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 ‘우병우 라인’ 추적

권력 중심에 선 ‘왕수석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우병우 민정수석은 청와대 ‘행동대장’이다. 내 몸처럼 움직여줄 행동대원이 필요했을 터. 우 수석은 일명 ‘우병우사단’을 검찰·법무부·국정원 등의 주요 요직에 앉혔다. 이번 우 수석의 스캔들은 행동대원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우 수석은 진경준을 검사장으로 승진시켜준 장본인이나 마찬가지다. 결과는 인과응보였다.

지난해 단행된 우병우(49) 민정수석의 승진은 파격적이었다. 우 수석은 2014년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는데, 약 8개월 만에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진급했다. 게다가 우 수석은 40대 최연소 민정수석이었다.

모르쇠로 일관
언제까지 버틸까

우 수석 진급은 검찰의 기수문화 파괴라는 진통을 겪으며 여러 우려를 낳았다, 사법연수원 19기인 우 수석이 5기수나 선배인 김진태(14기, 65) 당시 검찰총장을 ‘핸들링’하는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나이나 기수로 봐도 김 전 총장은 우 수석의 대선배다(우 수석은 김수남 검찰총장 후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민정수석과 검찰총장간에 마찰이 빚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서초동 일대에 파다했다. 민정수석은 청와대를 등에 업고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을 아우르며 일을 한다. 사실상 민정수석이 검찰총장을 지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수문화가 철저한 검찰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한테 지시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검사들의 자존심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검사들이 제때 진급하지 못하면 검복을 벗는다.


지난해 1월 그가 민정수석이 되고 ‘왕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퇴진하면서 “왕수석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그는 청와대 인사와 함께 단행된 검찰 간부 인사에 자기사람을 꽂아넣는 등 실세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해 2월17일 법무부는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이때 일명 우병우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청와대 민정라인이 재편된 이후 나온 인사라 논란이 더했다. 우 수석 내정 이후 기존의 민정라인은 마치 사전기획이라도 한 듯 모조리 사퇴했고 이후 대부분은 우 수석과 같은 TK(대구·경북) 검사 출신들로 채워졌다.

청와대 등에 업고 경·검·국 주물럭
서울대 법학 동창들 법조계 쥐락펴락

공직기강비서관에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유일준 평택지청장이 임명됐고, 민정비서관에는 TK 출신 권정훈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임명됐다. 그는 검찰 내에서 엘리트코스를 밟고 법무부의 직접 추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검찰 내 우병우사단의 약진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결국 우 수석과 김 전 총장의 관계였다. 우 수석이 검찰 내 영향력을 넓히게 되면 총장과의 완력 다툼은 불가피했다. 검사장급 인사는 김 전 총장이 챙겼지만, 부장급 이하 인사는 우 수석 몫이었다.

김 전 총장으로 대표되는 검찰과 우 수석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간 팽팽한 샅바싸움의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당초 청와대서는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려 했는데 김 전 총장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전 총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성재 대구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최연소 민정수석
정의감 불탔는데…

대검 중수부 폐지와 더불어 권력층 수사를 도맡게 된 서울중앙지검장의 위상은 막강하다. 중앙지검장은 정권 실세들과 ‘직통’하는 자리로 알려진다. 중앙지검장과 청와대의 핫라인이 구축되면 검찰총장은 자칫 고립될 소지가 다분하다. 김 전 총장이 이 자리에 특히 신경 쓴 이유이기도 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전 중앙지검장 자리는 청와대가 김 총장에게 양보한 모양새지만, 그외 주요 보직 인사에서는 우병우사단이 대거 약진했다. 중앙지검장 자리를 양보한 탓에 더욱 뚜렷한 ‘청와대 맞춤식’ 인사가 단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력층 인사의 사정을 주도하는 자리가 모두 우 수석과 가까운 이들로 채워졌다.

최윤수 전 부산고검 차장(사법연수원 22기)이 올해 2월 국정원 제 2차장에 발탁된 건 우 수석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최윤수 당시 대검 검찰연구관이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임명된 데 이어 올해 2월 부산고검 차장에서 국정원 2차장으로 옮겨간 데에도 우 수석의 입김이 개입된 것이란 시각이 있다. 물론 최 차장은 “세간의 오해다. 그분과 그렇게 친분이 있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해외자원 개발 비리, 포스코, 농협, KT&G 비리 등 전 정권 인사 관련 사건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최 차장이 지난 2월5일 단행된 국정원 인사에서 전격 발탁되면서 절친인 우 수석의 인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당시 국정원 인사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청와대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최 차장을 앉히려고 했다는 것. 이는 당시 이병호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그 대신 최 차장이 2차장으로 갔다는 것. 한마디로 국정원은 기획조정실장 자리를 지키고 2차장 자리를 내준 격이었다. 2차장은 국내정보를 담당한다. 우 수석의 절친으로 알려진 최 차장이 가면서 ‘청와대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교체한 셈이다.

