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6·13’ 역대 지방선거 흔든 초대형 이슈들 백태

미투, 회담, 개헌…큰 거 한방 더 터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주요 정당은 선거 때마다 전략가를 영입해 판도를 예측하고 작전을 세우지만 민심을 정확히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평소에는 별다른 반향 없이 지나가는 이슈도 선거 때만 되면 대형 태풍으로 변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요시사>가 지방선거를 뒤흔든, 또 6·13지방선거를 뒤흔들고 있는 이슈를 짚어봤다.
 

6·13지방선거가 8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지방선거는 정권교체 이후 치러지는 첫 대규모 선거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여당은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야당은 집권세력 견제의 힘을 얻고자 한다. 80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를 대비해 주요 정당은 이미 선거 체제에 돌입했다.

지방선거
80일 남아

6·13지방선거는 1995년 6월27일 처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시행된 이래 7번째 실시되는 선거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활성화 되면서 전국 각지의 일꾼을 국민 손으로 뽑은 지 24년째에 접어들었다. 

바로 직전인 2014년 6월4일 6대 지방선거에선 시도지사 17명, 시·군·구의장 226명 등 총 3952명을 뽑았다.

지방선거는 국회의원(300명) 선거보다 10배 이상 많은 사람을 뽑기 때문에 각종 이슈에 영향을 받기 쉽다. 지역 이슈는 물론 대형 이슈에 따라 민심이 요동치는 진폭도 총선이나 대선보다 훨씬 크다. 


서울 여의도서 여론조사 회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지방선거는 시·군·구처럼 작은 단위부터 광역시·도 같은 큰 단위까지 한꺼번에 진행되기 때문에 여론조사 정확도가 총선이나 대선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서 여론조사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후보 간 격차가 10%포인트 이상이던 지역이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가 근소한 차이로 나오거나 아예 결과가 뒤집히는 사례가 나타났다. 

‘여론조사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그것도 인구수가 적어 표본이 작은 시·군·구 지역이 아닌 광역시서 결과 예측이 잘못된 터라 두고두고 뒷말이 나왔다. 당시 지방선거 기간 동안 300건이 넘는 여론조사를 진행한 김 대표 역시 “민심은 천심”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이 있다.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질 수는 있으나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 지방자치단체서 결정되는 만큼 중요도는 높은 편이다. 또 대개 정부 출범 중간에 치러지는 선거 특성상 중간 평가의 특징을 띤다. 

이번 6·13지방선거 역시 문재인 정부 2년 차에 진행되는 만큼 일각에선 중간평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직전 대형 이슈가 발생했다. 


2010년의 경우 선거 3개월 전에 천안함 사태가, 2014년에는 2개월 전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천안함 사태로 촉발된 북풍 논란은 역풍으로 작용해 집권여당에 독이 됐고 세월호 사고는 지방선거 이슈를 ‘안전’으로 통합시켰다.

천안함·무상급식·세월호 등 펑펑
2010·2014 선거 직전 판 뒤집어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이명박정부 3년 차와 박근혜정부 2년 차에 각각 실시된 두 번의 지방선거는 결과적으로 집권여당이 당시 지지율만큼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를 넘나드는 상황임에도 6·13지방선거서 집권여당의 압승을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2010년 3월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서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했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명칭은 천안함 피격 사건. 이 사건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정부는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같은 해 5월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6·2지방선거를 석 달 앞두고 천안함 폭침이라는 대형 안보 이슈가 발생하면서 선거 판도는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우세가 점쳐졌다. 이명박정부 지지율도 낮지 않았고 한나라당 지지율 역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보다 앞선 상태였다.

통상 선거를 앞둔 상황서 북한 관련 안보 논란은 보수 정당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0년 6·2지방선거는 달랐다. 이명박정부의 안보무능 논란이 함께 불거지면서 ‘전쟁이냐 평화냐’를 외친 민주당의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 
 

‘북한 이슈-보수층 결집-보수정당 승리’로 이어졌던 공식이 깨진 셈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무상급식 이슈를 점화하면서 논쟁이 불거졌다.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안보 이슈는 ‘먹고 사는’ ‘애들 밥 먹이는’ 문제로 옮겨갔다. 

전국적인 교육복지 공약으로 떠오른 무상급식 이슈는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이미 선거는 끝났다”고 좌절했던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피부에 직접 와닿는 정책이 이념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선거였다.

2010년 6·2지방선거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여당 압승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지만 실제 개표 결과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무상급식 이슈를 선점한 민주당은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에 힘입어 16개 광역단체장 중 7곳에서 이겼다. 

민주당 압승?
뚜껑 열어야


한나라당이 얻은 6석보다 1석 많다. 기초단체장 선거서도 92석으로 한나라당(82석)에 앞섰다.

박근혜정부 2년 차에 진행된 2014년 6·4지방선거는 ‘안전’ 이슈가 지배한 선거였다. 선거 두 달 전인 4월16일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서 침몰하면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인천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을 포함, 총 476명이 타고 있었다. 이 가운데 172명만 구조됐고 304명이 사망·실종됐다. 특히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세월호 참사는 선거판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300여명이 바다 속에 수장되는 모습을 언론으로 접한 국민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 사고 직후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부족한 소통이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참사로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선거 운동까지 보름가량 중단됐다. 모든 후보들은 선거 운동 과정서 ‘안전’을 첫 머리에 내세웠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박근혜정부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6·4지방선거는 야당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압승이 예상됐다. 야당은 세월호 심판론을 선거 전략으로 삼고 정부와 집권여당에 맹공을 퍼부었다.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은 ‘도와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읍소 작전을 펼쳤다.


