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보물선’ 신일그룹의 실체

‘대박이냐 신기루냐’ 보물 찾는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수백조원 가치의 금화와 금괴가 실린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신일그룹에 대해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주장만 있을 뿐 배나 금괴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신일그룹이 설립된 지 50일밖에 안 된 신생회사인 것을 두고 실체가 불확실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갑자기 등장한 신일그룹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신일그룹은 150조원 규모의 보물이 실린 러시아 철갑순양함 돈스코이호를 경북 울릉도 인근 해저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관련기업인 제일제강 주가가 이날 상한가로 치솟기도 했다.

금화와 금괴
가능한 이야기?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여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앞바다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에는 현재 가치로 약 150조원의 금화와 금괴 약 5500상자(200여t)가 실려 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돌았다.

신일그룹은 수년 전부터 돈스코이호 탐색에 나선 끝에 지난 15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오는 30일 울릉도서 인양한 유물과 잔해를 일부 공개하고 9∼10월쯤 본체를 인양할 계획이다. 

돈스코이호는 지난 2000년 동아건설로 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동아건설이 보물선 실체를 확인했다고 알려지면서 2000년 12월15일 360원이던 동아건설 주가는 17일 후 3265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동아건설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지 못했고 유동성 위기로 2001년 3월 상장 폐지됐다. 고점에 주식을 산 소액주주들은 큰 피해를 봤다. 1980년대에는 도진실업이 배와 보물을 인양하기 위해 일본서 잠수정을 도입했지만 실패했다. 

신일그룹은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홈페이지에 고해상도 영상카메라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영상 속 선체의 꼬리 쪽에는 ‘DONSKOII’(돈스코이)라는 함명이 적혀 있다. 

영상을 본 일부 네티즌은 발견된 선박이 진짜 돈스코이호가 맞는지에 의혹을 제기했다. 제정 러시아 선박임에도 선박 명칭이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표기돼있다는 점 때문이다. 

신일그룹 측은 돈스코이호가 러시아어로도 적혀 있지만 식별이 불가능해 선명한 영어 표기만 공개했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전문가는 선박 명칭이 시대와 나라별로 다르게 표기돼 돈스코이호에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박명 표기와 관련해 한국선급 관계자는 “선박 명칭 표기와 관련한 별도의 국제규정이나 관례가 없어 정확히 말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돈스코이호 발견한 신일…정체성 논란
법인설립 50여일 신생기업…인양 능력?

갑작스레 불어닥친 돈스코이호 열풍의 가장 큰 의문점은 금화와 금괴의 실존 여부다. 현재까지 이 배에 실제 금이 실렸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다만 러시아 대외비 문서, 돈스코이호 침몰을 목격한 울릉도 주민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추정할 뿐이다. 


신일그룹에 따르면 돈스코이호 내부에 있는 금화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104.4t)의 약 2배 가까운 엄청난 양이다. 러일전쟁 당시 이 배에 연료, 식수, 보급품 구매와 수병 임금 지급을 위한 군자금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식량과 포탄 적재가 우선인 무장 함선에 금화 200t을 싣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총배수량이 5800t에 불과한 작은 배에 200t 가까운 금화를 싣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가치가 150조원 규모의 금화를 포함, 총 160조원가량이라고 주장하며 이 배를 담보로 암호화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화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200t의 금화가 있다고 해도 그 가치가 150조원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8일 기준 국내 금 시세는 4만5080원으로 200t의 금 가격은 약 9조160억원에 불과하다. 금화가 골동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금 시세보다 가격이 높아질 수 있지만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서 그 가치를 담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신일그룹은 ‘신일골드코인’이란 암호화폐를 발급해 인양 후 보물 가치의 10%인 15조원을 보유자들에게 이익배당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화의 실체가 없고 코인의 백서와 기술적 처리방식이 모두 공개되지 않아 스캠코인(사기코인)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배 담보로 
암호화페 사업

신일그룹은 지난 6월1일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신생 법인이다. 류상미 대표를 비롯해 김필현·손상대·김해래씨가 주주로 등록돼있다. 신일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1979년 설립된 신일건업을 모태로 한 글로벌 건설·해운·바이오·블록체인그룹”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회사는 신일그룹,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2개 회사뿐이다. 이 둘은 모두 올해 들어 설립됐다.  

