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마지막 국감’ 잠룡들의 ‘대선 전초전’ 된 내막

‘국감스타’ 등극하면 ‘대권고지’ 유리하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18대 마지막 국정감사의 막이 올랐다. 내년 대선을 앞둔 잠룡들에게는 정책기조를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장(場)으로 여겨지며 국감이 ‘대선 전초전’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안철수 신드롬’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잠룡들이 이번 국감장에서 존재감 부각을 벼르며 ‘국감스타’ 등극을 노리고 있다. 때문에 세간의 이목이 잠룡들이 풀어놓는 보따리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눈치다.

여야 잠룡들 자신만의 색깔로 존재감 부각시키기 주력
기재위 박근혜 ‘미시정책’ vs 손학규 ‘거시정책’ 승부수

본격 선거철을 앞두고 진행되는 18대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정국 주도권을 잡기위한 여야 의원들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잠룡들이 국감에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자신의 색깔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등 본격 대권행보에 시동을 걸며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4?27재보선에서 분당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국회입성에 성공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같은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이다. 때문에 여야 유력 잠룡인 두 사람은 자연스레 대결양상을 보이며 사사건건 비교되어 왔다. 이번 기재위 국감에서 만나게 될 두 잠룡들의 ‘빅매치’는 그래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박-손 빅매치
정책대결 펼쳐

특히 본격적인 국감에 앞서 박 전 대표는 “9월 국정감사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발표할 것이다”고 선언하며 국감의 기대감을 증폭시킨바 있다. 그동안 정책 마련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박 전 대표는 ‘생애 맞춤형 복지’를 강조해왔다. 게다가 최근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이 서강대를 명예퇴직하면서 연구원 활동에 몰두하고 있어 박 전 대표의 정책들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고조되고 있다. 

국감 첫날인 지난 19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재위의 기획재정부 국감장에서 박 전 대표와 손 대표의 질의순서 또한 각각 6번째와 7번째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비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민생 안정을 우선순위로 복지와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은 같지만 방법론에 있어 박 전 대표는 근로장려세제의 확대와 맞춤 복지 서비스 등 ‘미시적 정책’을 강조한 반면, 손 대표는 ‘거시적인 틀’에서 현 정부의 정책 방향 변화를 주문하며 시각차를 드러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 이번 첫 국감에서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 전 대표였고, 주로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던 손 대표였기에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잠룡들 모두 질의시간을 초과했지만 김성조 기획재정위원장은 제지하지 않고 질의를 마칠 수 있도록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평소 딱딱하기로 소문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두 잠룡의 질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자세를 보여 이채를 띠기도 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근로빈곤층의 ‘고용’과 ‘복지’를 강조했다. 그는 과거처럼 복지와 고용이 따로 가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와 고용이 연결된 프로그램을 잘 설계해 성장, 고용, 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잘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에 시각차
MB정부 비판


또 박 전 대표는 근로장려세제(EITC) 대상자에 차상위계층 뿐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들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들은 문제점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수급자들이 일자리를 구해서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수급자로서의 급여 혜택이 없어져 두려움이 크다”며 “기초보상제를 통합 급여에서 개별 급여로 바꿔 소득이 늘어도 개인마다 필요한 급여는 맞춤형으로 일정기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감 이틀째인 지난 20일 세제분야 감사에서 박 전 대표는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축소하여 복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SOC 투자인 4대강 사업에 대해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복지 등 의무 지출을 제외한 재량 지출은 일괄적으로 10% 축소를 하고, SOC 투자에서 추가로 10% 정도 지출을 축소하는 등 세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에 뒤질세라 손 대표도 “성장으로 분배와 안정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며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손 대표는 현 정권의 경제철학인 MB노믹스를 개발도상국 단계에나 적합한 구시대적 개념이라고 보고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경제, 대기업 규제완화, 고환율 저금리 정책으로 대표되는 수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몽준‧정동영, 장관에 목소리 높이며 언론 집중 조명 
장관에서 의원으로 복귀 ‘왕남’ 이재오 국감서 신고식

