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철도시설공단’ 불량부품 의혹

고장 원인 모르지만 일단 설치하고 보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5월 공항철도 수색연결선 하선 선로변에 설치된 고조파 저감장치(RC뱅크)의 소손 사고가 일어났다. 전라선에선 관촌구분소, 죽곡구분소, 금강구분소에 설치된 RC뱅크가 말썽을 부렸다. 서로 다른 지역서 같은 장치가 고장 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공항철도와 전라선의 RC뱅크를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 측은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항철도의 RC뱅크는 재설치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6일 한 언론매체는 ‘고양 신공항철도 변압기서 불…10여분 만에 진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6일 오전 7시쯤 경기 고양시 현천동 신공항철도 변압기서 화재가 발생했고, 공항철도 측이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내용과 달리 당시 실제 불이 났던 건 변압기가 아니라 고조파 저감장치(이하 RC뱅크)였다.

변압기로 보도
실제는 RC뱅크

RC뱅크는 교류전력 이용에 불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파형(고조파)을 제거하거나 저감하는 장치다. 국내서 사용 중인 교류 주파수는 60㎐지만 국가와 지역별로 50㎐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이를 기본파 혹은 기본 주파수라고 부른다.

고조파는 기본주파수에 2배, 3배, 4배와 같이 정수의 배에 해당하는 물리적 전기량을 말한다. 이러한 고조파 전류가 합성되면 전체 파형이 기존파에 비해 찌그러진 파형으로 변하며, 전기기기가 연결된 전력계통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전기철도차량서 발생하는 고조파 전류는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08년 대한전기학회 전기기기 및 에너지변환시스템부문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한국형 고속열차의 주행상태와 고조파 상관관계 분석>에 따르면 고조파 전류의 발생은 인접통신선에 유도 장해를 일으키고 철도신호장애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전원계통에 유입되는 경우에는 보호계전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항철도에 처음 고조파 관련 문제가 생긴 건 2014년 1월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이 작성한 ‘RC뱅크 설치공사 사업추진방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4년 1월23일 공항철도 고속열차(KTX) 직결선 연결공사 시설물 검증시험 기간 중 공항철도 전동열차(AREX)에서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했다.

철도 전문가 A씨는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했다는 것은 전기철도 열차가 진행 도중 갑자기 전원이 차단됐다는 뜻”이라며 “실제 열차가 운행하는 도중에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기관사가 상당히 놀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항철도·전라선서 RC뱅크 문제 지적
공단·코레일 “뭔지 몰라도 문제없다”

문제가 발생한 1월23일에는 KTX열차와 AREX열차가 각각의 운행계획에 따라 동일 상·하행 선로를 운행했다.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한 이유는 주행 중이던 KTX열차서 발생한 고조파가 AREX열차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기연)은 중간보고에서 ‘KTX-1과 KTX-산천 열차에서 발생하는 고조파에 대한 저감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6월4일 공항철도 용유기지 내에 시험용 RC뱅크가 설치됐다. RC뱅크의 설치로 5월29일부터 6월3일까지 매일 발생하던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은 이후 5일에 2번꼴로 줄어들었다.


당시 자료에는 “RC뱅크 적용 시 효과는 있겠지만 전기요금과 유지보수 비용 발생에 따른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그로부터 5개월여 뒤인 11월23일 공항철도 수색연결선 하선 선로변에 RC뱅크가 신규로 설치됐다. 지난해 사고가 발생한 장치다.
 

해당 RC뱅크는 지난해 사고 이후 1년 가까이 재설치하지 못했다. 지난 2월로 예정됐던 설치 일정이 3월 말, 4월 초로 연이어 연기됐다. 20년 넘게 RC뱅크를 제작해왔다는 제작·설치 업체 관계자 B씨는 “해당 제품에 대한 시험과 검사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설치를 코앞에 둔 상황서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공항철도, 공단, 업체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공항철도 관계자는 “공단서 밝힌 사고 원인은 제작상의 결함이라고 했다. (RC뱅크의 경우) 운영은 공항철도서 하는 게 맞지만 제작·설치는 공단 수도권본부 기술처에서 한다”며 “더 자세한 내용은 공단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단 수도권본부 기술처 전철전력PM 관계자는 “제가 사고 이후에 (이 자리에) 와서 잘 모르겠지만, RC뱅크가 선로변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진동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제품이 진동을 견딜 정도로 견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고 밝혔다.

업체 측은 사고가 난 그 자리에 수리한 RC뱅크를 재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RC뱅크 설치 위치는 공항철도 측이 정하는 것으로, 업체엔 권한이 없다. B씨는 “다른 곳에 설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항철도 측은 “당초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통보받았기 때문에 그것만 해결된다면 위치를 바꿀 필요가 없다”며 “제작상의 문제라면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공단은 ‘선로변’이라는 위치가 제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다. 공단의 입장대로면 RC뱅크를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재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항철도와 공단 모두 ‘제작상의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고속·전동열차
양립 현상 감지

반면 업체 측은 공항철도, 공단과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B씨는 “확실하게 드러난 원인은 없다”며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도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업체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유를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닌데... 그날(사고가 발생한 날)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다른 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만 유독…”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항철도와 공단이 사고 원인으로 제품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업체는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의견이 엇갈렸다.

