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추적> 반기문-박근혜 밀월행보

친박계, 차기 대통령 만들기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해 벽두부터 국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다. 반 총장이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통화에서 위안부 협상 지지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밀월행보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해 벽두부터 국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다. 반 총장은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통화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해 “위안부 문제가 합의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면서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평소 민감한 질문을 잘 피한다고 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까지 가진 반 총장임을 감안하면 정치적 의미가 작지 않다. 반 총장이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뻔히 알고도 박 대통령 힘 실어주기에 나선 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반 총장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는 데 반 총장의 발언을 적극 이용한 것이다.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밀월행보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라인 본격화
박근혜 편들기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반 총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대통령 취임 첫해에만 반 총장을 3차례나 만났다. 2014년 10월에는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친박 주류 의원들이 세미나를 열고 난데없이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세미나의 주제는 ‘2017년 차기 대선 지지도 판세’였고 부제는 ‘반기문 사무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였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친박 추류 의원들이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을 놓고 공개 세미나까지 연 것이다. 내용은 노골적인 반기문 띄우기였다. 발제를 맡은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가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을 제외하면 사실 정권 연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운을 띄우자 국회 외통위원장을 지낸 안홍준 의원은 “당내 인사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기간엔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이 모두 7차례나 직간접적으로 자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뉴욕 도착 이후 첫 일정으로 반 총장 관저에서 만찬을 진행한 데 이어 유엔개발정상회의 기조연설,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 기후변화 주요국 정상오찬, 유엔총회 기조연설, 유엔 사무총장 주최 오찬, 유엔평화활동 정상회의 등을 함께 했다.

특히 당시 반 총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행했던 새마을운동을 극찬해 눈길을 끌었다.

반 총장은 “한국사람 중 한사람으로서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새마을운동이 회원국에 도입되고 실행되고 있어 감명을 받았다”며 “박 대통령의 노력으로 새마을운동을 개도국에 소개하고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맨해튼 중심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당시 반 총장의 발언을 두고 박 대통령을 향한 낯 뜨거운 구애라는 평가까지 나왔었다.

낯 뜨거운 구애?
친박과 상견례 중?

게다가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만난 지난 9월은 마침 추석연휴 기간이었다. 당시 국내 정치권은 정쟁에 한창 몰두하고 있을 시기였다. 반면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세계무대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쓰고 있는 그림을 연출했다. 지난해 추석 여론전의 승자는 단연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었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밀월행보의 절정은 지난 해 두 사람이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나란히 참석한 장면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반 총장의 열병식 참석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은 반 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석은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유엔 측에 전달했다.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이번 기념행사는 쓸데없이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유엔 사무총장은 중립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항의했다. 또 일본은 “(중국 정부가 민주화 시위를 억압한)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장소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해 군사 퍼레이드를 관람하기로 결정한 것에 (올바른 결정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반 총장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비판을 일축했다. 반 총장이 ‘역사’나 ‘교훈’ 등 일본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강경한 입장을 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열병식에는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서방국 정상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만약 반 총장마저 참석하지 않았다면 균형외교를 추구하며 서방 동맹국 중 거의 유일하게 참석을 결정한 박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에 위안부 협상 지지 발언
대선 앞두고 노골적으로…정치권 발칵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박 대통령의 수호천사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외교적 고비 때마다 박 대통령 뒤에는 반 총장이 있었다. 집권 4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외교 성과다.

실제로 신년을 맞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취임 후 3년 동안 가장 잘 한 것을 묻는 질문에 외교적 성과와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이라는 답변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일례로 반 총장이 박 대통령과의 신년 통화에서 위안부 협상 타결을 높게 평가한 것은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던 박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됐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이 취임 후 북한과 맞설 때마다 대통령의 편에서 북한을 압박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밀월행보를 지속하는 것은 서로의 니즈(Needs)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직까지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친박계로서는 반 총장만큼 매력적인 카드가 없다. 현재 친박 진영에선 마땅한 차기주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수호천사?
지지율 상승

여권 내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비박계다. 친박계는 여전히 새누리당 내 최대계파지만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차기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비박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지역과 연령을 넘나들며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 총장은 양극인 호남과 영남에서 모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20대와 60대 지지율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여야의 차기 대선 후보들이 특정 지역과 특정 세대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게다가 반 총장이 대선 캐스팅보드로 불리는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도 큰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 정치권에 불어 닥친 개헌론과 대입해보면 반 총장의 경쟁률은 더 높아진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신하기 위해 최근 정치권에선 이원집정부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외교와 국방 같은 외치의 경우는 대통령이, 나머지 내치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담당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장관 등을 거친 반 총장이 가장 적임자일 수 있다. 이미 전례도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본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됐다. 오스트리아는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임기 마지막해…본격적인 동행?
달라진 행보 확실한 친박 줄서기

지난해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콕 집어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개헌 논의는 여당 내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일인데 난데없이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홍 의원이 개헌을, 그것도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를 하루빨리 내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친박계가 비박계를 견제하기 위해 반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권을 꿈꾸고 있다면 반 총장도 친박계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무리 반 총장의 인기가 높다지만 반 총장은 정치경험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 정치적 기반도 없다. 선거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하부 조직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반 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한다면 순식간에 수많은 인사들이 모여들겠지만, 짧은 기간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인사들로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고 대선캠프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잡음에 시달릴 위험성이 크다.

반 총장이 북한 방문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대권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 총장은 올해가 마지막 임기인데 한반도 평화 안착과 관련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선이 실시되는 내년에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금의환향하려면 올해에는 북한 문제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석이다.

반기문 밀고
이원집정부제 실시?

정치권에서는 경색된 남북 관계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의 최대 화두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 총장이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면 반기문 대망론이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은 대선 출마설이 불거질 때마다 그런 소문이 유엔 사무총장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정작 대선 출마설에 불을 지피고 있는 사람은 반 총장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문은 친노 배신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지난 2004년 6월 ‘이라크 김선일씨 피살사건’ 당시에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정치권의 압박에도 자리를 보전하는 등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반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1년 반이 지난 2011년 12월에서야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를 해 친노계 인사들 사이에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샀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반 총장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향후 변절자라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친노’ 및 야권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