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깎는 기업 구조조정 유도 글로벌 대열 진입 기반 마련 정부와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아가 대통령과 총수는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함수관계다. 그동안 각 기업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어떤 배에 타느냐에 따라 순항과 표류를 반복해 왔다. 유독 거침없이 승승장구한 신흥 재벌이 있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비운의 총수도 있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대 말 한국 경제를 거의 파산지경까지 몰고 갔던 외환위기를 단기간 내에 극복한 ‘경제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란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서 뼈를 깎는 기업 구조조정을 유도해 글로벌 대열에 삼성, LG, SK 등이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경제단체와 재계 인사들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내면서 김 전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IMF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던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강력한 재벌개혁 과정에서 대기업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지만 이는 IMF를 조기 졸업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불편한 관계는 조금씩 개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범국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망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으로 유명해 비망록 존재 가능성을 높인다. 문제는 내용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만큼 그가 생전 못 다한 말들도 굉장한 파급력을 머금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란 점에서 메가톤급 후폭풍까지 예고된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대형 사건들도 한둘이 아니다. ‘김대중 비망록’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을까. 청와대 나와 2005년부터 작업 자서전 내용 관심 파란만장 삶만큼 파급력 촉각…거센 후폭풍 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전 별도의 유언을 남기거나 유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공식적으로 유언 또는 유서 존재를 부인했다. 감동의 일기장 공개 옥중서신도 곧 출간 항간에선 그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이 재산분배 등을 언급한 유서를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박 의원은 이를 전면 일축했다. 다만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쓰던 책상이나 서랍 등에 유서가 보관돼 있
인생을 바꾼 ‘부산정치파동’, 3전4기 정치 입문기 가택연금, 사형선고, 망명 속에 키운 민주화의 등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거했다. 1924년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정치인이 됐고, 군사정부의 반대편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다. 두 번의 사형 선고를 받으면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았으며 1997년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민족이 손을 맞잡았던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의 영광도 있었지만 이후로도 시련은 그를 따라다녔다.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했던 삶 속에서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때문에 그가 남긴 발자취는 거대한 족적으로 남았다. 지난 18일 오후 1시43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큰 별이 졌다.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건강 악화로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85년간의 삶은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시련 속의 정치 도전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DJ의 85년 삶 중 50여 년은 정치인생이었다. 그의 삶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으며 굵
민주·인권 위해 바친 삶, 한국 민주주의 주춧돌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IMF 외환위기 극복 DJ 공과 모두 담은 ‘햇볕정책’·남북정상회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뒤로 그가 쌓은 업적과 미완의 과제가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정치 역경 속에서 일궈낸 민주화와 평화적인 정권교체, IMF 외환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으로 빛나는 남북관계에 대한 기여도가 그것이다. 이 중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전까지 원하던 남북의 평화 통일과 지역갈등의 해결은 남은 이들의 과제가 됐다. DJ 서거를 계기로 그가 남긴 것과 남은 이들이 이어가야 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정치인이었고 연설가였으며 민주주의 인권 지도자였다. 방대한 분량의 독서를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인권 통일 분야에 걸쳐 자신의 철학을 담은 수많은 이론서를 집필한 학자이자 사상가였다. 그리고 그 이름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DJ만큼 전 세계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이도 없다. 그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유수의 지도자와 언론으로부터 &lsqu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인터넷 상에서 ‘DJ 어록’이 퍼져나가고 있다. 달변가이자 대중 연설가였던 그의 무수한 발언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3선 개헌은 이 나라 민주국가를 완전히 1인 독재 국가로 만들어 국체를 변혁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 좌익독재뿐 아니라 우익독재도 똑같다” -1969년 7월19일 3선 개헌 반대 시국대강연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70년대 출간된 저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중 ▲“4·19는 5·16의 안티테제다. 