B씨는 공단의 주장대로 위치상 제품이 진동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관련 업체 등 여러 군데서 조사했지만 뚜렷한 ‘정답’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B씨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우리(업체)가 잘못한 걸로 하자고 해서 다시 설치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또 3년이라는 보증기간 내에 사고가 발생했기에 수리를 해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업체 측은 전문가를 투입해서 원인을 분석할 것인지 얼른 수리를 해서 열차가 다니게 할 것인지 두 가지 선택 앞에서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 두고
서로 ‘딴소리’

업체는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해 제품을 수리한 후 재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업체 측 주장대로면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서 제품을 재설치하는 것이다. B씨는 “앞으로도 계속 관련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리를 안 해줄 수 없다”며 그래도 이번에는 공단이 요구하는 대로 제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할 말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B씨에 따르면 실제 문제가 생긴 제품의 경우 ‘충격 내전압 시험’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그 제품과 똑같은 제품을 10년 전에도 납품했기 때문에 서로 협의해 시험을 받지 않는 것으로 처리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 A씨는 “동일 제품이라 해도 설계과정에서 조건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며 “형식시험으로 인정된 제품도 공장 자체검사로 해당 공인기관검사를 대신할 수는 있어도 생략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RC뱅크 관련 자료를 확인한 전문가 C씨는 애초에 성능 없는 제품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철기연은 지난 2015년 1월 문제의 RC뱅크에 대한 성능 측정 결과 분석 자료를 내놨다.
 


자료에 따르면 “RC뱅크를 설치하면서 계양변전소와 수색연결선 사이의 급전구간의 선로임피던스가 안정적으로 변화해 고조파 왜형율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고장현황을 분석해 보면 산천이 KTX에 비해 10배 많이 고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RC뱅크 설치 후 고장 이력을 볼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철기연이 내놓은 향후대책을 보면 해당 RC뱅크의 성능에 더욱 의구심이 생긴다.

철기연은 공항철도와 경의선 간의 접지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RC뱅크의 효과가 없었다”며 “직결선에 설치된 RC뱅크는 당장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계양변전소 등 회로적으로 유리한 개소에 코레일서 보유하고 있는 RC뱅크를 활용해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AREX열차와 KTX열차가 상호양립 할 수 있는 ‘차량 측의 대책’을 요구했다.

명확한 사고원인 밝히지 못해
그래도 계획대로 재설치 강행

같은 해 3월에 나온 ‘RC뱅크 재측정결과 보고서’도 첫 번째 분석 결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RC뱅크 On 조건서 전압종합왜형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는 이전 분석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철기연은 “수색연결선 구간서 RC뱅크 On/Off에 따라 고속열차별 보호동작건수와 총 보호동작건수의 변화가 크지 않다”며 “RC뱅크를 이동하거나 접지단 연결을 변경하는 게 필요하다”는 차선책을 제안했다.

전문가 C씨는 “철기연 보고서를 보면, 처음부터 어느 장소에 RC뱅크를 설치하는 게 최적인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며 “내가 아는 범위서 RC뱅크를 선로변에 설치한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업체는 공단이 요구한대로 제작하고 정해진 기준을 통과, 지정해주는 위치에 설치하는 일만 담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B씨는 관계자로부터 “(성능이) 잘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업체 측은 사고 장소에 RC뱅크 재설치를 앞두고 있고, 공항철도 3개 장소에 신규 설치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B씨는 “새로 들어가는 RC뱅크는 이전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업그레이드됐다. 공단서 승인받았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건설 중인 원주강릉선의 안전성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 A씨는 “원주강릉선의 경우 전동열차, 광역열차(ITX), 고속열차가 동일 상·하행 선로를 이용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공항철도의 사례처럼 전동열차의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실제 운행 중 열차에 이상이 발생하면 올림픽 관람객이나 공항 이용객에 불편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달 11일 대전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역으로 향하던 KTX열차가 고장 나면서 공항철도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공항철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53분 청라역과 영종역 사이 45km 지점인 영종대교 구간서 KTX열차가 고장으로 멈췄다. 이 사고로 공항철도는 1시간30분 동안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됐고, 오전 9시30분에야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공항철도 전동열차와 KTX열차는 인천국제공항역서 서울역까지 상·하행 각 1개 선로를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열차까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운행이 중단된 상·하행선 열차는 일반열차 15대와 직통열차 4대로 파악됐다.

이날 사고로 인천공항에 비행기를 타러 가던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57명 중 16명은 예약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레일 측은 비행기를 놓친 고객들에게 보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KTX 고장에 올 스톱
올림픽 문제없나

원주강릉선에는 RC뱅크 설치를 위한 예비비가 편성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강원본부 관계자는 “실제 열차가 운행할 때 전력이 어떤 상태로 나타나는가를 평가하는 전력품질분석 과정을 거쳐야 RC뱅크가 필요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지금은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공단 강원본부 측은 오는 7월 말로 예정된 시설물 검증 시험 이후 RC뱅크 설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조속히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원주강릉선으로 인해 올림픽에 지장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RC뱅크 왜 고장났나요?
코레일 ‘묵묵부답’

RC뱅크 관련 사고는 공항철도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전북 익산과 전남 여수를 연결하는 전라선서 알려진 것만 네 건의 RC뱅크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11월 전북 관촌구분소서 RC뱅크가 섬락에 의한 아크발생으로 망가졌다. 지난해에는 전북 관촌구분소서 재차 RC뱅크가 고장 났고, 전남 죽곡·금강구분소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소손된 죽곡구분소 RC뱅크 소손장애 현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장치는 고속열차(KTX) 운행 중 구간 내 주행 중인 광역열차(ITX)의 보호 장치 동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돼 운영 중이었다. 공항철도 사례와 그 쓰임이 같다. 

전라선 벌써 네 건 발생 

전라선의 경우도 사고 원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코레일 전남본부 전기처 관계자는 “사고가 있었던 건 맞지만 수리했고, 당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면서도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본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요청하라”고 답했다. 코레일 본사 언론홍보처 관계자는 “전남·전북본부에 해당 사안과 관련해 답변을 요청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수차례 연락에도 끝내 답변이 오지 않았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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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