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보물선’ 신일그룹의 실체

‘대박이냐 신기루냐’ 보물 찾는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수백조원 가치의 금화와 금괴가 실린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신일그룹에 대해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주장만 있을 뿐 배나 금괴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신일그룹이 설립된 지 50일밖에 안 된 신생회사인 것을 두고 실체가 불확실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갑자기 등장한 신일그룹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신일그룹은 150조원 규모의 보물이 실린 러시아 철갑순양함 돈스코이호를 경북 울릉도 인근 해저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관련기업인 제일제강 주가가 이날 상한가로 치솟기도 했다.

금화와 금괴
가능한 이야기?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여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앞바다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에는 현재 가치로 약 150조원의 금화와 금괴 약 5500상자(200여t)가 실려 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돌았다.

신일그룹은 수년 전부터 돈스코이호 탐색에 나선 끝에 지난 15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오는 30일 울릉도서 인양한 유물과 잔해를 일부 공개하고 9∼10월쯤 본체를 인양할 계획이다. 

돈스코이호는 지난 2000년 동아건설로 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동아건설이 보물선 실체를 확인했다고 알려지면서 2000년 12월15일 360원이던 동아건설 주가는 17일 후 3265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동아건설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지 못했고 유동성 위기로 2001년 3월 상장 폐지됐다. 고점에 주식을 산 소액주주들은 큰 피해를 봤다. 1980년대에는 도진실업이 배와 보물을 인양하기 위해 일본서 잠수정을 도입했지만 실패했다. 

신일그룹은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홈페이지에 고해상도 영상카메라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영상 속 선체의 꼬리 쪽에는 ‘DONSKOII’(돈스코이)라는 함명이 적혀 있다. 

영상을 본 일부 네티즌은 발견된 선박이 진짜 돈스코이호가 맞는지에 의혹을 제기했다. 제정 러시아 선박임에도 선박 명칭이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표기돼있다는 점 때문이다. 

신일그룹 측은 돈스코이호가 러시아어로도 적혀 있지만 식별이 불가능해 선명한 영어 표기만 공개했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전문가는 선박 명칭이 시대와 나라별로 다르게 표기돼 돈스코이호에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박명 표기와 관련해 한국선급 관계자는 “선박 명칭 표기와 관련한 별도의 국제규정이나 관례가 없어 정확히 말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돈스코이호 발견한 신일…정체성 논란
법인설립 50여일 신생기업…인양 능력?

갑작스레 불어닥친 돈스코이호 열풍의 가장 큰 의문점은 금화와 금괴의 실존 여부다. 현재까지 이 배에 실제 금이 실렸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다만 러시아 대외비 문서, 돈스코이호 침몰을 목격한 울릉도 주민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추정할 뿐이다. 


신일그룹에 따르면 돈스코이호 내부에 있는 금화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104.4t)의 약 2배 가까운 엄청난 양이다. 러일전쟁 당시 이 배에 연료, 식수, 보급품 구매와 수병 임금 지급을 위한 군자금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식량과 포탄 적재가 우선인 무장 함선에 금화 200t을 싣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총배수량이 5800t에 불과한 작은 배에 200t 가까운 금화를 싣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가치가 150조원 규모의 금화를 포함, 총 160조원가량이라고 주장하며 이 배를 담보로 암호화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화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200t의 금화가 있다고 해도 그 가치가 150조원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8일 기준 국내 금 시세는 4만5080원으로 200t의 금 가격은 약 9조160억원에 불과하다. 금화가 골동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금 시세보다 가격이 높아질 수 있지만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서 그 가치를 담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신일그룹은 ‘신일골드코인’이란 암호화폐를 발급해 인양 후 보물 가치의 10%인 15조원을 보유자들에게 이익배당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화의 실체가 없고 코인의 백서와 기술적 처리방식이 모두 공개되지 않아 스캠코인(사기코인)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배 담보로 
암호화페 사업

신일그룹은 지난 6월1일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신생 법인이다. 류상미 대표를 비롯해 김필현·손상대·김해래씨가 주주로 등록돼있다. 신일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1979년 설립된 신일건업을 모태로 한 글로벌 건설·해운·바이오·블록체인그룹”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회사는 신일그룹,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2개 회사뿐이다. 이 둘은 모두 올해 들어 설립됐다.  

