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신문서도 임시직 근로자가 상용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임금이 낮고 수당과 승진 등 혜택이 없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비정규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존재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잠잠하였던 비정규직 문제가 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문제로 불거지게 된 이유를 뚜렷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1997년의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문제를 환기시킨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후 10년여의 사회적 논의 끝에 비정규직 보호에 관한 법률인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약칭:기간제법)’이 제정됐다.
기간제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계약직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다.
첫 번째, 계약직 근로자의 근무기간을 2년 이내로 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2년을 초과하여 계약직원으로 근무하면 정규직(정년제) 근로자로 간주하도록 하고 있다. 두 번째, 계약직 근로자임을 이유로 같은 사업장서 근무하는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계약직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제정된 기간제법은 실제로도 계약직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을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르면 계약직원으로 2년을 근무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근로자보다 2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기업에서는 2년마다 비용을 들여 채용을 반복해야 한다. 현재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적절한 인력이라 하더라도 정년까지 보장해 줄 여건이 아니라면 퇴직시켜야 한다. 계약기간 만료를 몇 개월 앞둔 직원이 새 일자리를 구하는 데 노력을 쏟느라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계약기간을 미처 채우기도 전에 이직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계약직 근로자는 근무기간 2년이 만료되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정규직 일자리에 새로 취업하면 좋겠지만 취업난이 심한 때에 쉽지 않은 일이다. 계약직 일자리마저도 제때 구해지지 않는다면 상당한 시간을 실업자로 지내야 한다.
마찰적 실업이 유발되는 것이다. 이 기간 중 고용보험법에 따른 구직급여나 조기재취업 수당이 지급되므로 고용보험 재정이 소요된다.
계약직 근로자로 2년을 근무하면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하라는 입법취지는 왜 현실에서 좀처럼 작동되지 않을까? 기업 입장서 볼 때, 근로자의 계약기간을 2년이 아니면 60세까지로 해줘야 한다는 것을 수용하기가 곤란하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단시간에도 급격히 변하는데 우리나라 노동법은 한번 고용한 정규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돼있다.
그 결과 많은 기업서 정규직 인력과 비정규직 인력 수요를 별도로 산정해 채용하는 고용 관행이 생겼다. 애당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사가 없고 양 자 간 업무도 구분돼있다. 제도적으로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도 계약직원은 2년간만 고용을 하는 것을 전제로 업무를 맡기므로 업무 구분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된다.
정규직과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기간제법 조항은 유명무실해지기 쉽다.
기간제법이 계약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필자는 현재 2년 또는 정년으로만 구분된 고용기간에 대한 완충 방안으로 가칭 ‘10년 계약직원’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1년씩 계약해 10년까지 계약하는 것이 아닌 10년 간 고용을 보장하는 근로계약 유형을 의미한다. 기업과 계약직 근로자에게 반복되는 채용 및 퇴사와 그에 따른 상호간의 손실을 없애고자하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고용보험 지출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10년의 고용기간이 주어지면 기업은 근로자에게 좀 더 장기적이고 숙련이 필요한 업무를 맡길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근로자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자는 긴 안목으로 경험을 쌓아 정규직 일자리로 이직을 하거나 창업에 도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년 간 비숙련 업무를 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10년 계약직’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계약직으로만 운영을 하는 회사는 매우 드물 듯이 ‘10년 계약직’만으로 기업이 운영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정년제 직원, 10년 계약직원, 2년 이하 계약직원으로 나눠 업무를 단계적으로 분담한다면 기업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전체 근로자의 생활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10년이 지나치게 길다면 임기제 공무원처럼 5년으로 해도 좋다.
기간제법은 그 취지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제안한 방법뿐 아니라 여러 대안을 연구해 발전적인 대안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