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동산 구원투수’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2.14 11:52:14
  • 호수 13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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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필패’ 누가 와도 도긴개긴?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물러나고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새 장관으로 내정됐다. 과거 도덕적인 논란에 휩싸였던 변 후보의 김 전 장관 후임 자격 적절성 여부에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

정부가 신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으로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내정했다. 업계에선 주택정책 실무 책임자를 끌어올려 국토부 장관으로 내정한 것에 대해 현재 복잡하게 꼬여있는 주택문제 해결을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LH가 사업시행자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사업 비중이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환매조건부 
사회주의적?

지난 7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 출근한 변 후보자는 주택공급과 관련해 “주택 공급 확대는 (현행)정책 취지에 맞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택 공급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이 정해진 것은 아니고 일단 보고를 받고 청문회에서 검증을 받은 다음에 구체적으로 정책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정부가 주택공급확대 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여러 방향을 정하고 있어서 그런 취지에 맞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변 후보자는 이날 김현미 국토부 장관보다 규제가 더 강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나중에 한번 보시라”고 말했다. 정책의 일관성을 중시한 소신에 비춰보면 최소한 수요억제책이라는 큰 틀은 유지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환매조건부 주택 도입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 정책과 괴리가 있는지 미세하게 살펴볼 것”이라며 기존 정책 노선을 틀 여지는 뒀다.

학자 출신의 변 후보자는 과거 토지 공개념과 재개발·재건축 이익 환수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취임 이후에는 이미 규제 일변도인 부동산 정책에 대해 추가로 ‘좌클릭’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 후보자가 공동 저자로 집필한 서적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맡은 칼럼인 ‘기로에 선 주거 불평등 문제와 개선 과제’에서 고령자의 보수 정당 지지율이 높은 것은 보수 정권이 집값을 올려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변 후보자는 “2014년 기준으로 40세 미만 가구의 자가주택 보유율은 32.8%에 불과하지만 60세 이상 가구의 보유율은 73.9%에 이른다”며 “자가주택 보유율이 높을수록 주택 가격 하락에 저항하는 보수적 성향을 띨 확률이 높다”고 썼다. 

공공 재개발·재건축 가속화 예상
국민의힘 “김현미보다 더할 사람”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고령자일수록 보수정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과거의 경제성장 경험과 지역 기반 네트워크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보수정당일수록 각종 개발사업과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 자신들의 주택 자산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세대 간 주거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청년층이 노인 세대보다 주거문제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으니 이들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촉구하는 의도로 보이지만, 자가 보유자나 고령자에 대한 정치적 편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변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정권 4년 가까이 엉망이 된 국정을 고칠 의지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며 “너무 늦었다” “24번의 실패로 이미 부동산 시장은 수습 불가한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규탄했다.

같은 당 이혜훈 전 의원도 SNS를 통해 “변창흠 내정자는 김현미보다 더할 사람”이라며 “김현미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라 정해주는 대로 따라 했다면, 변창흠은 문정부 부동산 정책의 이론가요 뒷배였으니, 김현미가 종범이라면 변창흠은 주범 격”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일에도 변 후보자와 관련해 “개각이 묘하고, 시기와 대상이 묘하다”며 “국민의 절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현하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끝까지 따지겠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 변창흠 국토부장관 내정자

또 변 후보자는 과거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같은 당 김은혜 의원이 제기한 의혹으로, 변 후보자가 LH 사장에 취임한 이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등 현 정부 실세들이 소속된 특정 학회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 의원은 지난 10월8일 국정감사에서 “변 후보자가 LH사장 취임 이후 1년 반 만에 LH에서 11건, 36억원 규모의 연구용역 수의계약이 체결됐다”며 “전임자가 3년간 8건, 17억원 체결한 것과 비교하면 금액적으로 217%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24번 실패
수습 불가”

그러면서 변 후보자가 일감을 몰아준 몸통으로 ‘사단법인 한국공간환경학회’를 지목했다. 한국공간환경학회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10대 학회장), 조명래 환경부장관(5대 학회장), 강현수 국토연구원장(9대 학회장) 등 현 정부 주요 인사들을 대거 포함한다. 

변 후보자는 이에 대해 “(한국공간환경학회는)주거복지 및 지역발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우연하게 모인 학회”라며 “학회가 어떻게 이권단체가 될 수 있겠는가, 학회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눠줬다’ 또는 ‘부동산 마피아’라고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서초구 아파트’ 재산 축소신고 의혹은 변 후보자가 올해 초 자신 소유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전용 129.73㎡)를 6억원도 안 되는 가격에 신고해 제기된 의혹이다. 변 후보자는 2019년 7월 재산신고 당시에는 ‘실거래가’ 항목 아래 5억9000만원으로 신고했다. 이후 올해 3월에는 비고란에 ‘공시가격 변동없음’이라며, 동일하게 5억9000만원을 적었다. 

해당 아파트는 한 동짜리 아파트로 최근 거래내역이 없어 정확한 시세 파악은 힘든 상황이다. 다만 부동산 업계에선 현재 10억원이 넘어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야당에서는 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가격변동이 없고, 주변 시세와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재산 축소신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LH 측은 최초 매입 후 거래가 없어 불가피하게 국토부 공시가를 기준으로 신고한 것으로, 재산신고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의혹은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은 지난 2017년 10월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당시 국감에서는 SH공사가 주요 간부들의 정치적인 성향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의 친분 여부에 따라 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에 반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시 국감에서 야당은 ‘SH 인사조직 책임자 풀’ 문건을 언급하며 변 후보자(당시 SH사장)를 소위 박 전 시장 라인으로 평가하고, SH를 정치 성향의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변 후보자가 당시 1급 임원을 외부에서 9명 영입하는 등 ‘변창흠 사단’ 구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당시 변 후보자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리스트에서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분류되는 사람들이 실제 대부분 승진했거나 임원직을 맡고 있으며, 문건 작성 사실 자체가 없다고 해명했다. 외부 인사도 새롭게 시작한 도시재생 등 사업을 위해 영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직원들과의 불화 의혹도 있다. 실제로 과거 근무했던 조직으로부터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SH의 경우 노조가 변 후보자의 인사 전횡 의혹을 제기하며 대립한 사례가 있다. 당시 SH에서는 내부 인사가 승진하던 기획경영본부장(상임이사) 자리에 외부인사 영입을 추진했다.

