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다. 권노갑 전 상임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는 지난 12일 집단 탈당을 선언했다. 권 전 고문은 탈당 직후 신당 추진 야권 인사들과 잇달아 접촉하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DJ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14년 만에 다시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는 동교동계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다. 권노갑 전 상임고문은 지난 12일, 동교동계 인사 수십 명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집단 탈당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을 지탱해온 두 기둥인 운동권과 호남 가운데 한 축이 무너지면서 더민주는 총선을 앞두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서는 현역의원들의 탈당 러시로 더민주가 국민의당에 밀려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권 전 상임고문은 이날 탈당을 선언하면서 더민주를 선거 패배에 책임지지 않고, 정권교체의 희망도 주지 못하는 당이라고 규정했다. 동교동계의 목표는 제대로 된 야당을 부활시키고 정권교체를 성공시키기 위한 길에 미력이나마 혼신의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도 했다.
정권교체?
지분 요구?
호남과 친노의 결별은 친노의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이 야권 내에서 팽배해지면서 서서히 시작됐다. 지난 2007년 대선부터 최근 각종 재보선에 이르기까지 친노가 장악해온 야당은 참패를 이어왔다. 문재인 체제로는 내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동교동계를 움직였다는 것이다.
권 전 고문은 탈당 후 곧바로 국민의당에 합류하는 대신 제3지대에서 신당 세력의 통합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고문은 탈당 다음날부터 무척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권 전 고문은 이미 탈당을 결심한 박지원 의원, 탈당 후 호남 독자 신당을 추진 중인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전남지사를 잇달아 만났다. 이어 국민의당에 합류한 김한길 의원과도 만났다.
김대중 가신들 친노와 완전 결별
신당 추진 야권 인사들과 접촉중
더민주를 제외한 야권 주요 세력을 대부분 만난 셈이다. 일각에선 권 전 고문의 동선을 보면 동교동계의 통합 시나리오를 엿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교동계의 탈당으로 야권은 문재인 대표를 축으로 한 친노·386·운동권 중심의 더민주와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노·호남·중도의 국민의당으로 완벽하게 양분된 모양새가 됐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동교동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동교동계의 ‘지분 요구설’이다. 동교동계가 야권 분열을 기회로 삼아 몸값을 높이고 지분을 요구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권 전 고문은 지난해 4월, 새정치연합(현 더민주)의 재보선 지원을 약속하면서 “지금까지 당을 운영하면서 (지분을) 주류 60퍼센트, 비주류 40퍼센트로 나누는 관행을 지켜왔는데, 문재인 대표도 그 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동교동계가 재보선을 지원했음에도 문 대표 측의 아무런 배려가 없자 결국 탈당까지 강행하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친노와 악연
복수 위해?
최근에는 동교동계가 탈당 후 국민의당에 곧바로 합류하지 않은 이유가 안철수 의원 측과 지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의혹제기를 한 언론보도도 있었다. 동교동계의 지분 요구에 안 의원 측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양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동교동계는 지난 19대 총선 당시 공천 문제로 집단 탈당한 전력도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당시 탈당을 하면서 ‘친노 패권주의로 불공정한 공천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는데 이후 친노 인사들에게는 ‘친노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동교동계는 크게 신파와 구파로 나뉜다. 구파는 권노갑 고문을 중심으로 김옥두, 이훈평, 박양수 전 의원 등이 있고 신파는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전 의원 등이 주축이다. 동교동계 신파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친노 진영이 주도한 공천 과정에서 대거 탈락하자 탈당해 정통민주당을 창당한 후 총선에 나섰으나 대부분 낙선했다.
그러자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에서는 동교동계 신파 인사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여권 행을 택했다. 이후 한광옥 전 의원은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으며 김경재 전 의원은 최근까지 청와대 홍보특보를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동교동계의 집단 탈당에 대해 단지 친노 진영에 대한 복수의 일환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동교동계 대부분이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인데 지분을 챙겨주려고 해도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겠냐”며 “동교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사건건 친노 진영에 시비를 걸어왔고 과거 쌓인 앙금이 해소되지 않아 탈당한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호남의 한 인사는 지난 해부터 이미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의석을)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친노를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언급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동교동계와 친노 진영은 지독한 악연이다. 2002년 민주당의 대선 경선 때 동교동계가 노무현 후보를 배후에서 지원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정작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동교동계는 줄곧 시련을 겪었다.
