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호남 10월 쿠데타설 막전막후

금배지 20개만 모아 원내 신접살림 차리면 '성공'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10월 재보선을 주목하라.”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히 10월 재보선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정치권에서는 10월 재보선이 야권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이 각각 전남과 전북에 포진하고 이미 재보선을 겨냥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정치권은 10월 재보선 이후 불어닥칠 후폭풍에 긴장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자신은 대권을 위해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어야 한다”며 “당대표가 못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 다음 제 역할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의 진짜 죽을 고비는 오는 10월28일 치러지는 재보선이라고 지적한다.

진짜 죽을 고비
넘을 수 있을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당 지도부는 10월 재보선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표가 10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후에도 그냥 뭉개고 넘어가려 한다면 비노진영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문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비노인사들은 당장 당을 뛰쳐나갈 것이고 빈껍데기만 남은 당에 친노인사들만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표는 이미 지난 4·29 재보선에서 4대0으로 참패를 당하면서 당 안팎에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10월 재보선마저 참패하고 나면 더 이상 대표직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주장이다. 친노진영에선 10월 재보선에서 패하더라도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당 대표가 물러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버틸 가능성이 크지만 그럴 경우엔 친노계와 비노계가 갈라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10월 재보선, 신당 리트머스지 역할
기다리는 전남 천정배, 전북 정동영

대표적인 비노계 인사인 주승용 최고위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0월 재보선에서 호남 기초단체장선거 결과가 우리 당의 상당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는 기초단체장 재선거라고해서 10월 재보선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메시지로 풀이된다. 10월 재보선 결과는 야권 신당의 성공 가능성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도 하게 된다.

기초단체장 위주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공교롭게도 호남지역에 집중돼 있다. 전국적으로 총 11곳이 재보선 예상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가운데 그중 호남지역만 5곳이다. 호남에선 광주 동구, 전북 익산, 전남 장성·무안·장흥 등 5곳이 재보선 예상지역이고, 그 외 지역에서는 경기도 구리와 양주, 충북 진천, 경남 김해, 거창, 고성 등이 재보선 예상지역으로 분류된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다른 곳에서 다 이기더라도 호남에서 참패하고 나면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당장 호남신당론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신당론의 배경에는 ‘흔들리는 호남민심’이 자리하고 있는데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이 패하고 나면 호남의 민심이반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니만큼 심각한 일이다.

호남 민심이반
전전긍긍 새정치

특히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이 각각 전남과 전북에 포진하고 이미 재보선을 겨냥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권은 10월 재보선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두 사람의 연대설도 제기되고 있다.

천 의원 측은 이미 호남에서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인재를 물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시간이 촉박해 신당 창당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무소속연대 형식으로 후보를 내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천 의원 측은 재보선을 앞두고 몰려드는 인사들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4·29재보선에서 낙선 한 후 중국으로 떠났었던 정동영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의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고향에서 지인의 씨감자농장에 머물며 칩거 중이다. 지역정가에선 이미 정 전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전북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전북지역에서 정 전 의원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10월 재보선을 겨냥한 전북지역 내 사전정지작업도 상당수준 진행되어 있다는 평가다. 이미 지난 3월 전북 출신 인사 105인이 정 전 의원이 몸담고 있는 국민모임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이들은 “호남을 친노의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정치 행태는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과제”라며 “야당교체 없이는 정권교체도 없다”고 주장했다. 친노가 장악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각각 전북과 전남에서 바람을 일으킨다면 10월 재보선 판세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재보선에서 패하고 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인사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고, 천 의원과 정 전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에 참여하려는 인사들이 줄을 서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광주 동구청장 재선거가 실시된다면 광주 동구가 지역구인 박주선 의원이 또 다른 키맨이 될 수도 있다. 박 의원은 그동안 꾸준히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온 인물로 탈당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광주 동구에서 재선거가 실시되면 박 의원이 물밑에서 무소속 후보를 돕는 방식으로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박 의원과 당 지도부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9일에는 호남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당직자 출신 당원 100여명이 탈당계를 내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는데 이들의 기자회견 장소를 박 의원이 예약한 것으로 알려져 당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의 입지는 매우 불안하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전남 22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후보만 9명이다. 새정치연합은 텃밭이라는 전남에서 거의 절반의 지역을 무소속 후보들에게 내줬던 것이다.

최근 지역정세는 더욱 악화됐다. 새정치연합 전북도당이 도민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은 아직 창당도 되지 않은 신당과의 가상대결에서 지지율이 무려 12%p나 밀렸다.


가상정당에 밀렸다
악화되는 지역여론

새정치연합 중앙당은 당장 객관성이 결여된 여론조사였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다. 중앙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북도당은 이미 호남신당을 지지하는 인사들에게 장악되어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당은 이번 여론조사가 새정치연합의 긍정적 측면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부정적 내용만 직설적으로 묻다가 가상 신당과의 지지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지적한다. 여론조사 설문지를 살펴보면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새정치연합의 혁신과제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이어가다 마지막으로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식이다. 당연히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여론조사라는 지적이다.

또 도당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했다면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굳이 공개할 이유가 없는데 이번 여론조사가 언론에 공개된 이유도 의문이다. 어찌됐든 호남정세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변수는 야심차게 출범한 혁신위의 혁신작업이다. 혁신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만큼 단 몇 곳에서 치러진 재보선에서 패했다고 해서 당대표 자리를 내놓으라는 주장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당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너나할 것 없이 신당 창당의 선제조건으로 ‘혁신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문재인 흔들기' 10월 이후가 적기?
'무공천' 정면승부 회피 위한 꼼수?

이미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도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당이 나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고, 문 대표와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박주선 의원도 ‘당 혁신이 최우선이다. 혁신이 잘 되면 탈당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혁신위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혁신위원회는 지난 8일 현행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직을 폐지하는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해 비노진영에서는 당대표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이 집중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혁신위의 혁신안이 계파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현역의원 교체지수를 개발하게 될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의 임명권을 당대표가 행사하기로 하자 비노계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혁신위의 혁신작업이 지나치게 공천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은 누가 공천을 받든 관심이 없다”며 “혁신위가 우리 당이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일각에선 혁신위가 최근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부정부패사건으로 재보선을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공천하지 않기로 하는 혁신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호남지역에 당 소속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무공천 꼼수?
책임회피 불가능

하지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무공천 선거를 한 번 치러봤지만 누가 새정치연합 쪽 사람이고 누가 천정배 사람인지 다 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무공천했다는 이유로 책임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정말 심각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표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10월 재보선에 올인해야 한다”며 “흔들리고 있는 호남민심을 잡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기지 못한다면 문 대표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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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