4·19가 정의면 5·16은 불의이고, 4·19가 민주면 5·16은 반민주다” -1980년 4·19 기념강연회 ▲“이 땅에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 정치 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달라” -1980년 5월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후 유언이나 다름없는 최후 진술에서 ▲“민주주의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 원외투쟁 부담에 탄력 받는 등원론 한나라, 10월 재보선, 선거구제 개편 변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야는 ‘포스트 조문정국’을 고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겪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 동반 추락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남은 민주세력의 연합을 통해 ‘반MB전선’을 확대하려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조문정국으로 멈춰졌던 정치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10월 재보선 공천과 9월 정기국회, 이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 논의 등 복잡한 상황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조문정국 후 정세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올스톱된 여의도는 겉으로는 애도를, 속으로는 향후 정국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상주 된 민주당 ‘민주대연합’ 구상 DJ의 서거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 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적 무게처럼 적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남은 이들의 건강상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의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는 YS는 건강 체질인데다 운동으로 관리를 하고 있어 올해 82세인 나이가 무색하다는 평이다.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다. 아침마다 배드민턴을 하고 가끔 등산도 즐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 늑막에 혈흔이 섞인 물이 차는 혈흉 치료를 받은 것도 무리한 운동 때문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동맥 이상으로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전립선 수술을 받아 참석하지 못했지만 지인들과 꾸준히 골프를 다니는 등 건강에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과 ‘3김’ 중 한 명인 김종필 전 총리의 건강은 좋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됐으며 한때 위독설이 나돌기도 했다. 현재 혼자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데다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소뇌의 크기가 점점 축소되는 희귀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친노 진영이 주목받았듯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후에는 그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가 주목받고 있다. 오랜 세월 DJ의 곁에 섰던 이들은 상주를 자처하며 빈소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가 갖는 파급효과는 친노의 그것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현장을 지켜온 친노 진영과는 달리 동교동계는 이미 상당부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교동계 인사들은 권력형 비리나 각종 재판에 연루되면서 정치 일선에서 멀어졌다. 사면 복권이 되기는 했지만 여의도로의 복귀는 쉽지 않았다. 지난 18대 총선에 나선 동교동계 인사 중 박지원 의원만이 DJ측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금배지를 달았을 뿐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당장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노갑 전 고문과 한화갑 전 의원, 윤철상 전 의원, 한광옥 전 비서실장, 안동선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 중 현실정치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이는 한화갑 전 의원 정도다. DJ의 유지를 계승하겠다며 민주진영의 통합 등에 나설 수 있지만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때문에 유일한 현역인 박지원 의원에게
김수환, 노무현 등 사회적 파장 컸던 거목들 영면 잇따른 ‘정신적 지주’들 타계에 국민들 가슴 ‘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국민들의 슬픔이 커지고 있다. 한국 민주화를 일궈낸 산증인으로 국민들의 가슴속에 ‘정신적 지주’로 남은 김 전 대통령. 그의 죽음에 국민들은 동요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 하나 국민들을 허망하게 하는 것은 김 전 대통령보다 앞서 떠난 거목들이다. 올해 들어 유독 존경받던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어른’의 잇따른 타계는 국민들에게 공허함을 안겼다. 2009년 하늘의 별이 된 ‘거성’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셨는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던 김 전 대통령이기에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며 애써 위로했던 국민들. 그랬기에 병원에서 들려오는 위태로운 소식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또…” 잇따른 별들의 죽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투신자살 하라”라고 말하는 등 최근 자주 구설수에 오르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김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추태를 부리는 일만은 없기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밝혔다. 김 명예교수는 지난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인생무상을 느낍니다’라는 글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평화롭게 생이 막을 내렸으니 당장에 할 말을 찾기 어렵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4수 끝에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을 뿐 아니라 덤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면서 “17대 대통령 자리를 민주당 후보에게 주지 못하고 이명박 후보에게 빼앗긴 것은 상심할 만한 가슴 아픈 일이었겠지만 험한 정치판에서 전투마다 몽땅 승리한다는 것은 좀처럼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나는 오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적과 과실을 논하고 싶지 않다”며 “