신일그룹은 홈페이지서 계열사로 신일건설산업, 신일바이오로직스, 신일국제거래소, 신일골드코인 등이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대부분 법인 등록이 돼있지 않다. 암호화폐 거래 사업을 하는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만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에 등록돼있는데 이 역시 설립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신일그룹 측은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인양 준비를 하던 2년 전 해양수산부에 매장물 발굴허가에 관해 문의한 결과 개인보다는 법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조언을 받아 법인을 설립한 것”이라며 “법인을 좀 더 일찍 설립하려고 했지만 5월에 추모제를 진행하다 보니 설립이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장에선 제일제강의 인수계약자가 신일그룹이 아닌 개인 2명이라는 점도 의아해하고 있다. 신일그룹이 이미 제일제강을 인수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계약금 18억5000만원만 납부한 상태다. 오는 9월12일까지 중도금·잔금을 납부해야 한다. 

지분 17%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185억원이다. 


이와 관련해 신일그룹 관계자는 “신일그룹은 관계사로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신일건업돈스코이국제거래소를 갖고 있으며 제일제강에 대한 (주식 양수도 계약) 잔금 처리가 끝나면 제일제강이 계열사로 들어오게 된다”며 “신일건업은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관계된 곳으로 인양사업과는 별개의 기업”이라고 말했다.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던 제일제강은 18일 “신일그룹과 최대주주 관계가 아니며 보물선 사업과는 일체 관계가 없다”는 공시에 다시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2시50분경에는 3560원까지 추락했다. 

발굴보증금 
15조 있나?

아울러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인양할 자금을 충분히 보유했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신일그룹 측의 주장대로 매장물 추정가액이 150조원이라면 15조원을 발굴보증금으로 미리 납부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발굴보증금에 대해 신일그룹은 150조원으로 추정되는 금괴 값의 10%가 아니라 돈스코이호의 철근값 12억원의 10%만 납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측은 “금괴에 대한 이야기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 등으로 알려졌지만 금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배에 있는 금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철근값 12억원의 10%인 1억2000만원을 현금 또는 서울보증증권으로 납부해 매장물 발굴허가를 받은 뒤 발굴되는 금괴의 가치에 따라 다시 10%를 현금이나 서울보증증권으로 납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신일그룹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지난 1년여간 150조원의 금괴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갑자기 고철값만 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태를 주시하던 금융 당국이 결국 ‘경고 주의’ 입장을 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8일, 울릉도 앞바다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일그룹과 관련해 코스닥 기업들이 주가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투자자 피해를 경고했다. 

금감원은 “보물선 인양 사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 없이 풍문에만 의존해 투자할 경우 큰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감원은 이어 “보물선 인양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 또는 과장된 풍문을 유포하는 경우 불공정거래 행위로 형사처벌이나 과징금 부과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보물선 인양과 관련해 주가가 급등했던 회사가 자금난으로 파산하면서 투자자들 피해가 크게 발생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금괴 있나 “모든 의문점 밝히겠다”
동아건설과 소유권 분쟁 가능성도 

신일그룹이 ‘최초 발견자 권리’로 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동아건설이 “최초 발견자는 우리”라며 보물 소유권 분쟁에 나섰다. 

동아건설은 지난 19일 “돈스코이호는 2003년 우리가 발견했고, 그 사실은 당시 기자회견으로 대외에 공표했다”며 “포항 해양청에 허가를 받아 정상적인 루트로 해당 함선을 찾아낸 우리에게 최초 발견자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초 발견자가 법적으로 어떤 권한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최근 신일그룹이 마치 침몰 113년 만에 최초로 발견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동아건설은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으로 2000년 12월15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주식시장서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기업의 상장폐지 후에도 해양연구원과 탐사를 이어가며 2003년 6월 ‘돈스코이호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채권단 반대로 인양에는 나서지 못했고, 2014년 발굴 허가기간이 종료됐다.

동아건설 측은 신일그룹이 주장하고 있는 돈스코이호의 가치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동아건설 측은 “우리는 돈스코이호에 금 500kg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현재 가치로는 220억원 수준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 주장을 하지 않는 점을 들어 국내법상 인양 후 발견된 금화의 80%를 자신들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게 신일그룹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다량의 금화가 발견될 경우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제법에 따라 당사국 간 협의를 통해 소유권이 결정된다. 하지만 협의가 무산될 경우 국제재판소로 넘어간다. 돈스코이호가 ‘군(軍)함’이라는 점이 소유권 결정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일제강 관계는?
증폭되는 궁금증

돈스코이호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신일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관련된 내외신 기자회견을 오는 25∼26일 열겠다고 밝혔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대한 더욱 놀랄 만한 사실과 사진, 영상 등을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어떤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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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