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월드컵 기획특집2>대기업, 도 넘은 월드컵 마케팅 대해부



한국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월드컵 개막과 함께 붉은 악마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붉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고 있는 것. 특히 지난 12일 그리스 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열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앞 다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드컵과 맞물린 광고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이 그 이유다. 이 과정에서 ‘깜짝 행사’나 ‘이색 이벤트’ 등 유쾌한 홍보행사도 눈에 띈다. 하지만 지나치면 아니한 만 못한 법. 기업 간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면서 월드컵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은 뒷전에 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불법 광고까지 공공연하게 등장하면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기업들의 축제’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광고경쟁 과열에 시민들 발끈…“응원단 뿔났다”
불법옥외 광고도 버젓이…“벌금내면 되지 뭐!”

롯데백화점·롯데마트는 1등 당첨자에게 대표팀 한 골당 2000만원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주는 경품 행사를 열었다. 1등 당첨자가 받을 수 있는 상품권은 4000만원. 12일 경기에서 대표팀이 두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방문 고객 중 3명을 추첨해 ‘싼타페’ ‘YF쏘나타’ ‘아반떼 스페셜 에디션’ 한 대씩을 경품으로 제공한다.

롯데슈퍼는 4억원이 넘는 현금을 경품으로 내놨다.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100명에게 현금 120만원씩을, 8강에 진출하면 추가로 30명에게 240만원씩을 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 4강에 진출할 경우 10명에게 2400만원씩을 추가로 증정할 계획이다.

‘남아공’ ‘심육강’ ‘한국승’
응원 이름 가진 사람에 경품

패션속옷 전문업체 ‘좋은사람들’은 보디가드, 예스 등 전국 300여개 전문점에서 구매고객들을 대상으로 대표팀이 1승할 때마다 구매금액의 1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행사를 열고 있다.

‘깜짝행사’도 있었다. AK플라자 구로본점은 그리스전 승리에 따라 13일 하루 동안 아디다스,컨버스,피에르가르뎅,파코라반 등의 브랜드를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동백점도 이날 오후 2시부터 커플 티셔츠와 축구화, 축구 유니폼을 추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지급했다.


‘16강 기원 이벤트’도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경우 이달 말까지 파브 3D TV를 구매한 고객 중 총 333명에게 100만원과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보상판매 및 24시간 바로배송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금융권은 대표팀 성적에 따라 우대 금리를 지급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외환은행은 1승 때마다 0.1%포인트씩 최대 0.3%포인트의 이자를 높여주는 ‘월드컵 특판예금’을 내놨다. 신한은행은 16강에 진출할 때 300달러 이상 환전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금 상품 ‘골드리슈’ 50g을 지급하는 행사를 30일까지 열 예정이다.

이색 이벤트도 눈에 띈다. GS샵은 월드컵을 맞아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름에 ‘남아공’ ‘심육강’ ‘한국승’ 등 한국팀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사람이 기업 블로그인 ‘리얼쇼핑스토리(blog.gsshop.com)’에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된다. 응모자 가운데 10명을 추첨해 응모자의 이름을 새긴 붉은 색 티셔츠와 16강을 기원하는 찰떡 선물 세트를 준다. JW메리어트 호텔도 ‘남아공’이란 이름을 가진 손님에게 20만1000원짜리 패키지 상품 객실을 하루 숙박료 436만원짜리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바꿔준다. 260㎡(약 80평) 규모의 이 방은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과 성악가 안드리아 보첼리가 묵었던 방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월드컵 특수를 맞아 기업들의 마케팅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수혜를 거둔 것은 다름 아닌 현대·기아차다. 월드컵 공식후원을 하면서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얻을 광고효과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매 경기당 A보드를 통해 기업로고가 노출됨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로고는 평균 13분가량 경기장에 등장하게 되며, 이 로고는 전세계 앞에 노출된다.