평소 달변가로도 유명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촌철살인의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김대중 평화센터’ 인터넷 홈페이지(www.kdjpeace.com)는 이 가운데 15가지의 어록을 소개하고 있다. 1.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 2.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자.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3. 목표를 정하면 10년은 한눈팔지 말고 꾸준히 그 길을 가라. 10년만 전심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의 터가 잡힌다. 4. 인생의 목표를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값있게 사느냐에 두어야 한다. 5. 우리는 넘어지면 끊임없이 일어나 새 출발해야 한다. 인생은 종착지가 없는 도상의 나그네이다. 6.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삶에서 성공자가 될 수는 있다. 그것은 무엇이 되느냐에 목표를 두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이다. 7. 내일은 젊은이의 것이다. 야망과 헌신에 찬 젊은이야말로 민족의 꿈이고, 희망이다. 8. 쓸모없는 사람은 찾아오지만 좋은 벗은 내가 찾아가서 사귀어야 한다. 9.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자. 10. 용서와 사랑은 진
친일인명사전에 정치인 선친 다수…또다시 친일 논란 조짐 현 정부인사들 인사청문회서 친일 인사 후손 논란에 허우적 우리 역사의 암흑기라 불렸던 날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져가고 있지만 ‘친일’의 잔재는 아직까지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제의 수탈을 도왔던 이들이 ‘친일’에서 ‘친미’로 재빨리 다른 가면을 쓰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계 요직에 깊이 뿌리 내리면서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일 인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그때마다 파란이 적지 않았다. 이는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8 15를 맞이해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친일 논란을 되짚어봤다. 나라를 되찾은 것은 64년이지만 친일은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친일 문제를 친일 인사들이 평가하면서 제대로 된 해결이 이뤄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친일 인사들의 후손이 유력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친일’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막은 것도 걸림돌이 됐다. 실제 2004년 2월 모 방송 프로그램은 ‘친일파는 살아있다&rsq
8·15가 가까워 오면서 전·현 대통령들의 창씨개명이 주목받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일제시대 당시 일본귀족 작위를 받았다. 조부 윤영렬, 작은 할아버지는 윤웅렬, 당숙인 윤치호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다. 그러나 후에 순수한 일본 이름 냄새가 적다는 지적을 받아 오카모도 미노루로 바꿨다는 말도 나왔다.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당시 국무총리를 맡고 있던 최규하 총리가 직무대행으로서 권력을 쥐었다. 최 전 대통령의 창씨는 우메하라였다. 내각제 당시 국무총리였던 장면 전 국무총리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이름은 다마오카 쓰토무였다. 일제시대 청소년기를 보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각각 가네무라 코유와 도요다 다이쥬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5월27일 연세대에서의 리더십 특강에서 “저희 부모가 옛날에 창씨개명을 했는데, 그래서 항상 친일파가 아닌가 고심했다”면서 “지금도 이 문제는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창씨개명 성은 오까모토
“이 지구상에서 나라를 팔아서 후손까지 영화를 누리게 두고 보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건국 61주년이 다가오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친일파 후손들의 행태에 쏠리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확인해 국고로 환수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와 친일파 후손 간의 힘겨루기가 4년째 ‘진행형’인 탓이다. 땅을 팔아치운 친일파 후손들은 “땅을 뺏는 게 민주주의냐”며 당당한 입장이다. 현재 조사위와 소송을 불사하고 있다. 반면 조사위는 기간 내 이들의 재산을 모두 국고에 환수시키겠다고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게다가 조사위는 일제강점기 정부 고위직으로만 한정했던 재산 환수 대상자를 군과 경찰 등을 포함해 대폭 늘리고 오는 8월15일 발표할 예정이다. 때문에 또 한 번 파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일요시사>는 현재 재산환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21건 중 19건 진행 중, 1심 끝난 15건 모두 “국가환수 정당” 조사위 2006년부터 재산환수 나서 친일파 후손과 법정다툼 조사위가 친일파 후손들을 상대로 재산환수에 나선 것
해방 이후 시작된 친일기업 역사 청산 논란은 건국 61주년을 맞이하는 오늘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다. 당시 일본과의 청탁으로 수해를 입어 이를 기반으로 사세를 확장했던 기업들의 기득권이 후세를 통해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탓이다. 일부에선 해방 이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일제시대 기득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해당 기업들을 지목하고 나선다. 달갑지 않은 지목에 기업들은 다양한 해명으로 입장을 대변한다. <일요시사>가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친일 논란이 제기됐던 기업들의 변명 노하우를 살펴봤다. 역사적 배경 이해 없는 맹비난 ‘답답하다’ 호소 창업주 관련 예민한 논란은 ‘모르쇠’로 입 봉해 민족주의를 내세운 일부 민간단체들은 3·1절과 광복절 등 때마다 일제시대 역사 청산을 외치며 친일 기업들을 지목한다. 일단 지목된 기업들은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늘 따라 붙는 친일기업 꼬리표가 달갑지만은 안은 탓이다. 논란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창업주가 직접 연관된 그룹의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창업주 변호에 앞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대기업들이 있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몰락한 기업이 태반. 