신일그룹은 홈페이지서 계열사로 신일건설산업, 신일바이오로직스, 신일국제거래소, 신일골드코인 등이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대부분 법인 등록이 돼있지 않다. 암호화폐 거래 사업을 하는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만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에 등록돼있는데 이 역시 설립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신일그룹 측은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인양 준비를 하던 2년 전 해양수산부에 매장물 발굴허가에 관해 문의한 결과 개인보다는 법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조언을 받아 법인을 설립한 것”이라며 “법인을 좀 더 일찍 설립하려고 했지만 5월에 추모제를 진행하다 보니 설립이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장에선 제일제강의 인수계약자가 신일그룹이 아닌 개인 2명이라는 점도 의아해하고 있다. 신일그룹이 이미 제일제강을 인수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계약금 18억5000만원만 납부한 상태다. 오는 9월12일까지 중도금·잔금을 납부해야 한다. 

지분 17%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185억원이다. 


이와 관련해 신일그룹 관계자는 “신일그룹은 관계사로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신일건업돈스코이국제거래소를 갖고 있으며 제일제강에 대한 (주식 양수도 계약) 잔금 처리가 끝나면 제일제강이 계열사로 들어오게 된다”며 “신일건업은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관계된 곳으로 인양사업과는 별개의 기업”이라고 말했다.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던 제일제강은 18일 “신일그룹과 최대주주 관계가 아니며 보물선 사업과는 일체 관계가 없다”는 공시에 다시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2시50분경에는 3560원까지 추락했다. 

발굴보증금 
15조 있나?

아울러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인양할 자금을 충분히 보유했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신일그룹 측의 주장대로 매장물 추정가액이 150조원이라면 15조원을 발굴보증금으로 미리 납부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발굴보증금에 대해 신일그룹은 150조원으로 추정되는 금괴 값의 10%가 아니라 돈스코이호의 철근값 12억원의 10%만 납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측은 “금괴에 대한 이야기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 등으로 알려졌지만 금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배에 있는 금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철근값 12억원의 10%인 1억2000만원을 현금 또는 서울보증증권으로 납부해 매장물 발굴허가를 받은 뒤 발굴되는 금괴의 가치에 따라 다시 10%를 현금이나 서울보증증권으로 납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신일그룹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지난 1년여간 150조원의 금괴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갑자기 고철값만 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태를 주시하던 금융 당국이 결국 ‘경고 주의’ 입장을 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8일, 울릉도 앞바다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일그룹과 관련해 코스닥 기업들이 주가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투자자 피해를 경고했다. 

금감원은 “보물선 인양 사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 없이 풍문에만 의존해 투자할 경우 큰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감원은 이어 “보물선 인양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 또는 과장된 풍문을 유포하는 경우 불공정거래 행위로 형사처벌이나 과징금 부과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보물선 인양과 관련해 주가가 급등했던 회사가 자금난으로 파산하면서 투자자들 피해가 크게 발생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금괴 있나 “모든 의문점 밝히겠다”
동아건설과 소유권 분쟁 가능성도 

신일그룹이 ‘최초 발견자 권리’로 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동아건설이 “최초 발견자는 우리”라며 보물 소유권 분쟁에 나섰다. 

동아건설은 지난 19일 “돈스코이호는 2003년 우리가 발견했고, 그 사실은 당시 기자회견으로 대외에 공표했다”며 “포항 해양청에 허가를 받아 정상적인 루트로 해당 함선을 찾아낸 우리에게 최초 발견자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초 발견자가 법적으로 어떤 권한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최근 신일그룹이 마치 침몰 113년 만에 최초로 발견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동아건설은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으로 2000년 12월15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주식시장서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기업의 상장폐지 후에도 해양연구원과 탐사를 이어가며 2003년 6월 ‘돈스코이호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채권단 반대로 인양에는 나서지 못했고, 2014년 발굴 허가기간이 종료됐다.

동아건설 측은 신일그룹이 주장하고 있는 돈스코이호의 가치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동아건설 측은 “우리는 돈스코이호에 금 500kg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현재 가치로는 220억원 수준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 주장을 하지 않는 점을 들어 국내법상 인양 후 발견된 금화의 80%를 자신들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게 신일그룹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다량의 금화가 발견될 경우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제법에 따라 당사국 간 협의를 통해 소유권이 결정된다. 하지만 협의가 무산될 경우 국제재판소로 넘어간다. 돈스코이호가 ‘군(軍)함’이라는 점이 소유권 결정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일제강 관계는?
증폭되는 궁금증

돈스코이호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신일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관련된 내외신 기자회견을 오는 25∼26일 열겠다고 밝혔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대한 더욱 놀랄 만한 사실과 사진, 영상 등을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어떤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