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김정은 '아바타협상' 손익계산서

남북은 적대적 공생관계? "둘 다 정권안보용으로 썼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북한의 지뢰 도발로 준전시상태로까지 치달았던 남북의 대치 상황이 극적인 타협을 통해 마무리됐다. 특히 이번 협상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전 형식으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남북협상의 극적 타결로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각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두 사람의 손익계산서를 <일요시사>가 따져봤다.

북한의 지뢰 도발로 준전시상태로까지 치달았던 남북의 대치상황이 지난 25일 새벽 극적인 타협을 통해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남북협상에는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북한 측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비서가 참석해 무려 43시간 동안 전대미문의 마라톤 끝장협상을 벌였다. 양측 대표단은 고령의 나이에도 무박4일 동안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자며 협상을 이어나갔다. 

무박4일 협상
아바타 협상?

특히 이번 협상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전 형식으로 치러진 것으로 알려져 더욱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협상진행 과정을 CCTV로 지켜보면서 실시간으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협상의 극적 타결로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각각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우선 박 대통령은 이번 협상 타결이 향후 국정운영에 큰 호재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 세월호 사고, 정윤회 비선개입 의혹,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형 악재가 끊이질 않았다. 당연히 그동안 제대로 국정운영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5일에는 박근혜정부가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맞았지만 야당에서는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심지어 박근혜정부 내부에서도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로 보냈다는 자조 섞인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대로라면 임기 후반기 국정 장악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조기 레임덕까지 걱정해야 하는 신세였다.

원칙주의 통했나? 박근혜 지지율 급상승
임기 반환점 돌아, 레임덕 걱정은 끝?


하지만 임기 반환점에 터진 대북변수로 보수층이 결집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느새 50%에 육박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유감 표명을 이끌어냄으로써 박 대통령의 대북 원칙주의가 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북한이 그동안 합의문에 북한 주체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사과를 고집하기보단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해왔던 야당으로서는 무척 머쓱해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향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의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여당인 새누리당도 청와대에 이전보다 더 협조적인 태도로 나올 공산이 크다. 때문에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남북협상이 타결된 후 “국정 개혁의 최대 호기를 맞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혁 최대 호기
지지율 급상승

이번 회담을 통해 단순히 군사적 긴장완화만 이뤄낸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남북은 합의문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 개최와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추진, 민간교류 활성화 등의 합의를 이뤄냈다.

박근혜정부 내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던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으면서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커졌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나 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도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 중국 외교성과도 빛났다는 평가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힘썼다. 남북 긴장이 고조되자 중국은 남북한 모두 자제하라며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물밑에서는 북한을 상당히 압박했다는 후문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24일 남북 군사긴장이 고조된 것과 관련해 “(9월 3일 베이징에서 전쟁승리 70주년 기념행사로 열릴) 열병식에 (북한이) 실질적인 간섭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국은 무관심할 수 없다”며 북한에 엄포를 놓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다음달 2~4일 중국을 방문해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잃은 것도 많다. 우선 여권 내에서도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해 진정한 사과로 볼 수 있느냐는 비판론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벌써부터 딴소리를 하고 있다. 남북 고위급 접촉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황병서 국장은 지난 25일 “이번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 전문가도 언론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준 것은 박근혜정부의 실수”라며 “북한이 유감을 표시한 것은 쉽게 말해 ‘자신들과 관련은 없지만 어찌됐든 사람이 다쳐 유감’이라는 뜻이다. 자기들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유감 표명을 받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천안함 폭침 때도 북한은 자신들은 폭침과 전혀 관계없지만 무고한 군인이 사망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현하겠다고 했다”며 “이명박정부 때는 그런 유감 표명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는데 박근혜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북한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면죄부?
굴욕적 합의?


일각에서 박근혜정부의 합의가 굴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또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재발 방지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으나 정작 합의문엔 ‘재발 방지’라는 표현도 나와 있지 않아 논란거리다. 다만 정부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는 문구가 사실상의 재발 방지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확성기 방송 재개는 북한의 동의 없이도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수단이다. 또 북한이 도발을 해올 때마다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 새로 마련된 재발 방지책은 사실상 없다는 지적이다. 비정상적인 사태라는 표현도 너무 모호하다.

일례로 북한이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경우 이를 비정상적인 사태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 고작 두 달 만에 합의를 번복하고 도발을 재개할 경우 박근혜정부는 심각한 역풍을 맞게 될 우려도 있다.

회담결과 내부 결속용으로 대대적 홍보
흔들리던 북한체제 안정, 김정은 노림수?

반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밑질 것 없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다. 북한으로서는 아무런 피해없이 눈엣가시 같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켰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체제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남한에 대한 목함지뢰 도발을 하고도 아무런 피해 없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 시켰으니 이것만으로도 북한은 큰 성과를 얻어낸 셈이다.

또 북한은 우리 측에 유감 표명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원론적인 유감 표명에 불과해 이를 김정은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북한의 <조선신보>는 남북협상이 타결된 이후 “43시간의 마라톤협상의 결과 도출된 북남합의는 우연히 나오지 않았다. 무쇠와 같은 담력을 지닌 영도자의 지략과 영군술의 결실”이라며 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웠다.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은 이번 협상 타결을 대남대결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하며 선군절 55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은 흔들리던 내부 체제 결속용으로 더없이 좋은 카드를 얻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경제적 실리까지 챙겼다. 남북은 합의문 제6항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는데 사실상 천안함 사태 이후 민간 교류를 금지한 5·24조치의 부분적인 해제라는 평가가 많다.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남북교류의 물꼬를 틔우며 향후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까지 논의할 수 있게 됐다.

체면 구겼지만
경제실리 챙겨

또 북한으로서는 이번 도발과 합의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대중 외교에서 최근 북한이 우리나라에게 밀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이 본격적인 북한 관리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도 다음 달 중국 전승절 행사에 최룡해 노동당비서를 파견하기로 하면서 북중 간 관계 정상화에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김 위원장으로서도 다소 손해를 본 부분은 있다. 지뢰 도발 사실을 전면 부인하다가 며칠 만에 유감 표명을 한 것은 확실히 체면을 구긴 것이라는 평가다. 또 국제적으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신뢰할 수 없는 국가’ ‘골칫덩이 국가’로 굳어진 것도 스스로 아쉬운 점일 것이다. 특히 국내에선 이번 회담의 성과를 박 대통령이 응징과 원칙을 강조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는 만큼 향후 우리나라의 대북 정책이 더욱 강경일변도로 변할 가능성도 크다. 북한으로선 뼈아픈 패착일 수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남북의 극한 대립 끝에 결국은 양쪽 지도자가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얻어냈다”며 “북한과 우리나라의 역대 보수정권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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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