그런가하면 아직 떵떵거리는 기업도 많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재계에도 깊게 뿌리박힌 셈이다. 물론 선대의 과오나 오점을 무턱대고 후손들에게 지게 하는 것은 잔혹하다. 하지만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재계 특성상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기업은 어디일까.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이긴 하지만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친일 내지 소극적 협일 행적을 보인 창업주 가문과 그들이 일군 기업 현주소의 대문을 활짝 열어봤다. 미완의 과제 ‘친일 청산’재계도 깊게 뿌리 협일 행적 보인 창업주 가문 ‘대대로 떵떵’ 친일 논란 기업 하면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현정은 회장의 조부가 일제시대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준호씨인 탓이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민족반역자로 분류된다. 호남의 대부호였던 현씨는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해 대표를 지내다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된 직후부터 일제 편에 섰다. 조선총독부 편찬 공로자 명단에 오르는가
장남 재국씨 조성 베일 속 ‘무릉도원’ 실체 드러나 1만7천평 꽃동산…자금출처·투기 의혹 여전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돈방석’에 앉았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수십억원을 들여 대거 매입한 땅이 대박을 터뜨린 것.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경기 연천군 소재 ‘허브빌리지’가 그곳이다. 주민들 사이에서 ‘연천 별천지’라 불리는 이곳은 재국씨가 지난 5년간 공들여 조성한 대규모 농원.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재국씨 땅은 물론 주변의 땅값까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뒤흔든 연천 지역을 가봤다. 지난 2일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한 태풍전망대(휴전선까지 800m)를 목전에 둔 이곳은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상황이라 유독 을씨년스런 기운이 가득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이내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를 동반한 변덕스런 날씨 속에서 간간이 인근 부대에서 총성이 들렸고, 어디론가 바삐 이동하는 군인들의 행렬과 시꺼먼 매연을 뿜어대며 내달리는 군용 트럭들은 긴장감을 더욱 고
1일 체험 민생탐방, 민심 읽고 도정 체험 ‘일석이조’ ‘무한돌봄’ 자랑거리,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 ‘좀 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하루하루가 새롭다. 지난해 세계를 뛰어다니며 외자를 유치하고 수도권 규제 완화를 외쳤던 김 지사는 올해 들어 민심탐방을 이어가고 있다. 의전지사, 탁상행정가라는 비판이 일상적이었던 ‘도지사’에서 벗어나 택시운전기사, 시장상인, 기업 대출상담원, 염색공장 노동자 등으로 변신, 도민들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살아있는 ‘민심’을 느끼기 위해서다. 지령 700호를 맞은 <일요시사>가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나 현 정국에 대한 견해와 도정 현안 및 향후 구상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최민이 편집국장>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민생탐방부터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날카로운 일침까지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을 담아 솔직 담백하게 털어놨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반도가 눈물로 뒤덮였다. 온 국민은 그를 지켜주지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다. 나라의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 민주주의의 꿈이 꺾였다는 참담함으로 그를 향한 애도 물결은 그칠 줄을 몰랐다. 봉하마을에만 1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빈소를 찾는가 하면 서울 시내 곳곳에는 국민들이 만든 분향소가 설치됐다. 이들 분향소를 찾은 국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며 조문을 이어갔다. 추모 행렬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이어지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국민이 애도를 표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수식어를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일찍 세상과 등을 져야만 했던 노 전 대통령. 생전에 그는 스스로 ‘바보’라는 수식어가 싫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의 이름 앞의 ‘바보’라는 수식어가 떼어지고 그가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대가 만들어 놓은
인터넷 방송 와이텐 뉴스의 전유경 아나운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무리들에게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전 앵커는 지난 5월25일 방송에서 “한동안 국민들의 패닉상태가 이어질 듯하다. 서거를 두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금은 어떤 말보다 잠시라도 조용히 그 분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까지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전 앵커는 이어 “야구장에 치어리더가 없어졌다. 왜 방송국에서 예능을 안 하느냐, 왜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가 무채색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이 옆에 계시다면”이라며 “그냥 싸다구 한 대를 날려주든지 입에 재갈을 물려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전 앵커는 지난 5월27일 방송에서도 노 전 대통령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르는 것을 반대한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의 주장에 대해 “말 그대로 웬 ‘듣보잡’이 관심 받고 싶어 이때다 하고 튀어나온 것일까요.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에 반기를 들고 나온 사람이 논객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이번엔 사람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