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면…’ 조희팔 은둔지 입체추적

등잔 밑이 어둡다?…서울시내 활보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수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생존설이 주목 받고 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씨가 살아있다는 의혹과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다. 현재 조씨가 숨어 있을 법한 곳을 정리해봤다. 
 

2012년 5월 21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조씨가 2011년 12월 19일 중국 산둥성 연대시에서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박동 정지로 인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조씨는 2011년 12월 숨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생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조씨의 최측근 강태용이 도피 7년 만에 중국에서 붙잡히면서 생사 공방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는 등 조씨가 생존했을 가능성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디 숨었나 

조씨 생존설은 2014년 사정기관 주변을 떠돌았다. 조씨가 중국 산둥성에서 조직폭력배 출신인 한국인 사업가와 만났다는 내용이다. 

조선족 K씨는 지난 2012년 5월 초 중국 산둥성의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조씨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당시 홀로 스크린골프를 찾은 K씨가 세 명의 남성과 스크린골프를 하고 있던 조씨에게 조인을 해도 되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18홀 라운드를 마친 조씨가 고스톱을 제안했고, 그렇게 1점당 50원의 내기 고스톱 자리가 마련됐다. K씨는 “처음엔 조씨인 줄 몰랐는데 장시간에 걸쳐 고스톱을 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조씨이다라고 말을 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K씨는 조씨가 중국 공안과 조폭 등 배후조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고스톱 자리에서 조씨는 “공안에 10억원을 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조씨의 장례식이 치러지기 직전인 2011년 11월 무렵, 밀고자의 신고로 중국 공안에 조씨가 붙잡혔다고 한다.

당시 K씨는 지역 신문을 통해 조씨의 검거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K씨는 “조씨가 중국 공안 등 비호세력에게 10억 원을 건네면서 풀려났고 그 대가로 사망을 조작해주고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밀항 직전 조영복이라는 이름의 조선족으로 신분을 세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조씨의 밀항을 도와 해양경찰에 체포됐던 최모씨는 “이미 (조씨는) 중국에서 사용할 조영복이라는 가짜 신분증까지 챙긴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한 언론사가 중국 산둥성 청도의 한 골프장에서 입수한 라운드 기록을 살펴보면 2011년 12월부터 2013년 1월 19일까지 11차례에 걸쳐 조영복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필리핀에서도 조씨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필리핀에 조씨가 거주한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나오기도 했다. 조씨가 필리핀 클락에서 망고 농장을 인수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에서 다각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씨의 거주지로 꼽히는 필리핀 클락은 국내 골퍼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또 필리핀의 대표 휴양지의 리조트 사업에 100억 원을 투자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조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직후인 2009년 필리핀의 한 유명 휴양지에서 현지 교민들에게 자주 목격됐다는 것이다. 당시 조씨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수배자로 필리핀 현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자취를 감춘 것으로 전해진다. 몇 년 뒤인 2013년부터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조씨가 리조트 사업 투자를 위해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중국 중점적으로 조사…산둥성 일대 유력
필리핀·라오스 등 동남아 곳곳서 목격담
 

반면 조씨가 국내에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3월 초 한 목격자는 전북 전주시 산정동에 있는 수석경매장에서 조씨를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제보자에 따르면 조씨는 검은색 정장을 착용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으며, 선글라스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또한 내연녀로 보이는 40대 여성 두 명이 동행했으며 보통 체격의 한 남성이 조씨를 보디가드처럼 지키고 있었다. 이 제보자는 “수석경매장은 도난 방지 차원에서 문턱이 높고 많아서 휠체어가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강한 인상을 남겼다”며 “주변에서 ‘조씨는 죽었는데’, ‘조씨가 확실하다’ 등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덧붙여 “옷깃만 스쳐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동행 남성으로 보아 조씨라고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씨가 휠체어에 탔다는 증언은 지난해 2월 중국 산둥성 위해시의 한 한인카페에서 조씨를 목격했다고 익명 제보자가 밝힌 증언과도 일치한다. 

이외에도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조씨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바실련)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들어온 제보는 중국과 라오스에서 조씨를 봤다는 목격담”이라며 “주로 골프를 치는 등 조씨가 호화로운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바실련은 조씨가 최초 도피지인 중국을 벗어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전전하며 ‘호화 도피’를 하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수사 당국은 조씨가 여전히 중국 산둥성 일대에 은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앞서 조씨는 막대한 뒷돈으로 조폭이나 공안을 매수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한국 검찰과 경찰이 현지 수사를 벌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공안과 조폭 등의 비호 하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산둥성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호화 도피 중” 

물론 그가 일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산둥성을 벗어났을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인근의 랴오닝성과 조선족이 많은 지린성 도피설이 신빙성 있게 퍼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오랜 동안의 생활 근거지였다는 사실, 현지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은 현실 등을 감안하면 다시 산둥성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의 사망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게 아무것도 없으며, 생존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씨 그는 어디 있는 걸까.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희팔 후폭풍' 불법다단계 특별단속 

경찰이 유사수신 범죄에 대한 무기한 특별단속에 난선다. 유사수신 사기로 수조원대 이익을 거둔 조희팔 사건이 검찰·경찰의 재수사로 주목을 받는 가운데 나온 조치다. 경찰청은 8월19일부터 지난달까지 경제질서 교란사범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인 데 이어 4일부터 유사수신에 대해서만 추가로 특별단속에 들어갔다고 5일 밝혔다. 

유사수신은 인·허가나 등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원금 이상의 이익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자금을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경찰은 이번 단속의 종료 기간을 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 근절 분위기가 형성될 때까지 지속하기로 했다. 특히 각 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전담수사팀을 지정하고 경찰청 본청이 전국 경찰관서에서 내사 중이거나 수사의뢰를 받은 사건을 모두 보고받아 수사 지휘에 나설 방침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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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