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혁신위 '비노 제거작전' 로드맵

"염불(혁신)보다 잿밥(비노 쳐내기)에만 신경?"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당내 갈등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혁신위가 10차 혁신안을 통해 총선 공천 선거인단의 국민참여비율을 현행 60%에서 최대 100%로 상향하기로 하자 비노계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혁신위가 혁신안을 가장해 ‘비노 제거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왜 그런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지금까지 발표된 새정치연합의 혁신안들을 분석해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를 둘러싼 친노계와 비노계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혁신위는 지난 4·29재보선 참패로 비롯된 당 내홍을 수습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당내 갈등은 오히려 증폭됐다.

혁신하랬더니
트러블메이커

특히 혁신위가 당의 혁신과는 관련 없는 제안들도 마구잡이로 쏟아내면서 월권 논란까지 불거졌다. 대표적인 비노인사인 안철수 의원은 최근 “혁신위는 실패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안 의원의 발언에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성급하고 무례한 발언”이라며 반발하면서 볼썽사나운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혁신위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자 문재인 대표는 급기야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하고 나섰다.

이 같이 친노계와 비노계의 극한 대립을 촉발한 것은 혁신위가 지난 7일 발표한 10차 혁신안이다. 혁신위는 이날 총선 공천에 참여하는 선거인단의 국민참여 비율을 현행 60%에서 최대 100%로 상향시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당내 비노계 의원들은 “당원은 배제되고 고작 300명에서 1000명의 국민공천단을 선발해 후보를 뽑으면 열성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친노세력이 무조건 유리하다”며 “친노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고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고위 폐지로 비노 중진 무력화
현역 평가위, 비노 호남 정조준

일반적으로 경선 선거인단에서 일반 국민의 구성 비율이 높으면 친노진영이 유리하고, 권리당원 비율이 높으면 당생활을 오래 한 비노진영이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2·8전당대회에서 친노인사인 문재인 대표는 비노인사인 당시 박지원 후보에게 국민여론조사에서는 크게 앞섰지만 권리당원투표에서는 약간 뒤졌다. 그럼에도 혁신위가 내년 총선 공천에서 국민참여 비율을 최대 100%로 늘리기로 한 것은 노골적인 비노계 제거작전이라는 지적이다.
 

비노계의 한 인사는 “1차부터 최근 발표된 10차 혁신안까지 전부 다 문 대표와 친노계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친노진영이 당을 혁신해야 할 혁신위를 이용해 오히려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꼼수를 쓰는 것은 도덕적으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비노진영에선 왜 이 같은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발표 된 혁신안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공정 혁신?
비노계만 손해

