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청와대 ‘불안한 동거’ 내막

벌써부터 ‘딴지’ 걸면 남은 2년 어떡하라고?

김대중(DJ) 정권 4년차인 2001년 DJ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한동 국무총리를 유임시켰다. 여당은 ‘DJP 공조’가 파기되자 자민련 몫인 이 총리의 해임을 거세게 요구했지만 DJ는 당의 요구를 일축하고 이 총리를 유임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 총리 유임을 주도한 동교동계 해체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 4년차인 2006년에도 인사 문제를 둘러싼 당청 갈등이 불거졌다. 그해 3월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 불거지자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김병준 당시 대통령 정책실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직면한 김 부총리는 여당의 반대를 버티지 못하고 낙마했다. 한 달 뒤 노  전대통령 최측근인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기용설이 흘러나오자 여당은 또 반발했다.

‘당·청 갈등’ 결국은 대통령 인사 문제
청 “보온병에 한 방 맞았다” 한 “거수기 못해”

장관(급)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MB정부 들어 여당이 청와대 결정, 특히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 관련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경우는 없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지난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이 여당발 ‘거사(擧事)’로 규정되는 건 그 때문이다.

‘靑이 당 입장 고려 안한다’
4·27 재보선 앞두고 폭발

하지만 이는 그만큼 여당 의원들이 최근 정 후보자 내정을 둘러싼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친박계 의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친이계 의원들도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었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지역구에 내려가 지난 열흘 간 민심을 체감한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여권 내에서는 ‘청와대가 당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묵은 감정도 쌓여 있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청와대는 아무 생각 없이 (인사를) 하지만 이런 일이 당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면서 “선거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선거를 앞둔 여당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판단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번 거사가 석 달 후에 있을 ‘4·27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행위라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야당이 대대적 공세를 가할 빌미를 제공하면 ‘민심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 일각에서 “청와대에 끌려 다니거나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25개 구청장 선거구 중 21곳에서 패했는데 현 지역 민심은 지방선거 때보다 더 악화됐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민심이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게 된 결정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당선에)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이후 MB정부 발탁 인사의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11.6%로 노무현 정부의 3.4%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MB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총리·장관·헌법재판관·검찰총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은 총 60건이다. 이 중 인사청문회를 통과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정 후보자 포함 8명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MB정부가 ‘일 잘한 정부’라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인사 참 못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MB는 인사 때 ‘일머리’를 가장 중시한다. 개인적으로 능력을 잘 알거나 한번 써 본 사람 중 능력 있다 생각되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일이 잦다. 도덕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일 잘하면 쓴다는 게 ‘MB스타일’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인사(人事)가 망사(亡事)?

정동기 전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청와대의 도덕적 잣대가 국민적 기준과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 정 전 후보자가 7개월 동안 로펌에서 약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민심은 등을 돌렸지만 청와대는 “세금을 다 냈기에 문제될 게 없다”(홍상표 홍보수석)고 말했다. 민정라인 핵심 관계자는 “사회적 관행에 비춰볼 때 과도한 액수는 아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이처럼 도덕성 검증 기준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같은 모습이 계속 연출되는 한 청와대는 앞으로도 도덕성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동기 자진 사퇴’ 입장을 발표하던 시각 청와대에서는 MB가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정진석 정무수석은 회의가 끝날 무렵 “급하게 연락을 달라”고 메모를 남긴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통화가 이뤄졌다. 정 수석은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통보’받았다. 깜짝 놀란 정 수석이 MB에게 보고했으나 MB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MB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보온병’ 맞고 당황한 靑
 한나라‘유감 밝힌 靑’에 유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MB가 보고 받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우리도 무슨 말도 입장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차마 묻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굳은 표정은 이날 청와대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0일 ‘청와대는 당의 결정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연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 수석이 당으로부터 뒤늦게 전화를 받았을 뿐 다른 관계자들은 언론에 보도가 나간 뒤에도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정도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정권 초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권 4년차 증후군 ‘MB 레임덕’ 시발점?
여권 내 힘겨루기 시작? 찻잔 속의 태풍?

청와대는 이날 한나라당이 사퇴 촉구 입장을 발표한 지 6시간이 흐른 뒤 “한나라당이 의견을 밝힌 절차와 방식에 유감”이라는 첫 입장을 밝힐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이 MB집권 4년차 처지를 상징하는 하루로 기록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정권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는 여당”이라며 “그런 여당이 대통령이 어려워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운다면 정권은 한쪽 팔다리가 없어진 셈이다. 그게 레임덕 아니고 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한나라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절차와 방식이 대단히 유감스럽다’라는 논평과 관련해 “청와대가 언제 당과 사전 조율했는가”라며 “청와대가 인사를 마음대로 했으니 당은 당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 후보 사퇴문제는 결국 청와대가 자초한 것인데 청와대의 어제 대응은 좀 미숙했다”고 말했다.

당의 정동기 후보 자진 사퇴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공개적으로 절차상 문제점을 제기해 여당 내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의 문제 제기에 대해 핵심 당직자는 “사퇴촉구 과정에서 청와대와 사전조율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정 후보 문제로 여론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에서 중국 출장을 갔던 김 원내대표가 지도부 결정 과정을 놓고 뒤늦게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당·청 간의 갈등은 ‘봉합’ 내지 ‘숨고르기’ 수순에 돌입한 분위기다. 치열했던 공방은 일단락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인사 검증 관련자에 책임 물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문책할 일이 아니다”라고 물러섰다. 안 대표는 또 당초 연설문에 포함됐던 ‘(정부를)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겠다’는 내용을 뺐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당·정·청이 협의해 잘 해나갈 것이다”라며 에둘러 넘겼다.

‘정동기 사퇴’ 당내 파열음
사그러들 태풍?


‘당·청 관계’의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갈등과 봉합 양상이 반복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당·청 갈등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심지어 그로 인해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진정 친이계 내부 갈등이라면 앞으로 파장과 그 후유증은 클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는 있지만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부 갈등은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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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