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언론사 파워게임> ‘일진일퇴’ 다음 반격카드

한방씩 주고받고…카운터펀치 나올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큰 싸움이 났다. <조선일보>의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매각 논란 보도. 청와대 작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 전세기 접대 받은 유력 언론인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 논란. 대통령과 밤의 대통령의 대결 양상이다. 일단 송 전 주필의 사표가 수리되면서 청와대가 승기를 잡았다. 청와대는 이 기세로 <조선일보>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조선일보>가 반격에 나설지. 다음 반격 카드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 지난 2013년 <조선일보>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혼외자식으로 한방에 날렸다. 이 때 당시 <조선일보>에 ‘모찌’(청와대서 나오는 고급 정보를 의미하는 은어)를 준 게 청와대라는 설이 파다했다. 채 전 총장을 날린 것은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작품이라는 것. 현 정권에서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한 배를 탄거나 마찬가지였다.

현 정권 들어
아슬한 관계로

그렇다면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틀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한 가지 설은 복수의 법조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다.

한 일간지 법조기자는 “청와대 민정과 <조선일보>는 협력적 공생 관계다. 민정에서 <조선일보>에 고급 정보를 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1등 신문으로서 특별대우다. 이들 사이에는 핫라인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우 수석이 오면서부터 핫라인이 끊겼다. 우 수석이 <조선일보>를 쌩깠다(?)는 말이 있다. 이 때부터 <조선일보>와 우 수석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설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서 수사선상에 송 전 주필이 올랐으며, 그래서 <조선일보>가 검찰 수사를 통해 자사 간부의 멱살을 쥔 우 수석의 멱살을 되잡고 있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문들이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대표 보수 신문과 보수 권력이 대립한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게 중론이다.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우선 청와대가 송 전 주필에 대한 수사를 지휘한 배경이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보수 세력 균열 가능성이다. 보수 세력 내부에 현재 권력에 대한 불신과 거부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비박에서는 차기 권력 창출의 주도권이 박 대통령 손에서 떠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박 쪽에서 <조선일보>에 우 수석에 대한 정보를 줬다는 설도 파다했다. 

채동욱 때까진 좋았는데…왜 틀어졌나
대우조선 의혹 둘러싸고 팽팽한 긴장감
 

이와 더불어 <조선일보> 역시 사사건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를 실었다. 그러자 일각에선 우 수석이 나서서 <조선일보>의 멱살을 잡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우 수석도 <조선일보>에 멱살을 잡히고 만 것이다.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의 내재적 시발점은 이렇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와대가 <조선일보>를 한방 먹였다. 다음 <조선일보>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그래도 명세기 ‘밤의 대통령’이 가만히 당하고 있을까. 서로 쥐고 있는 카드가 무엇일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대한 언급을 하기 전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이번 싸움은 <조선일보>서 먼저 걸었다. 지난 7월18일 <조선일보>는 진경준·김정주·우병우 커넥션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1326억원 강남역 땅을 넥슨이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언론서 우 수석과 관련된 의혹이 쏟아졌다. 그 중 아들 ‘꽃보직’ 논란이 대표적이었다.

싸움 배경 두고
두가지 설 부상
 

우 수석에 대한 비리가 쏟아지자 여론은 우 수석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런데도 우 수석은 사퇴를 거부했다. 우 수석은 기자 회견서 “그만둘 생각이 없다”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정치권에선 ‘이런 의혹에 대해 특검으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같은 달 26일 우 수석에 대한 감찰을 시작했다. 
 


이 감찰관이 조사에 착수한 우 수석 관련 의혹은 ▲처가 측의 법인을 이용해 재산을 축소 신고했는지 ▲진경준 검사장 승진 당시 인사검증을 소홀히 했는지 ▲의경으로 입대한 아들이 보직과 관련해 특혜를 받았는지 등이었다.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체육관광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한 가운데 이번 개각을 통해 우 수석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했다. 우 수석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우 수석을 교체해야 된다는 여론이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개각 발표 이전부터 일관되게 “우 수석 의혹은 사실로 입증된 것이 없다”며 개각과 우 수석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이번 개각에서 우 수석 거취에 대한 발표는 전혀 없었다.

사실상 우 수석을 사퇴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 같은 날 MBC에서 이 감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우 수석은 이 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를 수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고발했다. 

여기서부터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에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개각에 대해 비판했으며, 우 수석 처가가 화성 땅을 차명으로 보유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8일 이 감찰관은 직권 남용 및 횡령 혐의로 우 수석을 검찰 수사 의뢰한다. 

19일 청와대는 선전포고를 한다.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조선일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며 이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한 데 이어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고 공세를 편 것이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한 선전포고였다. 

계속되는 폭로
그 끝은 어디?
 

청와대가 굳이 ‘부패 기득권 세력’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곧 밝혀졌다. 지난달 26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 전세기 접대를 받은 유력 언론인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 유력 언론인이 송 전 주필이다. 당시 김 의원은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같은 달 29일에는 검찰이 우 수석, 이 감찰관, <조선일보> 기자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김 의원은 유력 언론인이 송 전 주필이라고 폭로했다. 

같은 달 30일 <조선일보>는 1면에 우 수석의 집과 사무실은 압수수색서 제외했다고 지적했으며, ‘기자 압수수색은 우 수석 처가 땅 보도에 대한 보복인가’라는 사설을 실었다.
 

이튿날인 31일 <조선일보>는 지면 1면 하단에 송 전 주필의 사표를 수리했으며, 사과문을 올렸다. 검찰은 송 전 주필의 형제 및 부인 등 가족이 보유한 금융 계좌에 대해 자금 흐름을 전방위로 추적 중이다. 검찰은 또 송 전 주필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조선일보>를 때려눕힌 양상이다. 둘 간의 공방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금방이라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 같던 살벌했던 분위기가 숨고르기에 접어들었다. 

[조선일보 선방]↓
[청와대의 반격]↓
3차전 승자는?
 


정치권과 언론계 주변에선 대체로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이번에 두 차례 큰 싸움을 벌였다고 평가한다. 1차전을 <조선일보>가 주도했다면, 최근의 2차전은 청와대가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많다. (1차전의 경우 <조선일보>가 우병우 수석의 강남땅 매매의혹 등 비리혐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 2차전은 송 전 주필의 초호화 외유와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의혹 등에 대한 잇단 폭로.) 

소강상태지만 3차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3차 전에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조선일보>를 공격할 카드가 많다. 먼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비리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어느 정권이든 주요 언론사를 스크린 해놓은 자료가 있다”며 “그런 자료에는 언론사 사주에 대한 정보도 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언론사 비리를 턴다는 것. 현재 시중에 떠돌고 있는 소문에 따르면 ‘방 사장이 한 사립대학 이사장 사면에 대한 청탁건’ ‘TV조선 대주주 모 기업의 검찰조사 무마 청탁건’ 등을 청와대에서 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청와대는 TV조선 종편 승인과 관련한 키도 쥐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히든 카드는
언제 터질까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어떤 카드를 쥐고 있을까. 일단 표면상으로는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채 전 총장도 한방에 날려버린 1등 신문사다. 주필이 상처를 입은 것 정도에 <조선일보>가 백기투항할 일은 없다는 게 평가다. 정보를 다루는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정보에 있어서는 국정원에 뒤지지 않은 게 <조선일보>다. 이번에 피를 흘렸지만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조차도 “<조선일보>의 청와대에 대한 재반격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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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