이어 지난해 1월 특수1부장으로 발령났던 임관혁 부산지검 특수부장도 우 수석이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재직 시절 평검사로 직접 우 수석을 ‘모셨던’ 전력이 있다. 임 부장은 서울중앙지검 출신 부장검사는 지방으로 보낸다는 김진태 전 총장의 ‘하방 인사’ 원칙마저 무력화시킨 인사 발령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인사의 배경으로 김 전 총장의 하방인사 원칙보다는 우 수석 등 청와대에서 직접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우 수석 뜻대로 인사이동이 이뤄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기수 선후배 뭉쳐
주변인 고공행진

특수2부장에 임명됐던 조상준 전 대검 수사기획과장도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을 맡았을 때 함께 일했다.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일부 물려받은 반부패부장에는 우 수석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낼 때 중앙지검 3차장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올랐다.

결과적으로 우 수석은 법무부나 대검을 통하지 않고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하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경우 관여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를 확보했던 셈이다.
 

청와대 파견 경력이 있는 검사들도 당시 인사에서 요직을 맡았다. 이선욱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검찰과장에 임명됐다. 이준식 법무부 상사법무과장도 각급 검찰청서 진행되는 사건을 보고받고 조율하는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임명됐다. 법무부 검찰과장과 형사기획과장은 과거 ‘검찰 1·2과장’으로 불리던 법무·검찰 기획라인의 최고 요직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검찰 인사도 우 수석의 힘이 확인된 인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자신이 데리고 있던 권정훈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이 법무부 인권국장에 앉았는데, 법무부 인권국장은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핵심 보직이다. 당초 이 자리는 검사장 승진 대상 기수인 23기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영상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검찰 수사첩보를 총괄하는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 자리를 꿰찼다. 각종 범죄첩보와 정보를 수집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이 자리는 대검 내에서도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도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 지검장은 지난해 말 인사 당시 마지막까지 유력한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 차장과 김 지검장 모두 우 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법무부 최고 수뇌부 인사도 우 수석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례적인 인사 뒤엔…”
청 입성 후 개입 의혹

우 수석은 진경준 검사와도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진 검사의 검사장 승진을 우 수석이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사장 승진은 검찰인사위원회서 결정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통해 이뤄진다.

우 수석은 지난해 2월 초 이뤄진 검사장 인사를 주도했다. 당시 검사장급 승진자 9명 중 1명에 진 검사가 있었다. 우 수석과 진 검사는 서울대 법대 2년 선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 수석이 거쳐온 요직을 진 검사가 연이어 맡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 검사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인사) 검증 실무팀에서는 (진 검사가 보유한 넥슨 주식) 부분에 대해 ‘부적절한 거 아니냐’는 실무 의견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무서운 입김
국정 전반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우 수석 처의 부동산을 넥슨코리아가 1000억원대에 매입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 “정부의 권력기관 도처에 널린 우병우사단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권력의 정점에서 인사와 사정, 모든 권력을 전횡했고 심지어 비서실장까지 무력화시킨 장본인인 우 수석 문제는 언젠가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검찰 개혁안
수십년째 약속만…

진경준 검사장이 구속되면서 더 이상 검찰 스스로 달라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의 사과 및 개혁 약속은 역대 주요 검사 비위 사건마다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자체 개혁 약속은 번번이 유야무야됐다.

2010년 스폰서검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김준규 검찰총장은 전국 검사 화상회의에서 “검찰이 국민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마음속 깊이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검찰권 행사에 대해 국민의 통제를 받겠다”고 말했다.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55) 뇌물수수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환골탈태의 자세로 강력한 감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 시기 진 검사장의 ‘뇌물 주식·제네시스’가 적발되기는커녕 진 검사장은 대한항공 등에서 처남 회사 앞으로 130억원대 일감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검찰의 폐쇄적 체제가 오히려 강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2006년 법조브로커 김홍수씨의 폭로로 촉발된 법조비리 사건 때도 대검은 “법조브로커 리스트를 작성·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둘러싼 전관 변호사와 브로커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검찰의 10년 전 약속이 빈말로 확인됐다. 법무부가 1999년 법조 비리 근절 과제로 발표했던 ‘공직자비리조사처’도 17년째 관련 법안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고 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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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