이번 월드컵을 TV로 시청하는 사람은 연인원 약 400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재방송이나 하이라이트방송을 통해서도 현대·기아차의 기업로고는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 광고효과가 막대하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에 이어 3회 연속 FIFA를 공식후원하고 있다. 한·일 월드컵 때의 홍보효과는 6조원에 달했으며, 독일월드컵에서의 브랜드 노출효과는 7조원을 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메시, 호날두, 루니 등 스타들이 총출동해 초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번 월드컵에서 현대·기아차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기아차가 이번 월드컵에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약 3000억∼5000억원 선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투자금의 20배에 달하는 광고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고 있어서 고무적”이라며 “이번 월드컵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브랜드인지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SBS 역시 최대수혜주 중에 하나다. 독점중계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음에도 입가엔 미소가 번져있다. 과거 월드컵에 비해 광고료가 많이 뛴 것이 그 이유다.

현대차 광고효과 10조
SBS 광고매출 1200억

한 증권사의 미디어 담당 애널리스트는 “방송 3사가 중계했던 2002년 월드컵과 비교하면 한국 경기의 광고료가 세 배 정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SBS가 이번 월드컵 중계를 위해 쓴 돈은 1086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반면 광고 판매 등 매출액은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최소 1200여 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 대부분은 “과거보다 비싸긴 하지만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못 낼 액수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만큼 광고효과가 뛰어나단 소리다.

강명수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연구원은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월드컵 마케팅 효과는 투자비의 3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월드컵 응원 특수를 노리는 기업체들의 ‘샅바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자사 브랜드를 부각시키기 위해 신사협정을 위배하는가 하면 경쟁업체의 광고효과를 반감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체들의 경쟁 속에 정작 월드컵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월드컵 응원의 메카인 서울광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각축전이 대표적이다. 서울광장 행사는 당초 서울시가 조례에 따라 ‘기업 브랜드와 슬로건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진행될 예정이었다.

응원행사의 주관사인 현대자동차와 후원사인 SKT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장 응원가 지정 문제부터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응원가가 경쟁 통신업체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 결국 특정 기업을 연상시키는 대표곡들을 응원가에서 배제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뒤늦게 접한 붉은악마는 “마음 놓고 불러야 할 응원가조차 기업이 통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마케팅이 중심에 있는 서울광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응원장소를 강남 코엑스와 봉은사 근처로 변경하는 등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불법광고물이 공공연히 등장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중구 을지로2가 본사 외벽 유리창에 박지성 선수를 모델로 한 대형 광고물을 부착했다. 건물을 감쌀 정도로 커서 이른바 ‘래핑(Wrapping)’이라 불리는 광고물이다.


이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과 시행령에 저촉된다. 옥외광고물법 등에 따르면 광고 현수막은 구청에서 지정한 게시대에만 걸어야 한다. 백화점, 대형마트 건물 등은 유통산업법에 따라 외벽에 광고현수막을 걸 수 있으나 그 외 건물에 광고현수막을 걸면 옥외광고물법 위반이다.

이 밖에도 교보생명은 광화문 본사 사옥에 가로 90m, 세로 20m 크기의 래핑광고를 부착하고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초대형 래핑을 설치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불법이었다.

불법광고물 단속권한은 각 구청에 있다. 그러나 구청의 능력으로는 소형 현수막이나 불법 전단 정도를 단속할 수 있을 뿐 기업의 래핑광고나 초대형 광고현수막은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래핑이나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려면 사다리차를 이용하거나 건물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한다”며 “그런 장비도 없거니와 있다 한들 공무원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 등의 전문 기술을 어떻게 익히겠냐”며 단속 상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결국 구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과태료 또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대 500만원까지 밖에 부과할 수 없다.

이에 최근 서울 중구청은 해당 기업에 “이 광고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며 계고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콧방귀만 뀔 따름이다. 래핑광고의 엄청난 효과에 비하면 벌금은 무시해도 될 만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광고효과에 비해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이 터무니없이 적은 점을 기업이 악용하고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법을 개정해 광고효과에 버금가는 금액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응원가로 아웅다웅
‘시민들 뿔났다’

반면 기업 관계자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적 축제가 있을 때 설치하는 대형 광고물은 비록 불법이라도 공익적 효과가 적지 않다고 항변하고 나섰다.

구청에서 래핑광고를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은 한 기업의 담당자는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것도 아닌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로구청 담당자는 “건물에 래핑을 하거나 현수막을 걸어도 광고물이 아니라면 단속대상이 아니다. 공익을 강조하고 싶다면 로고나 상호, 기업을 연상하게 하는 문구를 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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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