혁신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혁신위가 발표한 제1차 혁신안의 경우 ‘재보궐 원인 제공 시 해당지역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로 기소 시 당직 박탈’ ‘당무감사원 설립 및 당원소환제 도입’ 등이 포함됐는데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재보궐 원인 제공시 해당지역 무공천 방침은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호남에서 패할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의 민심이반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또 다시 호남에서 패한다면 당장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비노계의 공세가 본격화 될 수 있다. 이를 미리 차단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혁신위는 또 부정부패 연루로 기소 시 당직을 박탈하고 공천에서도 배제하겠다는 입장인데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비노인사인 박지원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사정권에 들어있다. 박 의원은 저축은행 비리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김 의원은 새누리당 성완종 전 의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후 발표된 2차 혁신안 역시 최고위원회와 사무총장직을 폐지하기로 해 논란을 일으켰다. 비노진영에선 최고위원을 없애면 문 대표의 권한만 더 강화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을 없애면 당대표가 당무의 모든 권한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평가를 하게 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혁신위가 난데없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됐다. 당장 비노계는 혁신위가 혁신안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오픈프라이머리 수용 여부에까지 입장을 밝힌 것은 월권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당내 비노인사들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계파갈등을 타파할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노계에서는 이 역시 혁신위가 문 대표의 공천권을 사수하기 위해 벌인 일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2·8전당대회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공약했었지만 혁신위의 발표 이후 혁신위의 결론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혁신위에 힘을 실어줬다.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원 정수 확대를 요구한 5차 혁신안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은 의원 정수 확대 요구는 친노진영의 정치실업자 구제대책이라며 깎아 내렸고, 당내 비노인사인 조경태 의원도 “국회의원을 늘리는 것이 무슨 혁신이냐”면서 “결국 권역별로 나눠먹기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비노계의 한 인사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결과적으로 영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친노진영이 가장 큰 혜택을 받지 않겠냐”며 혁신위를 비판했다. 혁신위의 의원 정수 확대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문 대표조차 “지금 의원 정수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지만 조경태 의원은 의원 정수 확대와 관련해 문 대표와 혁신위의 교감설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문 대표가 과거에 의원 수를 400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혁신위의 발표가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발표한 제6차 혁신안에 대해서도 비노진영의 반발이 거셌다. 혁신위는 이날 ‘새정치연합을 민생복지정당으로 만들자’는 내용의 당 정체성 관련 6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상곤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정치연합의 이념은 ‘민생제일주의’이고, 당에는 ‘민생파’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혁신위는 이를 위해 선(先)공정조세, 후(後)공정증세를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좌클릭 유도
비노는 무시

사실상 부자 증세 후 복지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왜 당 정책위에서 정해야 할 일을 혁신위가 발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중도층을 공략해야 한다는 비노진영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된 채 결국엔 좌클릭하자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졌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혁신위가 내년 총선 때 비례대표 후보의 3분의1 이상을 민생전문가와 현장활동가로 공천해줄 것을 요구한 점이다. 혁신위는 비례대표후보 상위순번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배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비노진영의 한 인사는 “과연 순수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비례대표후보로 공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엔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사람들로 비례대표를 채우겠다는 것 아니냐?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친노계는 비례대표에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공천해 정치투쟁만 일삼았다. 20대 총선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전문성 있는 인사를 영입하겠다는 당초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역별비례제도는 영남 친노 유리
처음부터 끝까지 친노 위한 포석?

같은 맥락으로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후보 중 10% 이상을 청년 후보에게 할당할 것을 제안한 7차 혁신안에 대해서도 비노진영에서는 불만을 표출했다. 한 비노계 인사는 “지난 총선 때 청년비례대표로 입성한 김광진, 장하나 의원을 보면 된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친노 강경파 인사로 분류된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대거 공천을 주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혁신위가 발표한 8차 혁신안에 대해서는 ‘친노가 아닌 사람은 당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혁신위는 8차 혁신안을 통해 “100% 외부인사로 꾸리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지지도 여론조사(35%), 의정활동, 공약이행(35%), 선거기여도(10%), 지역구활동(10%), 다면평가(10%·의원 간 상호 평가)를 통해 하위점수를 받은 의원 20%를 공천에서 탈락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조경태 의원은 “국회의원의 정치력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느냐”며 “게다가 평가위원장을 당대표가 임명하고, 점수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정 계파(친노)가 줄 세우기 등 패권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친노의 패권주의?
비노의 피해의식?

또 이 같은 혁신안을 대입하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자치단체장이 대거 당선된 호남지역구 의원들은 공천 탈락의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노진영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 같은 비노진영의 문제제기에 대해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비노계가 어떤 피해의식이 있는 것 아닌가? 혁신은 결국 기득권 내려놓기고 그 과정에서 비노든 친노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어떤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실망”이라며 “진짜 혁신을 위해서는 자신들이 다소 피해를 입더라도 양보하고 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노진영의 한 인사는 “혁신안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전부 비노계인데 공정한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며 “만약 우리가 당권을 잡고 내년 총선 공천투표단 비율을 당원 100%로 하자고 해도 친노계는 아무런 불만 없이 따를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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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