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파 규합설' 민주당 완전해부

어제의 용사들 "옛 영광 재연 위해 다시 뭉쳤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으로 해산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던 민주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야권 신당파와 민주당의 연대설이 정치권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 신당파들이 민주당 깃발 아래 규합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창당된 후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민주당을 <일요시사>가 집중 조명해봤다.

정치권에서 민주당(대표 강신성)이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14년 9월 창당됐다. 야권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이후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 등으로 당명을 변경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연합과 합당하면서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으로 탈바꿈했다.

민주당의 부활?
긴장하는 야권

민주당이란 당명은 그대로 버려졌다. 60년 야당의 정통성을 간직한 민주당이라는 당명이 무주공산이 되자 당명을 차지하려고 쟁탈전까지 벌어졌다. 민주당 당명이 소멸되자 곧바로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등록하려는 사람들이 몰렸고, 법정공방을 벌이다 최종적으로 추첨을 통해 강신성 대표 측이 민주당 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사실 민주당이 처음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당이 대안정당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평가보다는 “민주당의 인지도를 이용해 잘못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긁어모아 그저 1~2석 건져보려는 얄팍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20대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정치권은 민주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창당하고 잠잠하더니 총선 앞두고 ‘꿈틀’
강신성 대표, 신당추진 인사들과 연쇄회동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야권 신당파들이 민주당이란 깃발아래 규합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이란 당명은 특히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 인지도와 호감도가 매우 높다. 민주당을 계승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며 “야권 신당이 창당된다면 최대 격전지는 호남이 될 텐데 신당파가 민주당이란 당명을 선점하면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민주당이란 이름을 빼앗기면 총선 국면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신당파와 민주당의 연대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신당파들보다 먼저 민주당과 연대해 민주당 당명을 선점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민주당이란 당명에 대한 야권 인사들의 애착은 상당하다. 당명이 새정치연합으로 변경된 지가 벌써 1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사석에서는 새정치연합을 민주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태풍 될까?
소나기 될까?

표면적으로는 새정치연합이라는 당명이 너무 길어 부르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민주당이란 당명에 대한 애착과 현 새정치연합에 대한 반감 탓이기도 하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경우는 지난 2·8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었고, 최근에도 자신의 SNS를 통해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민주당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과정에서는 새로운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를 넣는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라는 단어를 넣을 경우 당명이 너무 길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끝까지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를 넣어야 한다고 고집해 결국 당명이 새정치‘민주’연합이 됐다.

하지만 민주당이 새정치연합과 연대할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의 김도균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설사 연대과정에서 새정치연합이 상당한 지분을 약속한다고 해도 새정치연합과의 연대는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새정치연합과의 연대는 민주당의 창당정신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야권 신당파와의 연대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놓고 있었다. 민주당은 중도개혁노선을 표방하고 있는데 신당파들과 이념적 목표도 매우 비슷하다. 어찌됐든 민주당은 양측의 러브콜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시사>는 취재를 위해 민주당 당사를 방문했다가 운 좋게도 민주당 강신성 대표와 직접 면담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강 대표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장 9월만 돼도 민주당에 입당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라는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 같지는 않았다.


이미 신당파 인사들과 상당한 수준의 교감이 오간 것이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크게 부정하지도 않았다. 강 대표는 최근 정대철·권노갑 상임고문을 비롯해 무소속 천정배 의원 등 신당 창당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야권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준비 박차
내년엔 결판낸다

민주당에는 이미 지난 7월 안선미 새정치연합 전 포항시장후보를 비롯해 새정치연합 영남지역 당원 110여명이 탈당해 입당한 상태다. 실제로 창당 후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선이 치러졌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3월에는 중앙당 당사를 여의도에서 마포로 이전했고, 5월부터는 지역위원장 공모를 실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서울, 대전, 광주, 전북, 전남 등 5곳에서 시도당 창당을 완료했고 경기, 충북, 울산 등에서도 당원 모집이 활기를 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올해 안에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추게 될 전망이다. 강 대표도 “창당 이후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선이 치러졌음에도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내년 총선만큼은 반드시 참여하고 후보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미리 구축해놓은 인프라는 신당파 인사들에게 유력한 대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사 이전하고 전국정당 조직화 착수
동교동계와 천정배 사이 가교역할도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미 신당파 인사들이 물밑에서 민주당을 지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신당파 인사들이 민주당을 물밑 지원함으로써 신당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신당파 민주당 지원설’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강 대표는 “자신을 비롯해 직원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당을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정원산업개발의 회장으로 다소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총선을 이끌기에는 강 대표의 인지도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민주당 김도균 대변인은 “정해진 당대표의 임기가 내년 9월까지이기 때문에 내년 총선까지는 무조건 강 대표 체제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당 대표의 인지도가 문제가 된다면 선거대책위원장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과거 민주당에서 최고위원까지 지냈던 김민석 전 의원이 민주당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년 총선을 향한 민주당의 발걸음엔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신당 구심점
가교 될까?

일부 언론들은 김 전 의원이 민주당에서 사무총장직을 맡았다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동명이인인 김민석 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김 전 의원은 현재 민주당의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아 지난 5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지만 오는 8월이면 피선거권을 회복한다.


김 전 의원은 동교동계의 막내 격으로 과거 ‘바른정치실천모임’을 통해 천정배 의원과도 친분이 있다. 김 전 의원은 다소 불편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 동교동계와 천 의원 측을 오가며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권에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야권 재편 논의 과정에서 등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야권 신당 성공의 열쇠를 쥐게 된 민주당은 정국을 집어삼킬 태풍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게 될까?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목이 민주당에 집중되고 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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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