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4주년 특별기획<1> MB정권 ‘그림자 실세’ 대해부

강산은 10년마다 변한다지만 정치권의 권력지형도는 하루하루가 다를 정도다. 끊임없이 권력에 가까워지는 이와 멀어지는 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권력에 부침이 심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권력의 중심이 바뀌지 않는 이상 ‘2인자’로 칭해지는 권력의 실세들도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실세라 불리는 이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일정한 테두리 안을 돌고 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집권 중반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변하지 않는 실세’들을 쫓았다.

정권 실세들 카멜레온 전법…권력의 그림자 속 여전한 맹위
이상득·강만수·최시중 영원한 MB측근 ‘안되는 게 어딨어’

여권의 권력구도는 당·정·청의 수레바퀴 아래 움직이고 있다. 세 개 톱니를 맞물리면서 돌아가는 구조다. 하지만 정권 초 여권 곳곳에서는 수레바퀴가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음은 대부분 권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친이·친박계의 갈등,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갈등 등 수차례 ‘부서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당·정·청 수레바퀴
실세에 얽히고 설켜

이 같은 잡음은 결국 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이상득 의원, 이재오 전 의원 등이 물러나고서야 잠잠해졌다.

정권 초 이 의원은 막후 실세로 통했다. ‘만사형통’ ‘상왕’ ‘영일대군’이라는 호칭은 당의 ‘실질적인 권력’이 그에게 있음을 짐작케 하는 ‘은어’였다. 18대 총선 공천 개입 논란이 일면서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퇴진운동이 이는 등 위기가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형님’의 손을 들어줬다.


이 의원이 2선으로 후퇴한 것은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직후다. 당의 ‘실질적 대표’였던 이 의원이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안고 물러선 것.

이 의원은 “지금까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해왔지만, 앞으로 당과 정무 그리고 정치여당에 관여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처신을 하겠다”면서 “정치현안에서는 멀찌감치 물러나 있겠다”는 결심을 전했다.

이 전 의원은 이보다도 먼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계의 낙천이 문제가 됐고, 이 전 의원은 박사모의 낙선운동 대상이 된 18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이 전의원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귀국하고도 한참의 시간을 외롭게 보내야 했다.

이후 당은 ‘권력공백기’를 맞았다. 청와대는 이동관 홍보수석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정무수석이 삼각편대를 형성하고 있고, 정부에는 정운찬 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 장수 장관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당에 ‘실세’라 불리는 이는 사라진 것.
당·정·청 전체를 둘러봐도 ‘권력의 2인자’로까지 칭해지는 실세는 부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세’는 더 이상 없는 걸까.

정가 인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외친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실세는 바뀌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최고권력자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실세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처럼 쉽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막후로 숨어 권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좀 더 교묘해졌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아마추어리즘’을 버리고 ‘프로’가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실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는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데다 정권 초 ‘2인자’ 혹은 ‘실세’라 불리며 권력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 현재에도 ‘실세’라는 것.

특히 지난 대선 MB캠프의 최고결정기구였던 ‘6인 회의’에 참여했던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실력’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의원의 경우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이 당·정·청에 포진하고 있다. 청와대에 이상득계로는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꼽힌다. ‘왕비서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비서관은 청와대 비서관을 사퇴한 지 7개월 만에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했다.


박 차장은 취임 후 ‘4대강 살리기 사업’ ‘고용 및 사회안전망 대책’으로 시작해 최근엔 ‘교육비리 근절 및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단장에 임명되는 등 정부 TF팀만 15개를 맡는 등 정부 주요 국정에 참여하고 있어 ‘왕비서관’ 대신 ‘왕차관’이란 별명을 얻었다.

원내대표 경선
‘형님’ 보일락 말락

이 의원이 ‘막후파워’를 발휘했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형님의 그림자’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초 당에서는 원내대표 경선과 관련, 이병석·이주영·정의화·황우여 의원과 고흥길·안경률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거나 경선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하나둘 출마 의사를 접었다.

“중립 위치에서 당을 아우르는 원내사령탑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선 당내 계파화합이 가장 절실하다”며 당 화합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한 것.

급기야 친이계의 지원을 받고 있던 이병석 의원마저 “아름다운 경선보다 아름다운 양보를 택했다”며 물러났다. 정치권 인사들이 의문을 품은 부분도 이것이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의 포항 동지중·동지상고, 고려대 동문인데다 이상득 의원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이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12월 국토해양위원장으로 4대강 관련 사업 예산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면서 당내 세종시 6인 중진협의체에도 참여해 원내대표 당선가능성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비켜섰고, 이 때문에 ‘조율이 있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제기된 것.

특히 이 의원이 출마선언 당시 “집권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의견도 중요하지만 당·정·청에서도 여러 관점이 있을 것”이라고 한 발언이 ‘당·정·청의 조율 가능성’을 불렀다. 단지 청와대의 작품이냐, 형님의 구상이냐는 점에 대해서는 정가 인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 같은 소란을 예감한 것일까. 이상득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자리를 비웠다. 김무성 의원의 출마선언 이틀 전인 지난달 24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 방문길에 오른 것.

이 의원측은 “지난해부터 계속돼온 자원외교 행보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난해 ‘김무성 원내대표론’이 태동했을 때 이 의원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받았던 만큼 이번에는 일찌감치 ‘먼지’가 날리는 것을 피해 바깥나들이를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했다.

당 일각에서도 “이 의원의 2선 퇴진 선언은 ‘앞으로 들키지 않고 더 섬세하게 한나라당을 조종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면서 “출국 전에 김 의원과 조율을 마쳤을 수도 있지 않냐”며 이 의원의 ‘숨은 행보’를 짚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김 원내대표가 손발을 맞춰야 할 수석 부대표로 ‘이상득계’로 분류되는 이군현 의원을 임명한 것도 ‘형님 조율설’을 부채질 했다.


측근들이 화려하게 부활한 이를 따지자면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도 만만치 않다. 강만수 위원장은 최근 김중수 전 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가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된 데 이어, 최중경 필리핀 대사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되면서 이명박 정부 1기 경제팀을 다시 꾸리게 됐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747’ 정책이 실패한 책임으로 지고 물러났던 이들이 ‘화려한 부활’을 꾀하게 된 것이다.

1기 경제팀이었을 당시 경제수석(김중수)-재정부 장관(강만수)-재정부 차관(최중경)이었던 이들이 한은총재-경제특보-경제수석이라는 요직에 올라 다시 뭉치게 된 만큼 ‘화려한 부활’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특히 최 대사가 경제수석에 임명된 데는 강 위원장의 힘이 컸다. 경제수석이 부활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재정부 관료나 학계 출신 인사가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마평에도 오르내리지 않았던 최 대사가 임명되는 것을 보고 정계 안팎에서는 ‘강만수의 힘’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 의원의 친구이자 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 위원장도 각계가 인정하는 ‘실세’다. 그가 맡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현 정부의 방송·언론·인터넷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곳이며 지난해에는 미디어법 개정을 총괄하기도 했다.

MB 경제팀 부활
‘멘토’ “난 허세라니까

지난달 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정치권이 그를 ‘실세’로 보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날 회의에서는 ‘큰집 조인트’ 발언의 진위를 놓고 최 위원장과 야당 의원들 사이에 설전이 이어졌다.


천정배 의원이 “김재철 MBC 사장의 쪼인트를 깐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최 위원장은 “나도 알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천 의원이 “실세인데 그것도 모르냐”고 하자 그는 “나도 허세다”라고 거리를 뒀다.
하지만 천 의원은 “최 위원장이 정권 실세로서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최 위원장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보고, 최소한 관여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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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