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단두대 매치' 노림수

애증의 관계…결국엔 너 죽고 나 살기?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난 대선 때부터 애증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또 한 번 정치생명을 건 대결을 펼치려 하고 있다. 그동안 조용한 행보를 이어오던 안 의원은 “혁신안은 실패했다”며 문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졌고, 문 대표는 재신임투표도 불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두 사람의 맞대결엔 어떤 노림수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선 때부터 애증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정치적 라이벌이다. 그런 두 사람이 또 한 번 정치생명을 걸고 한판 대결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7·30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당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공개활동을 자제해오던 안 의원은 “혁신안은 실패했다”며 문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 혁신위원회가 친노진영에 유리한 공천룰을 발표하자 비노진영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러자 문 대표는 재신임투표라는 깜짝카드로 맞서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5일 비공개회동을 가졌지만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안 의원은 혁신안을 의결할 중앙위 개최의 연기를 요구했지만 문 대표는 중앙위 개최를 강행했다. 지난 16일 새정치연합 중앙위에서는 비노진영이 퇴장한 가운데 혁신안을 투표도 없이 박수로 가결시켜버렸다.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두 사람의 맞대결엔 어떤 노림수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반혁신 혁신안
비노의 절규

두 사람의 자존심 대결이 거칠어지면서 당 안팎에선 안 의원이 탈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탈당설에 대해 안 의원의 최측근인 새정치연합 송호창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그럴 뜻이 전혀 없다고 몇 차례 공언을 했다”면서 “지금 국민이나 당원이 원하는 것은 분당이나 신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있다. 안 의원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돌발행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 안 의원은 갑작스런 대선 후보직 사퇴나 민주당과의 합당을 결정하면서 최측근들에게조차 그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됐었다.

이미 탈당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진 박주선 의원은 안 의원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당에 머물 명분과 이유가 없다”면서 “탈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안철수, 문재인에 칼 겨눈 이유?
총선 앞두고 지분 챙기기 목적?

일각에선 안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당 혁신안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표에게 후보자리를 양보한 후 좀처럼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안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단숨에 이슈 중심에 서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안 의원의 최측근 송호창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의원의 최근 행보가 몸값 올리기를 위한 권력투쟁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면이 있다”며 솔직히 인정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정치지도자라고 하면 당연히 권력투쟁에서 이겨야하는 거고, 그래야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며 “정치인이라고 하면 (몸값을 올리기 위한 권력투쟁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단숨에 문 대표와 동등한 위치에까지 올라섰다. 

권력투쟁 당연
세력 키우기


안 의원은 이번 사태를 거치며 어느새 비노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비노진영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끼리도 단합이 안 되는데 어떻게 친노의 독주를 막겠느냐”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왔었다.

대표적인 비노인사 김한길 전 공동대표도 “비노라는 건 특정조직이나 이해로 뭉친 계파가 아니라 친노가 아니라서 비노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안 의원이 비노의 구심적 역할을 할 인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혁신안 중앙위 통과 과정에서 비주류 의원 12명은 성명서를 내고 “반대의견을 무조건 반혁신으로 몰아 토론을 봉쇄했다. 구태정치이자 패권의 민낯”이라며 “혁신이 유신이 됐다”고 날을 세웠다. 이외에도 많은 의원들이 중앙위 표결 직전 회의장을 빠져나왔고 문 대표를 비판했다.

만약 안 의원이 문 대표에게 반기를 들고 나선 의원들을 하나로 모을 수만 있다면 단숨에 거대 계파의 수장격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내 취약한 정치적 기반이 가장 큰 약점이었던 안 의원으로서는 정치인생 최대의 기회를 맞게 된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느슨한 연합체였던 비노진영이 안 의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친노진영에서도 더 이상 비노진영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안 의원의 행보가 결국 내년 총선에서의 지분 챙기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미 안 의원의 측근들은 내년 4월 총선을 위한 채비에 속속 나서고 있다. 안 의원의 몇몇 측근들은 출마지역에 벌써부터 사무실을 개소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 의원이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당내 세력이 절실하고 이들을 반드시 원내에 진입시켜야 한다. 때문에 이번 사태를 통해 문 대표를 흔들고 총선 지분을 확보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안 의원은 문 대표에게 ‘낡은 진보 청산’ ‘당내 부패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을 제안하며 문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면 함께 노력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이 제시한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다. 사실상 문 대표에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며 “문 대표와 끝까지 각을 세우려 했다면 그런 당연한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 의원이 원하는 것이 결국 공천 지분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안 의원의 도발에 재신임카드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맞대응한 문 대표의 속내도 궁금하다. 문 대표는 비노진영의 당대표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비노진영을 겨냥해 기득권과 공천권을 챙기기 위해 당대표를 흔들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하려다 철회하기도 했다. 문 대표가 내민 재신임카드는 재신임을 통해 비노진영을 아예 정리하고 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재신임카드가 단순한 정치적 쇼는 아니었는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은 딴전
내부 권력투쟁

이미 친노진영에서는 당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된 만큼 재신임투표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비노진영에서도 당내 분열을 일으키는 재신임투표를 철회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측근 비리가 불거지자 재신임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했지만 여론은 국정혼란을 우려해 재신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국민투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표가 과거 노 전 대통령이 재신임카드로 위기를 모면했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문 대표로서는 재신임투표가 실시되더라도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일 수도 있다. 문 대표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추석 전 재신임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비노계의 한 인사는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해야지 현직 당대표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하면 웬만해선 재신임 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겠느냐”며 “과거 아무리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도 막상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하면 재신임 쪽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존재감 없어질까? 정치적 기지개
‘상극’ 안-문 격돌은 예정된 수순

문 대표가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새정치연합은 총선을 7개월 앞두고 갑작스런 지도부 공백상태를 맞게 된다. 이런 방식의 재신임투표로는 문 대표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 문 대표를 재신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당원투표 결과에 따라서도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당대표직에서 아예 물러나기로 결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친노진영은 당원 투표에서 불리하고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혁신안을 통해 친노에 유리한 공천안을 모두 통과시켜놓은 만큼 몇 달 더 당대표직을 수행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며 “차기 총선 전망이 야권에 불리한 만큼 오히려 당대표직에서 미리 물러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문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렀다가 패하면 문 대표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되지만 미리 당대표직을 내려놓으면 당을 위해 선당후사 했다는 명분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당대표 버리기?
난파선 탈출?

또 이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만큼 어차피 총선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어느 한 쪽이 과반을 넘기더라도 다른 진영의 협조 없이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야권의 텃밭에서만 모두 승리해도 그 정도까지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묘한 균형 감각이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패하면 차기 대선지형은 (야권에)오히려 유리 해진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조국 혁신위원도 문 대표의 백의종군을 요구하며 문 대표의 조기사퇴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꼭 둘 중 한명이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라며 “문 대표가 친노 측 공천권을 과감하게 양보하고 친노 중진들의 총선 불출마선언까지 이끌어 낸다면 얼마든지 비노진영과 화합이 가능하고 당 지지율도 반등시킬 수 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두 사람의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 두 사람의 정치생명을 건 단두대 매치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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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