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 사건의 교훈> 위험한 장외주식

“이희진은 깃털…몸통은 창투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사건은 비상장 장외주식시장서 만연하고 있는 모럴해저드에 경종을 울렸다. 이런 상황에서 <일요시사>는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기업 고위관계자와 복수의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희진은 ‘깃털’, 몸통은 ‘창투사’”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들은 그 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창투사들의 ‘부당거래’도 폭로했다.

이희진은 검찰조사서 장외주식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회원들에게 비싸게 판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하지만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 중에 O사라는 바이오 회사가 있다. 지금까지 O사는 이희진이 악재를 숨긴 채 회원들에게 주식을 비싸게 판 의혹을 사고 있던 회사다. 현재 이 주식은 16만원에서 4만원대로 급락했다. 이희진은 이에 대해 “나도 속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희진은 누구한테 속았단 말인가.

주식시장 쥐락펴락

<일요시사>와 만난 벤처기업 고위관계자는 “이희진도 O사에 투자했던 창투사와 장외주식 업자에게 속을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며 “이희진은 이들 창투사의 ‘땡처리 업자’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한마디로 비상장 장외주식시장을 쥐고 흔드는 ‘몸통’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 몸통이 바로 창투사다. 창투사는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일명 VC)로 불리며, 기술력과 장래성은 있지만 경영기반이 약해 일반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하기 어려운 벤처기업에 무담보 주식 투자 형태로 투자하는 기업이나 그러한 기업의 자본을 말한다.

이들 창투사는 벤처기업이 주식을 상장할 경우 자본이익을 얻어낸다. 다시 말해 비상장 기업을 상장시키는 게 주 목적이다. 현재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 의거해 120여개의 창투사가 등록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창조경제 및 창업에 대한 활성화 정책으로 창투사는 이른바 ‘귀한 몸’이 됐다. 실제로 각 창투사에 유입된 정부 각 부처 자금을 관리하는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반기까지 누적 모태펀드 납입액은 10조9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창투사 업계는 아직 증권가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당거래의 블루오션’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창투사가 ‘벤처기업계에서 갑’이기 때문이다. 유망한 기술과 사업력을 갖고 창업을 한 벤처기업이 기업공개(IPO)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7∼10년이다.

그런데 벤처기업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y, 초기 창업 벤처기업이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사업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넘어야 할 고비를 의미)을 넘으려면 창투사들의 투자가 절대적이다. 창투사에는 벤처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펀드매니저가 있다. 업계에선 이 사람들을 투자심사역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이들 심사역은 해당 벤처 기업의 사정에 정통할 수밖에 없다.

복수의 창투업 관계자들 고해성사
특히 벤처기업 차명주식 조심해야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이 비상장사 주식을 매수하기는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에 대한 정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극소수만 알음알음 장외주식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창투사 심사역에게는 해당 기업에 관한 내부정보가 몰려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급과 물량 그리고 정보가 이들 심사역에게 몰려있기 때문에 이들끼리 주가를 오르고 내릴 수 있다”며 “창투사 업계는 워낙 알려지지 않고 드러나지도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너서클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이너서클에서 이른바 '장외주식 작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서 부당거래가 시작된다. 다른 창투사 관계자 B씨는 “심사역들은 투자를 대가로 이들 벤처기업에 뒷돈으로 차명주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벤처기업에선 심사역들의 이런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없다. 보통 이런 경우 벤처기업의 대표이사나 경영진이 은밀하게 ‘짱 박아둔(?)’ 주식을 심사역에게 나눠준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이처럼 창투사와 벤처기업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한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은 바로 정보다. 그런데 정작 이 정보라는 게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 일반인들은 이 정보를 확인하거나 검증할 수 없다. 오직 내부 관계자만 알 뿐이다. 대부분 정보는 언론에서 나왔기 때문에 일반인은 이를 기정사실이라고 믿는다.

이 때문에 장외주식시장에선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무수히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정보가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것. 한 벤처기업 전무이사 C씨는 “호재와 관련된 정보는 대부분 심사역들이 흘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보가 집중된 만큼 악재를 숨기기도 쉽다. 창투사들은 투자한 벤처기업에 악재가 있을 때 이와 관련된 정보를 사실상 함구한다. 반면 허위로 호재는 지속해서 흘리며, 해당 기업이 유망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한다. 악재를 숨기고 가능한 주가를 최대한 끌어오려는 심산이라는 것.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심사역들과 이너서클은 이 주식을 매각한다. 그런데 이 주식을 과연 누가 살까. 여기서 이희진과 같은 땡처리 업자가 등장한다. 업계에선 이희진같은 사람을 ‘왕다마’라고 한다. 이 왕다마들이 네트워크를 이용, 자신이 산 주식을 다른 업자 혹은 유사수신투자자문사 회원들에게 판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이런 구조로 봤을 때 복수의 창투사 및 벤처기업 관계자들이 주장한 “이희진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검찰 역시도 창투사들의 이런 부당거래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눈뜨고 코베여

이희진을 수사하며 사기성 부당거래와 관련해 창투사들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서울 남부지검은 이희진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창투사 업계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O사를 비롯해 이희진이 거래 했던 주식들을 중심으로 창투사와의 부당거래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희진 슈퍼카 어디로?

‘청담동 주식부자’로 명성을 얻었던 이희진(30) 씨가 결국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서봉규 부장검사)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및 유사수신 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 씨를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씨는 2014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 주식 1670억원 상당을 매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방송에서 비상장 주식에 대한 성장 전망을 사실과 다르게 전달한 뒤 해당 주식들을 팔아 150억원 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아울러 올해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원금과 투자 수익을 모두 보장해주겠다고 유혹해 피해자들로부터 약 240억원을 끌어모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 씨의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한 이희문(28)씨와 친구 박모(28·불구속)씨, 김모(28·불구속)씨도 기소했다. 이씨는 그동안 워낙 많은 주식거래를 해 짧은 시간에 거래 및 피해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실제로 피해자들의 추가 고소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검찰은 이들이 범행으로 벌어들인 수익과 재산에 대한 추징보전을 청구했다. 대상은 예금과 부동산(건물), 외제 자동차(부가티, 람보르기니, 벤츠)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은 정확한 산정이 어렵고, 부동산 가치도 312억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근저당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제 가치와 다를 수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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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