그런데 노조는 변 후보자가 낙하산 인사를 선임하기 위해 임원추천위원회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때 벌어진 변 후보자와 노조의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변 후보자가 근무했던 LH 직원들의 혹평도 나온다.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을 통해 “(변 후보자는)본인이 사장이면서 진주 본사에 안 내려오려고 온갖 핑계를 대서라도 한 주 내내 서울에서 버텼다”며 “팩트를 기반으로 한 보고서는 불편하다고 태클을 걸고 내용을 숨기라 지시하기 일쑤였다. 직원들이 하는 말을 절대로 안 들음”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또 “회사 다니면서 이만큼 최악인 윗선을 못 봤는데 국토부 장관으로 올라갔다. 정말 신기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변 후보자는 경북 의성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도시 계획학 석사,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시도시개발공사 선임연구원과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세종대 교수 등을 지냈고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인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을 맡아 주거복지와 도시 빈곤 분야의 정책 대안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2기 시절인 2014년부터 3년 임기의 SH 사장을 역임하며 행정가로서 경험을 쌓았다. 당시 서울연구원 원장이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하며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업인 ‘도시재생 뉴딜’의 초석을 닦았다.

김 전 실장과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연구원의 전신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SH·LH 사장 거친 ‘주택전문가’
방배 아파트 재산 축소신고 의혹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과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며 국토 균형 발전과 도시재생 정책에도 관여했다. 지난해 4월에는 LH 사장으로 취임해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을 현장에서 시행했다.

변 후보자는 지난 3월 재산공개 당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129.73㎡ 아파트를 1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 아파트는 동이 하나인 ‘나홀로 아파트’로, 올해 3월 기준 공시가격은 5억9000만원이다. 이 아파트를 2006년 매입한 뒤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 후보가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공공자가 주택’이 본격 도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분양가를 낮추면서 개발 이익 사유화를 방지해 ‘로또 청약’ 논란도 잠재울 방안으로 그가 제시해온 개념이다.

공공자가 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한 뒤 일정 기간 토지 임대료를 저렴하게 받는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 후 일정 기간 내 집을 팔 때 반드시 LH 등 공공기관에 되팔아야 하는 환매조건부 주택 두 가지를 묶어서 이른다. 

변 후보자는 “공공 분양과 공공임대 등 2개 제도만으로는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자가주택이면서 분양가가 낮을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개발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수할 수 있는 공공자가 주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변 후보자가 2007년 세종대 교수 시절부터 강조해온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 구상은 최근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며 입법 절차를 앞두고 있다.

지난 6일 국회와 국토부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지난 8월 대표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이 최근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집을 매각할 때 LH 등 공공기관에 되팔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토지임대부
급물살 예상

과거 토지임대부 주택은 이명박정부에서 시범 도입된 적 있으나 분양 후 약 10년 뒤 시장에서 분양가 대비 5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며 ‘로또 아파트’ 논란에 휩싸였다. 전매를 허용한 탓에 저렴한 분양 가격과 주변 주택의 높은 시세 간 차익이 고스란히 분양받은 이들의 불로소득으로 귀결됐다.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고 변 내정자가 국토부 수장이 되면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 도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3조 공기업’ LH 신임 사장은?

차기 국토교통부 장관에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내정되면서 공석이 될 LH의 신임 사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9일 국회와 정치권에 따르면 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조만간 LH 사장직을 내려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 준비로 인해 사실상 LH 사장 역할을 병행하기 어려운 데다, 3기 신도시 등 추진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인 LH의 신임 수장 인선 작업이 하루라도 빨리 이뤄지도록 한다는 취지다.

변 후보자의 사표가 수리되면 LH의 후임 사장 인선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LH는 이후 임원추천위원회를 성해 신임 사장 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원서를 접수받은 뒤 이를 토대로 후보자 검증과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임원추천위원회가 보자 중 2~3배수를 추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 추천하면 공운위가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고 국토부 장관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신임 사장이 선임된다.

공공기관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LH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자산규모가 184조3249억원, 직원은 9567명에 달한다.

또 올해 예산이 23조855억원에 이르고 작년 공사 발주금액만 16조6504억원에 달한다. 

LH가 국내 최대 공기업인 데다 국민 주거복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기관인 만큼 수장 자리를 놓고 항상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 2013년 LH 사장 공모 때는 20명이 넘는 후보자가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동안 LH 사장은 주로 국토부 등 관료 출신 사장이 많았지만 정치인, 교수 등을 지내다 선임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관가에서는 최근까지 국토부 제1차관을 지낸 박선호 전 차관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손발을 맞춰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온 데다 소통에 능하고 정무감각이 뛰어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 전직 공무원이나 학자, 정치인 등 다수의 인물이 LH 사장 공모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주택 문제를 총괄하는 수장 자리인 만큼 다주택 이슈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 과거에 비해 후보자가 적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LH 사장의 임기는 3년이며 1년 단위 연임이 가능하다.

차기 LH 사장의 임무도 막중하다. 수도권 공급 확대를 위한 3기 신도시 조성 사업 시행자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들어 급등한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데도 일조해야 한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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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