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구의역 사고가 뭐?” SH공사 회의록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년 5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 수리공이 전동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흔한 지하철역 중 하나였던 사고 현장은 비정규직의 적나라한 작업 실태를 온 세상에 알렸다. 총체적 관리 부실이 앗아간 목숨에 자녀세대는 동질감을, 부모세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으로 치부했다. SH공사 본부장급 내부회의서 나온 발언이다.

때론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 전체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런 죽음의 이면에는 사회의 망가진 부분이 있다. 사회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죽지 않았을 목숨이라는 뜻이다. 2016년 5월 지하철 2호선서 일어난 사망 사고 피해자도 그중 하나였다. 10대 비정규직 수리공은 부실한 작업환경의 희생양이 됐다.

10대 직원 죽음
작업 환경 민낯

2016년 5월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오후 5시57분 직장인들의 퇴근 러시가 한창이던 때였다. 9-4 승강장서 작업 중이던 19세 김모군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김군은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협력업체인 은성PSD 소속 비정규직 수리공이었다.

이날 사고에 전 국민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김군의 가방서 밥 대신 먹으려던 컵라면이 나오면서 안타까움은 더욱 커졌다. 사고 현장인 9-4 승강장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었고 사고 다음날이던 김군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케이크를 두고 가는 시민도 있었다.

20∼30대 젊은 세대는 ‘누구나 김군과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데 동질감을 느끼고 분노했다. 자녀를 일터에 보내고 마음 졸이던 부모세대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김군의 상황에 가슴 아파했다. 실제 추모 현장에는 음식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군의 모친은 장례식장을 찾은 시민들을 향해 절을 올리며 “우리 아이는 시민 안전을 위해서 먹지도 못 하고 뛰어다니다 자기가 안전하지 않은 줄은 몰랐다”며 “엄마 대신에 과자, 즉석밥에 생일 케이크까지 갖다 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6년 10대 수리공 사망
전 국민 깊은 슬픔 잠겨

스크린도어 수리 중 발생한 사망 사고는 구의역서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서 같은 이유로 수리공 두 사람이 죽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재발방지대책이 나왔지만 결국 세 번째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사고 원인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과정서 구의역 사고가 개인의 과실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시민들은 10대 수리공의 죽음이 헛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인 SH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 전임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SH공사 사장을 맡고 있던 변창흠 전 사장은 김군의 죽음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SH공사 ‘건설안전사업본부 부장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2016년 6월30일, 구의역 사고 발생 한 달 만에 열린 이날 회의에는 변 전 사장, 건설안전사업본부장, 하자관리부장 등이 참석했다. 

변 전 사장은 이날 회의 도중 구의역 사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최근 구의역 사고를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게 시정 전체를 다 흔든 것이잖아요”라며 “마치 (박원순)시장이 사람을 죽인 수준으로 공격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추모 열기
음식 놓아두기도

이어 “사장이 있었으면 두세 번 잘렸을 정도로 그렇고, 그 기관은 모든 본부장이 날아간 셈”이라며 “하여튼 어마어마한 일인데 하나하나 놓고 보면 서울시 산하 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거죠”라고 전했다. 

그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된 거잖아요”라고 덧붙였다.

구의역 사고가 김군 개인 과실로 일어났다는 뉘앙스가 담긴 발언이다. SH공사서 본부장 회의가 있던 6월말 경에는 구의역 사고의 배경이 개인보다 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던 시기다.

‘정비기사는 고장 접수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의 계약 조항 때문에 김군은 사고 당일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당시 김군은 구의역 외에도 을지로4가역의 고장 신고도 처리해야 했다. 

구의역서 을지로4가까지는 9개 구간, 시간상으로 18∼20분가량이 걸린다. 을지로4가역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오후 5시20분에 접수됐으니 김군은 6시20분까지 구의역 수리를 마치고 그곳에 가야 했다.

과중한 업무부담은 2인1조의 근무수칙을 유명무실로 만들었다. 서울메트로는 은성PSD가 2인 1조로 근무한 것처럼 서류가 허위로 꾸며 왔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와 해당 역 측에서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사실도 확인됐다.

연이어 반복된 사고에도 안일한 인식을 고수하던 서울메트로의 행태는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게다가 서울메트로는 사고 당일 김군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서울메트로는 사고 발생 나흘 만인 5월31일 유족과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공식 사과했다.

개인 책임 말했던
서울메트로 뭇매

당시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은 사과문을 통해 “사고 당일 경황이 없는 상황서 직원들의 진술만을 가지고 그 책임을 고인에게 전가해 유가족 분들께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사고의 원인은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가 주원인”이라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시정을 총괄하는 박원순 시장의 행보 역시 도마에 올랐다. 박 시장은 사고 발생 3일 만에야 사고 현장을 찾아 늑장대응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사고 발생 다음날인 5월29일 FC서울과 전남 드래곤즈 경기의 시축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으로서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SH공사 측은 변 전 사장이 지난해 11월 퇴임한 전임 사장임에도 적극 비호했다. SH공사 홍보부 관계자는 “(해당 발언은) 안전을 당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며 “마지막 부분이 변 전 사장이 하려던 말의 요지”라고 말했다.

당시 변 전 사장은 문제의 발언 말미에 “하여튼 우리도 현장이 많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하신 것처럼 연습도 해보고 체크도 해보고 해서 조금의 실수 이런 게 없도록 해주시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SH공사 홍보부 관계자는 “현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면 국민 정서에 반하는 발언으로 질책 받을 수 있지만 변 전 사장은 임기가 끝난 지 한참 된 분”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2년 전 내부 회의록을 밖으로 유출하고 이슈화하려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
걔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변 전 사장은 회의 때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변 전 사장은 지난 17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제 기억으로는 구의역 사고가 난 뒤 언론을 통해 (서울메트로가)엄청나게 비판을 받았다”며 “우리(SH공사)도 공사 현장이 40군데가 넘고 임대주택을 20만채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누구 잘못인가는 무관하게 관리 기관으로서 엄청나게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그런 부분서(구의역 사고를) 언급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누구한테든 상처를 줬다면 죄송하다”면서도 “공기업에선 누구의 잘못과 무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져야 하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첨언했다.


지난해 5월28일 사고 1주기에는 정치권서 일제히 추모 논평이 나왔다.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쓰겠다는 말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사고 1주기 당시 참사 재발방지를 위한 서울시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안전 당부하면서
경각심 차원 주장

그 사이 구의역 사고 2주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시스템 손질과 구조 혁신에 대한 목소리는 현저히 작아졌다. 구의역 사고 1주기 추모제에도 참석했다는 한 시민은 “(구의역 사고는)결국 개인의 책임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이런 상태면 제2, 제3의 구의역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자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변창흠 전 SH공사 사장 누구? ‘박원순 시장 최측근’ 

변창흠 전 SH공사 사장은 1996년 SH공사 연구개발실 선임연구원으로 3년간 재직했다. SH공사 출범 이후 공사 출신 첫 번째 사장으로 주거복지와 도시재생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변 전 사장을 논할 때 박원순 서울시장을 빼놓긴 어렵다. 그는 2011년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였던 박 시장의 선거대책위원회서 정책자문단으로 활동했고, 2014년 선거 당시에도 정책 라인을 담당했다.

변 전 사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결국 자리서 물러났다. 내부에선 SH노조가 변 전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서 제기된 블랙리스트 의혹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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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