈 위로금도 일부 착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선 회장이 지나치게 높은 연봉을 받아온 데 대해서도 불법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횡령한 돈으로
고급빌라 매입?

최근 선 회장이 현석씨 이름으로 미국 베버리힐스의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횡령한 자금으로 이 빌라 구입자금을 충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을 산 시점은 2008년 초이며, 구입가격은 200만달러 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베버리힐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할리우드와 가까워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저택이 즐비한 고급 주택지이다.


2008년 초는 ‘리먼쇼크’ 직전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조짐으로 환율이 급등하던 때였다. 검찰은 선 회장 일가가 이 집 외에도 하이마트에서 횡령한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또 선 회장 일가가 벌여온 골프장 사업에도 회삿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선 회장 일가는 2009년부터 사업비 1500억원 규모로 강원 춘천시 일대 51만여평의 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 엔바인리조트 개발 사업을 벌여왔다. 이 골프장 사업 투자금 대부분은 선 회장과 그의 자녀 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IMF 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될 당시 대우전자 판매총괄본부장이었던 선 회장은 대우전자의 국내 영업부문이 대우전자에서 분사, 대우전자 제품을 국내에 총판하는 하이마트 전신인 ‘한국신용유통’이란 회사와 합쳐지자 직원들이 동요될 때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임원 전체 연봉의 절반인 100억원 받아온 사실 확인
지인들 납품업체 ‘바지사장’ 앉혀 돈을 빼돌린 혐의

이후 선 회장은 국내·외 가전제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살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양판점’ 개념을 도입, 대형 가전업체 대리점 주도의 유통시장을 바꿔나갔다. 이후 매출 3조원대의 전자전문점 1위 기업으로 하이마트를 키워냈다. 현재 하이마트는 국내 가전 유통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업계 1위 기업으로 전국 3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010년 6월에는 코스피에 상장했다.

하이마트의 급성장을 주도한 덕분에 선 회장은 스타 경영자로 각광받았다. 한국유통대상, 산업포장, 대한민국광고대상을 받았고 자신은 오너 경영자가 아니었지만 하이마트의 실권자로 명성을 이어왔다.

그만큼 선 회장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지난해 유진기업과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직원들은 선 회장 편에 섰다. 임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350여명의 임원 및 전국 지점장이 철회를 요구하며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선 회장의 비리 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임직원들의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선 회장의 명성에도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경우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 하리란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하이마트 상장폐지
가능성도 점쳐져

한편, 검찰이 선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하이마트의 매각도 현재 중단된 상태다. 유진기업과 HI컨소시엄, 선종구 회장 등 매각 주체 3자는 하이마트 지분 매각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까진 매각 작업의 재개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이마트에 러브콜을 보내오던 신세계, 홈플러스 등 인수 후보들 역시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인수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선 회장의 횡령 혐의가 확정되고 횡령액이 1000억원을 넘어서면 하이마트의 상장폐지도 가능해진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의 법인은 자기자본의 2.5% 이상 금액에 대해 횡령·배임 공시나 검찰 기소가 있으면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하이마트가 상장폐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횡령액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업가치 추정도 힘들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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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