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최대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실체

‘장물’ 논란에 버리자니 아깝고 취하자니 걸리고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모양새다. 중요한 고비마다 강탈 논란을 빚은 정수장학회가 아킬레스건으로 따라 붙으면서다. 지난 2007년 대선에 이어 최근 다시 정수장학회 장물 논쟁이 불붙으며 박 위원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그간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에 대해 “나와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최필립 이사장이 계속 버티며 야권의 타깃이 되고 있다. 총ㆍ대선 전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박 위원장이 직접 나설 경우 정수장학회와 무관하다던 해명과 배치되는 관계로 그마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아버지의 유산(?)인 정수장학회 처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박 위원장이다.

2007년 대선 경선서도 정수장학회가 박근혜 발목 휘감아
야권 ‘장물’ 논란으로 4ㆍ11 총선쟁점 부각시키기 안간힘

잘나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난관에 봉착했다. 또다시 정수장학회에 발목 잡히면서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이었던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가 전신이다.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5ㆍ16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돼 국가를 위해 재산을 기부한다는 각서를 쓴 뒤 석방됐다. 때문에 고인이 자발적으로 헌납했느냐, 아니면 강제로 내놓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김씨 유족은 그간 “재산을 강탈당했다”고 주장해왔다.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1995년 정수장학회 8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 위원장은 2005년 퇴임했다.

지난 대선 당시도
정수장학회로 십자포화

이후 2007년 6월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산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정수장학회는 강압에 의한 헌납”이라고 결론내리며 재산환원 권고 조치가 내려졌다. 이를 빌미로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박 위원장은 당 안팎으로 십자포화를 당하며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최근 정수장학회 문제가 다시금 불거졌다. PK(부산ㆍ경남) 지역 최대 일간지인 <부산일보> 사태가 벌어지면서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18일 <부산일보> 1면에는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을 촉구하는 <부산일보> 노조의 기자회견 기사가 실렸다. 사측은 편집국장을 대기 발령 조치하고 노조위원장을 해고했다.

이에 기자들은 ‘부당 징계’ 기사도 1면에 게재하려 했고, 사측이 신문 발행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화살은 다시 박 위원장에게로 향했다. 박 위원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다.

때문에 박 위원장이 여전히 재단의 막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최 이사장은 1970년대 말 청와대에서 의전비서관을 지내며 박 위원장과 인연을 맺었다. 최 이사장은 박 위원장이 미래연합을 만들었을 때 운영위원을 맡았고,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막후에서 박 위원장을 적극 도왔던 인물이다.

게다가 정수장학회 이사 4명 중 송광용 전 서울교대 총장과 김덕순 전 경기경찰청장은 박 위원장의 이사장 시절 임명된 인사들이다. 신성오 전 필리핀 대사와 최성홍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 이사장의 외교통상부 후배들이다. 이 같은 이사진 구성 때문에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 위원장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의 최전방에
거물급 문재인 나서


하지만 정수장학회는 지난 23일 ‘정수장학회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7년 전에 이사장에서 물러나 현재 장학회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박근혜 위원장과의 과거 인연을 이유로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학회는 특히 <부산일보> 파업 사태와 관련해 “<부산일보>는 현재 편집국장을 기자들이 직접 선출하기 때문에 어느 언론사보다 완벽히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때문에 정수장학회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미 박 위원장을 공격하는 최고의 무기가 되고 있다.

부산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야권의 거물급 잠룡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공격의 최전방에 나선 상태다. 문 고문은 지난 16일 파업 중인 <부산일보> 노조를 방문한 뒤 “정수장학회는 김지태 선생의 부일장학회가 강탈당한 장물이다”며 “참여정부 때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와 진실화해위가 강탈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최필립 버티기에 진땀 빼는 박근혜, 돌파구에 골머리 앓아
박정희 업적, 정치적 자산이자 대선 가로막는 ‘양날의 검’

문 고문은 이어 “장물을 남에게 맡겨놓으면 장물이 아닌가요? 머리만 감추곤 ‘나 없다’ 하는 모양을 보는 듯하다”고 재차 박 위원장을 겨냥했다.

지난 23일에도 트위터에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에서 10년간 2억5000만원 가량 이사장 연봉 받았다고 오늘 경향(신문)이 보도했네요. 상근도 안하면서요”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해마다 2억5000이면 몇명분 장학금입니까?”라며 “지금은 손 뗐다면 과거 장물에서 얻은 과실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당 차원에서 정수장학회를 고리로 박 위원장에 맹공을 퍼부으며 4ㆍ11 총선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양상이다.

한명숙 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위원장의 아바타인 정수장학회는 부산시민의 대변자인 <부산일보>의 입을 막았다”며 “<부산일보>와 부산일보장학회를 박정희 독재정권이 강탈해 정수장학회를 만들더니 박 위원장은 이제 <부산일보>의 영혼마저 빼앗으려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성근 최고위원도 “부산의 민심을 듣고 싶다면 먼저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고 <부산일보>를 시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며 “진정으로 부산의 목소리를 경청하러 가는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2007년 과거사정리위가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는 강요에 의한 헌납이라고 판단했는데, 정수장학회의 성명은 정통성을 가진 국가의 판단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로 보수주의자로서 자처하기에 민망하지 않는가”라고 몰아세웠다.

정수재단 사회 환원을 위한 공동대책위도 꾸려졌다. 지난달 17일 발족한 ‘독재유산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과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서울시교육청에 정수장학회에 대한 감사 청구와 설립허가 취소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올 7월 정수장학회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감사 민원이 들어온 데 이어 2005년 이후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게 시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정수장학회가 야권과 시민단체의 타깃이 되며 총선 쟁점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태다. 이에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 논란을 털어버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친박 일각에서는 정수장학회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박 위원장과 무관한 인물로 이사진을 새로 구성하는 방안, <부산일보>와 'MBC'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모두 최 이사장의 결심이 필요한 사안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것보다 정수장학회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한 건 최 이사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 달라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라는 게 내부 해석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이 최 이사장의 사퇴 등을 요청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정수장학회와 무관하다고 수차례 밝혀온 상황에서 사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최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주변에 “박 위원장은 실제로 정수장학회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 내가 이사장직에서 내려오면 관선이사가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이 남긴 정수장학회의 흔적은 없어진다”며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 털겠다는 박근혜
유산 지킨다는 최필립


때문에 박 위원장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야권의 맹공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냥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도 없기에 고민이 깊어지는 눈치다.

‘박정희의 향수’는 지금의 박 위원장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동시에 아버지의 과오는 박 위원장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다.

박 위원장에겐 양날의 검이 된 아버지의 존재. 박 위원장이 과연 발목 잡힌 과거사를 깨끗하게 털어내고 대권가도를 질주할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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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