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청와대 ‘불안한 동거’ 내막

벌써부터 ‘딴지’ 걸면 남은 2년 어떡하라고?

김대중(DJ) 정권 4년차인 2001년 DJ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한동 국무총리를 유임시켰다. 여당은 ‘DJP 공조’가 파기되자 자민련 몫인 이 총리의 해임을 거세게 요구했지만 DJ는 당의 요구를 일축하고 이 총리를 유임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 총리 유임을 주도한 동교동계 해체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 4년차인 2006년에도 인사 문제를 둘러싼 당청 갈등이 불거졌다. 그해 3월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 불거지자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김병준 당시 대통령 정책실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직면한 김 부총리는 여당의 반대를 버티지 못하고 낙마했다. 한 달 뒤 노  전대통령 최측근인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기용설이 흘러나오자 여당은 또 반발했다.

‘당·청 갈등’ 결국은 대통령 인사 문제
청 “보온병에 한 방 맞았다” 한 “거수기 못해”

장관(급)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MB정부 들어 여당이 청와대 결정, 특히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 관련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경우는 없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지난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이 여당발 ‘거사(擧事)’로 규정되는 건 그 때문이다.

‘靑이 당 입장 고려 안한다’
4·27 재보선 앞두고 폭발

하지만 이는 그만큼 여당 의원들이 최근 정 후보자 내정을 둘러싼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친박계 의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친이계 의원들도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었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지역구에 내려가 지난 열흘 간 민심을 체감한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여권 내에서는 ‘청와대가 당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묵은 감정도 쌓여 있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청와대는 아무 생각 없이 (인사를) 하지만 이런 일이 당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면서 “선거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선거를 앞둔 여당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판단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번 거사가 석 달 후에 있을 ‘4·27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행위라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야당이 대대적 공세를 가할 빌미를 제공하면 ‘민심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 일각에서 “청와대에 끌려 다니거나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25개 구청장 선거구 중 21곳에서 패했는데 현 지역 민심은 지방선거 때보다 더 악화됐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민심이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게 된 결정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당선에)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이후 MB정부 발탁 인사의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11.6%로 노무현 정부의 3.4%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MB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총리·장관·헌법재판관·검찰총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은 총 60건이다. 이 중 인사청문회를 통과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정 후보자 포함 8명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MB정부가 ‘일 잘한 정부’라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인사 참 못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MB는 인사 때 ‘일머리’를 가장 중시한다. 개인적으로 능력을 잘 알거나 한번 써 본 사람 중 능력 있다 생각되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일이 잦다. 도덕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일 잘하면 쓴다는 게 ‘MB스타일’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인사(人事)가 망사(亡事)?

정동기 전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청와대의 도덕적 잣대가 국민적 기준과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 정 전 후보자가 7개월 동안 로펌에서 약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민심은 등을 돌렸지만 청와대는 “세금을 다 냈기에 문제될 게 없다”(홍상표 홍보수석)고 말했다. 민정라인 핵심 관계자는 “사회적 관행에 비춰볼 때 과도한 액수는 아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이처럼 도덕성 검증 기준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같은 모습이 계속 연출되는 한 청와대는 앞으로도 도덕성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동기 자진 사퇴’ 입장을 발표하던 시각 청와대에서는 MB가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정진석 정무수석은 회의가 끝날 무렵 “급하게 연락을 달라”고 메모를 남긴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통화가 이뤄졌다. 정 수석은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통보’받았다. 깜짝 놀란 정 수석이 MB에게 보고했으나 MB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MB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보온병’ 맞고 당황한 靑
 한나라‘유감 밝힌 靑’에 유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MB가 보고 받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우리도 무슨 말도 입장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차마 묻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굳은 표정은 이날 청와대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0일 ‘청와대는 당의 결정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연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 수석이 당으로부터 뒤늦게 전화를 받았을 뿐 다른 관계자들은 언론에 보도가 나간 뒤에도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정도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정권 초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권 4년차 증후군 ‘MB 레임덕’ 시발점?
여권 내 힘겨루기 시작? 찻잔 속의 태풍?

청와대는 이날 한나라당이 사퇴 촉구 입장을 발표한 지 6시간이 흐른 뒤 “한나라당이 의견을 밝힌 절차와 방식에 유감”이라는 첫 입장을 밝힐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이 MB집권 4년차 처지를 상징하는 하루로 기록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정권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는 여당”이라며 “그런 여당이 대통령이 어려워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운다면 정권은 한쪽 팔다리가 없어진 셈이다. 그게 레임덕 아니고 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한나라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절차와 방식이 대단히 유감스럽다’라는 논평과 관련해 “청와대가 언제 당과 사전 조율했는가”라며 “청와대가 인사를 마음대로 했으니 당은 당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 후보 사퇴문제는 결국 청와대가 자초한 것인데 청와대의 어제 대응은 좀 미숙했다”고 말했다.

당의 정동기 후보 자진 사퇴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공개적으로 절차상 문제점을 제기해 여당 내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의 문제 제기에 대해 핵심 당직자는 “사퇴촉구 과정에서 청와대와 사전조율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정 후보 문제로 여론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에서 중국 출장을 갔던 김 원내대표가 지도부 결정 과정을 놓고 뒤늦게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당·청 간의 갈등은 ‘봉합’ 내지 ‘숨고르기’ 수순에 돌입한 분위기다. 치열했던 공방은 일단락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인사 검증 관련자에 책임 물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문책할 일이 아니다”라고 물러섰다. 안 대표는 또 당초 연설문에 포함됐던 ‘(정부를)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겠다’는 내용을 뺐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당·정·청이 협의해 잘 해나갈 것이다”라며 에둘러 넘겼다.

‘정동기 사퇴’ 당내 파열음
사그러들 태풍?


‘당·청 관계’의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갈등과 봉합 양상이 반복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당·청 갈등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심지어 그로 인해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진정 친이계 내부 갈등이라면 앞으로 파장과 그 후유증은 클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는 있지만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부 갈등은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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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