그는 또 747정책이 우리 경제구조를 취약하게 만들어 정부부채와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부동산 구조조정도 늦어졌다고 평가하며 이를 위한 대응 방안으로 경제 안정화 정책과 경제구조 개혁을 꼽았다. 손 대표는 “물가는 통화정책으로 안정시키고 고용은 정시 퇴근제, 휴가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눔을 통해 일자리와 삶의 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경제구조도 경제 민주화를 통해 재벌 경제 집중화를 낮추고, 복지를 통해 고용 창출 및 소득분배 개선 등 성장과 복지가 병행돼야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경제운용의 틀을 성장위주에서 내수와 민생안정을 기해 성장과 사회통합의 조화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대기업에 대한 감세정책과 성장정책에 상응한 투자 증가가 이뤄졌나, 소득과 일자리 증가를 가져왔나”라면서 “복지확대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서는 19.3%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부자감세 이전인 2007년의 21~22% 수준으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는 대신 조세 부담을 높여나가는 게 신뢰받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8대 국감에서 누구보다 가장 눈에 띈 잠룡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정 전 대표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감 도중 반말과 호통으로 일관하며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추궁해 논란이 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것.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최근 정 전 대표는 박 전 대표를 비판하며 존재감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있는 과정과 맞물려 국감 행보 역시 정부와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반말 질의 MJ
각 세우며 부각
 

외교통상부 국감 첫날 정 전 대표는 김 장관에게 내년 3월에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의 개최 시기를 문제 삼았다. 정 전 대표는 “핵안보정상회의(3월27일)가 총선(4월11일) 직전에 열리는데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까 우려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장관이 “의장국이니만큼 정상들이 참석 가능한 기간을 채택하는 것이 신경 쓰는 부분이다”며 “외교문제와 국내정치를 결부시키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정 전 대표의 목소리가 격앙되며 “그게 무슨 궤변이야, 초등학생이라도 상식에 안 맞는 짓 아니겠냐, 말이 돼?”라며 “외교부는 말이야, 국내정치와 관계없다는 게 자랑이 아냐, 지금 장관 이 자리에서 궤변 늘어 놓는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거야?”라고 반말 조로 김 장관에게 따졌다.
하지만 다시 질의차례가 돌아왔을 때 정 전 대표는 공식사과를 전하며 반말 질문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감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노동사태 해결에 심혈을 기울이며 현장밀착형 정치를 구사하고 있는 정 최고위원은 앞서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도 노동자를 대변하며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
이어 지난 20일 고용노동부 국감에서 정 최고위원은 삼성백혈병의 산재를 집중 추궁하며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의 거짓말을 폭로했다. 지난 6월 23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피해자가 처음으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것을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은 직접 녹취록을 들고 나와 삼성 백혈병 판결이 있은 뒤 열흘 뒤인 7월4일 삼성과 항소문제에 대해 대책회의를 벌여 항소를 준비했음에도 이후 3일 뒤인 6월7일 공단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족을 만나 항소심과 관련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항소하면 사전에 알려주겠다고 말한 것.

확실한 색깔 DY
‘왕남’ 국회 복귀


이에 정 최고위원은 “근로자의 재해보상과 보호를 위해 일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이 힘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며 “항소서를 제출하고 난 후 유족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기만이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특임장관에서 국회로 복귀한 이재오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으로 신고식을 치르며 ‘왕남’의 귀환을 알렸다. 지난 2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감에서 그 역시도 ‘복지’를 화두로 운을 떼며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요양기관의 진료비 허위부당청구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산·서면심사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며 현지 조사를 게을리하거나 처리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행위는 공직자로서 일종의 부패"라며 현장에서 직접 뛰며 심사를 진행할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이어 그는 “실제 요양기관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면 불필요한 지출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며 “일년간 각종 부패로 인해 거둬들이지 못하는 세금이 15조원에서 최대 88조원에 달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같은 지출을 줄여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