계획된 탈당
친노 고립작전?
특히 지난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이 시작되자 동교동계는 참여정부가 DJ의 최대 치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리려 한다고 반발했고, 수사 과정에서 권 전 고문과 박지원 의원 등 동교동계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어 그해 11월 친노 진영이 당시 민주당을 구태 정치세력으로 몰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자 동교동계의 친노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이)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회창이 될까 봐 찍었지”라며 동교동계와 호남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표의 “우리는 부산 정권”이라는 발언도 논란이 됐다. 동교동계의 이훈평 전 의원은 “50년 만에 정권 창출하고 재창출해줬는데, 친노 패거리들이 망쳐버렸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특히 노무현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은 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모이면 “(대북송금 현대 비자금 사건 때) 언론 보도로만 치면 동교동계 인사들은 재벌인데 이 나이에도 식당 등을 운영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친노 진영을 비판할 정도다.
게다가 지난 2012년 총선 이후에도 동교동계 인사들은 당내 경선에서 친노 진영 인사들에게 번번이 밀렸다. 지난해 4월 재보선 당시 관악을에 출마했던 동교동계 김희철 전 의원이 친노로 분류되는 정태호 후보에게 당내 경선에서 밀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탈당 시나리오 오래전부터 준비
지분 요구? 앞으로 행보 주목
당시 국민경선 여론조사에서 두 곳의 여론조사 기관이 동시에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양 기관 간 조사 결과가 15%나 차이가 나 논란이 됐었다. 일반적인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5∼6% 정도다. 김 전 의원 측이 항의했지만 당 지도부는 항의를 묵살해버렸다. 당내 경선 때마다 이 같은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교동계가 오래전부터 친노 고립작전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권 전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손잡고 국민동행이라는 정치 결사체를 만들어 오래 전부터 신당 추진 작업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민동행은 상도동계 좌장 역할을 했던 김덕룡 전 의원과 권 전 고문이 주축으로 만든 단체다. 국민동행에는 상도동계 김덕룡 전 의원과 함께 문정수 전 부산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이, 동교동계는 권노갑 전 고문과 정대철 전 상임고문 등이 참여했었다.
국민동행 발족 당시부터 정가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측근인 김성식 전 의원이 국민동행 발족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었다. 안 의원 측이 안 의원에게 힘을 실어 줄 여야 원로 인사들을 규합하고 있다는 설이었다. 지난 2014년에는 동교동계 정대철 전상임고문이 주축이 돼 구당구국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는 지금은 더민주를 탈당한 정동영 전 상임고문, 천정배 의원 등이 참여했었다. 정대철 전 고문도 지난 15일 탈당을 선언한 상태다.
순수성 의심
진짜 목적은?
당시부터 구당구국 모임이 사실상 중도, 온건파 성향의 정치인들을 규합해 신당 창당을 추진하려는 단체가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구당구국 모임에 참여했던 인사들 중 상당수가 신당행을 선택하면서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됐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탈당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발휘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교동계가 DJ의 가신그룹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은 지니고 있지만 현역 의원이라고는 박지원 의원이 유일하다.
이미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인사들이 민심을 대표하거나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다만 호남 내 반 친노 정서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교동계의 이탈은 호남의 반 친노 정서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호남 출신의 한 인사는 “동교동계는 DJ와 험난한 한국 정치사를 함께한 민주화의 산 증인들”이라며 “당의 어른들도 제대로 못 챙기는 정당이 누굴 챙기겠느냐”고 비난했다.
한편 이 같은 정치권의 풍문들에 대해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무슨 욕심이 있겠나? 집권 가능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우리를 깎아내리려는 공작이 시작된 것 같다”며 “그런 허무맹랑한 목소리엔 신경 쓰지 않고 정권 교체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