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국회의원 성폭행사건 전말

"풀리지 않은 의혹 아직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현역 국회의원이 벌건 대낮에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경찰은 부실수사 논란 속에 해당 사건을 불기소 의견(무혐의)으로 지난 5일 검찰에 송치했다.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현역 국회의원 성폭행사건의 전말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54·경북 구미시갑)이 성폭행사건에 휘말렸다. 대구지방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심 의원은 지난달 13일 보험설계사인 A씨(48)를 대구시 수성구의 한 특급호텔로 불러 성폭행했다.

잘못된 만남
불륜의 시작

A씨는 특정 보험회사 소속은 아니고 독립법인대리점(※특정 보험회사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보험사와의 제휴를 통해 보험상품을 파는 영업 형태)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은 현재 모 보험회사의 상품에 가입되어 있지만 해당 상품을 A씨가 심 의원에게 판매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두 사람은 1년 전 지인을 통해 만난 사이로 알려졌다. 이후 별다른 교류가 없었지만 지난 6월 말 우연히 또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날 심 의원과 A씨는 대구의 한 횟집에서 지인을 포함해 4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했으며, 뒤풀이로 노래방까지 함께 가 친분을 쌓았다.

성폭행이든 무고죄든 처벌 불가피
경찰의 '봐주기 수사' 논란 증폭


심 의원은 이후 A씨와 꾸준히 연락을 이어왔으며 스스로를 오빠라고 지칭했고, A씨도 심 의원을 오빠라고 불렀다. 그러다 심 의원은 지난달 12일 정오쯤 대구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심 의원은 이날 오후 카카오톡과 카카오톡 무료통화 등으로 A씨에게 연락해 호텔로 와줄 것을 요구했지만 A씨는 거절했다.

하지만 심 의원은 다음날 오전에도 A씨에게 연락해 끈질기게 호텔로 오라고 요구했고, A씨는 결국 지난달 13일 오전 11시쯤 심 의원이 묶고 있는 호텔방에 찾아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A씨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심 의원에게 술 냄새가 진동했고, 심 의원은 A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강제로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눕혀 성관계를 시도했다.

합의금 제시?
양측은 부인


경찰은 이 호텔 CCTV에서 심 의원이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모습과 A씨가 호텔에 들어갔다 나온 모습 등의 증거를 확보했다. 다만 손찌검 같은 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 의원은 이명박정부에서 지식경제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지식경제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 19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이다.

심 의원은 공교롭게도 성폭행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13일 새누리당 경북도당 윤리위원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A씨는 성폭행 직후 지인들과 상의한 끝에 10여일이 지난 후인 지난달 24일 경찰에 찾아가 해당 사건을 신고했다. 상대가 현역 국회의원인데다 평소 알고 지낸 지인이라는 점에서 A씨가 신고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A씨는 심 의원이 성폭행 직후 현금 30만원을 자신의 가방에 넣어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고, 그날 이후 심 의원이 자신과 연락을 끊어버린 것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심 의원 측은 A씨와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 다툼이 일어나 싸우다가 헤어졌을 뿐 성관계는 없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증거들이 속속 제기되자 A씨와 성관계를 한 사실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심 의원은 A씨가 경찰에 자신을 성폭행 혐의로 신고하자 그제서야 A씨 집 앞에 찾아가 무릎까지 꿇은 채 용서를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심 의원은 A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심 의원과 A씨는 합의금을 주기로 한 사실은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다만 심 의원은 경찰 조사에서 A씨와 따로 만나 오해를 풀었다며 A씨와 만나 사과를 했다는 것은 인정했다. 심 의원은 호텔에서 A씨에게 30만원을 건넨 이유에 대해서는 ‘점심 밥값’이라고 했고, 그날 A씨를 호텔로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경찰은 심 의원을 한차례 불러 조사한 후 불기소 의견(무혐의)으로 지난 5일 검찰에 송치했다. A씨가 강제성이 있는 가운데 성관계를 했지만 자신이 심 의원을 좋아하는 감정도 있었다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강압적인 성폭행이 있었는지, A씨의 진술 번복 과정에 회유나 협박 등은 없었는지를 철저히 밝히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심 의원에 대한 수사는 필연적으로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범죄에 대해서는 지난 2012년 말 친고죄가 폐지됐다. 친고죄가 폐지되기 이전에는 합의를 통해 고소취하를 이끌어 내는 경우가 다수 있었지만 고소취하라는 개념은 이제 성범죄에서는 없는 개념이다. A씨가 심 의원을 성폭행 혐의로 고발한 이상 A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심 의원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한 것이다. 


반대로 만약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면 무고죄 혐의로 A씨를 처벌해야 하는데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켜버렸다. 실제로 A씨는 강제적으로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초기 진술했으나 별다른 저항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사건 발생 후 10일이 지나 조사를 받긴 했지만 성폭행에 따른 상처나 몸싸움 흔적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A씨는 이에 대해 목 디스크가 있어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고죄가 성립되면 A씨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부실수사
엉뚱한 결론


경찰의 무혐의 처리에 대한 형평성 논란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소속 서장원 포천시장의 경우 지난 1월 구속기소돼 벌써 7개월가량이나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성추행의 경우에도 구속기소가 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A씨가 진술을 180도 바꿨다고 해도 성폭행 정황이 뚜렷한 심 의원을 무혐의 처리한 것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혹은 더 있다. 심 의원 측은 당일 대구에 일정이 있어 해당 호텔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자신의 지역구도 아닌 대구 호텔에 그것도 평일 낮부터 투숙한 것은 다소 이상한 정황이다. 심 의원은 공식 일정이 있었다면서도 보좌진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대구 호텔을 찾았다.

"저항 흔적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
처음부터 불륜관계? 새로운 의혹


또 일정이 끝났으면 곧바로 올라오면 되는데 굳이 해당 호텔에서 하룻밤을 투숙한 것도 수상하다. 지난달 13일에는 심 의원이 속한 상임위의 중요한 일정도 있었다. 때문에 A씨를 연모해온 심 의원이 A씨와 만나기 위해 대구를 찾아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사실상 불륜관계였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심 의원은 부인과 슬하에 2명의 자녀가 있다. 심 의원은 A씨와 카카오톡 무료통화 등으로 연락했는데 카카오톡 무료통화는 통화기록이 남지 않아 불륜관계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

저항 흔적 없다
좋아하는 사람?


심 의원과 A씨가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카카오톡 무료통화를 이용해 연락을 할 이유가 없다. 카카오톡 무료통화는 아무래도 일반 전화보다는 음질이 떨어진다. 또 통화할 일이 많은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무제한 통화 요금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더욱 카카오톡 무료통화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A씨도 추후 진술을 번복하면서 심 의원을 ‘좋아하는 감정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심 의원이 다소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시도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이런 사단이 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A씨는 성폭행 직후 심 의원에게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이러면 어떡하느냐”고 항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성폭행 피해자의 반응과는 다소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반대로 A씨 측이 오히려 심 의원을 연모했으나 심 의원은 A씨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 A씨가 모멸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심 의원이 자신과 관계를 가진 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 화가 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치정에 따른 막장드라마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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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