세월호 심판론과 박근혜정부 수호론이 맞부딪친 6·4지방선거 결과는 무승부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 새누리당이 8석, 새정치민주연합이 9석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 등 수도권 3곳 중 2곳에서 이겼다. 기초단체장은 새누리당이 117석으로 80석에 그친 새정치민주연합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야권에선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여권에선 이만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양당에 기회와 경고를 배분했다는 분석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와 보수층 결집 등의 상황이 민심을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이진 못한 셈이다.

6·13지방선거의 경우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현 상황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맞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3월 둘째 주(13∼15일)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4%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월 첫째 주 대비 3%포인트 올랐다. 지지 정당의 경우 민주당이 50%를 돌파했다. 무당층 25%를 제외하고 자유한국당(12%), 바른미래당(7%), 정의당(5%), 민주평화당(1%) 등 네 정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민주당의 반 토막 수준이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

그러나 결과를 장담하기엔 남은 80여일은 선거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두 번의 지방선거서 각각 ‘여당 압승’ ‘야당 압승’을 예측했지만 결과를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 

‘정치는 생물’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6·13지방선거가 80일 남짓 남은 현 상황서 ‘여당이 크게 이길 것’이라는 분석은 미리 든 축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돌발 변수에
민심 움직여

이번 6·13지방선거서 가장 파괴력 큰 돌발변수로 지목되는 게 ‘미투(#MeToo) 운동’이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지난 1월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성폭력 피해 폭로로 시작됐다.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권력형 성범죄가 피해자의 고발로 세상에 드러나면서 각계각층서 유명 인사들이 평생 쌓아온 명성과 명예는 물론 직위와 직책을 잃었다.

미투 운동은 법조계, 문화예술계, 대학, 정치권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성범죄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은 부정적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는 순간 이미지 추락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비난을 받는다. 
 

정치인들이 미투 운동에 연루될까 몸을 한껏 낮추는 이유다.

정치권서 일어난 미투 운동은 차기 대선 유력후보로 분류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라는 거물 정치인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여비서를 성폭행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밝힌 김지은씨는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서 “8개월 간 4번에 걸쳐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안 전 지사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는 게 중론이다.

‘안희정의 친구’라는 프레임으로 충남도지사에 도전했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역시 불법공천과 불륜 의혹으로 낙마했다. 그는 지난 12일 “미투 운동과 개인사를 가공한 흑색선전은 분명히 다르다”며 “네거티브 공작에 굴복하지 않고 진정성을 갖고 도민과 함께 하겠다”고 선거 운동을 재개했다.

‘성’ 문제 정치권 관건
개헌 여부에 여론 요동?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이틀 뒤인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예비후보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6·13지방선거서 내심 충청권 싹쓸이를 노렸던 민주당은 ‘안희정·박수현 쇼크’로 선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봉주 서울시장 예비후보도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의 보도로 시작된 정 예비후보 관련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정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을 자처해 해당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상황은 아직 진행 중이다. 

현재 정 예비후보 측과 <프레시안>은 맞고소 중인 상태다.

정 예비후보는 복당을 신청했지만 민주당은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있고 미투 운동의 기본 취지에 동의한다는 일환으로 결정된 것”이라며 불허했다. 정 예비후보가 복당 불허에도 선거 운동을 지속하고 있어 향후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장에 도전하려 했던 민병두 민주당 의원도 미투 운동에 연루되자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에선 사퇴 철회 목소리가 컸지만 거취 문제는 6·13지방선거 이후에나 논의될 예정으로 이번 선거 출마 가능성은 사라진 셈이다.

현재까지 미투 운동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러나 다른 정당 역시 안심할 분위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검증된 영향력으로 봐서는 또 다른 후보자가 미투 운동에 연루될 경우 그 후폭풍은 태풍급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일각에선 미투 운동이 선거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4월과 5월로 예정된 남북·북미 정상회담도 변수로 꼽힌다. 문재인정부 들어 북한은 수차례에 걸친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를 긴장 국면으로 끌고 갔다. 

미국은 북한의 행위에 선제타격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강력한 제재를 통한 압박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평창올림픽서 남북 간 화해무드가 조성됐고 이는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은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앞서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 개최 후 열린 총선과 대선에서는 여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분위기에 따라 여야의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다. 또 북미 정상회담은 경우에 따라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북풍 등의 안보 이슈를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

개헌 이슈도 선거 기간 내내 따라다닐 변수다. 청와대는 지난 22일까지 사흘간 ‘대통령 개헌안’ 발표를 진행했다. 문 대통령이 26일 대통령 개헌안 발의 방침을 밝히면서 여야의 갈등은 최고조로 치솟고 있다. 

여야는 정치구조 개편 등의 내용뿐만 아니라 개헌 시기를 두고도 대립하는 모양새다.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의 동시 실시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개헌을 분리하자고 주장한다.

이슈마다
영향 촉각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들은 정부 개헌안을 지지합니다. 정부의 개헌을 꼭 실현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와 있다. 

청원자는 “야당과 국회의 개헌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현재 정부의 의지가 담긴 개헌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청원에는 22일 기준으로 19만5000여명이 동의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상황이라 성사 여부에 따라 민심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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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