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레임덕 위기 막전막후

메르스 결정타 한방에 식물대통령 되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리더십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두 달 내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박 대통령으로서는 위기의 연속이다. 당장 오는 9월이면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체제에 돌입한다. 공천권을 쥔 김무성 대표를 의식해 친박계의 이탈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총선 후 새누리당이 대폭 '김무성 사람들'로 물갈이되고 나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현실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 과시하던 시대는 지났다. 다들 친박 꼬리표 떼려고 안달이다.”

지난 총선 때만 하더라도 새누리당 후보들은 너도나도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공보물에 넣고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바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정치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심지어 몇몇 의원은 누군가 자신을 친박 의원이라고 지칭하면 펄쩍 뛴다. ‘다 같은 새누리당 의원인데 친박이 어디 있고, 비박이 어디 있느냐’는 논리지만 어찌됐든 격세지감이다.

친박이 어딨나?
격세지감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로 리더십에 직격탄을 맞았다. 박 대통령의 메르스 사태 대처는 낙제 수준이다. 당초 정부는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에도 메르스는 전염력이 매우 낮은 질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어느새 확진자 수는 100명을 훌쩍 넘겼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세월호 이후 달라지겠다고 했지만 메르스 사태 초동대응 실패는 세월호 때와 판박이다.

늘어나는 '주박야무' 통제 불가
핵심 친박계조차 청와대 비판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조차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두 달 내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당장 오는 9월이면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공천권을 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의식해 친박계의 이탈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는 비박(비박근혜)계에 대응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총선 이전에 확실한 기선제압을 해야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주박야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낮에는 친박근혜계지만 밤에는 친김무성계’라는 뜻이다.

이명박정부 말기 ‘주이야박(낮에는 친이명박, 밤에는 친박근혜)’이란 단어가 유행했던 것과 똑같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에서 친이(친이명박)계 공천학살을 목격한 친박 의원들로서는 이번에는 자신들이 공천학살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시 상황과 현재 상황은 묘하게 닮아있다.

공천학살 공포
19대와 판박이?

당시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 대통령은 공정공천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9대 총선 공천 결과 친이계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오죽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보내 낙천자 중 친이계가 너무 많다며 항의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훗날 공천작업의 실무를 총괄했던 권영세 당시 사무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보낸 사람에게) 야당이 이명박정부 심판론을 들고 나올 텐데 그런 구도를 깨려면 친이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총선에서 지면 MB(이명박 대통령)도 퇴임 이후 구속될 수 있다고 했더니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 회고했다.

마찬가지로 20대 총선에서 김 대표가 친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주도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에 대응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 공천권은 정치권력의 원천이다. 친박 의원들은 공천을 따내기 위해 김 대표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도 친박계의 와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첫 국회 대정부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당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조차 유 원내대표의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의원들로서는 ‘유승민 노선’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다.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현 경제상황에서 박근혜 깃발 달고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수도권에서는 정말 힘들 것”이라며 “또 내년 총선이 박근혜정부 집권 후반에 치러지다보니 무조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게 유리하다. 지난 총선에서도 박 대통령이 이명박정부와 선을 긋는 전략을 써서 승리하지 않았나? 내년 총선 이후에는 핵심친박 몇 명을 제외하고는 박 대통령 주변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박 대통령의 레임덕 경고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켜져 있었다. 지난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경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친박계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당선을 막으려고 총력전을 펼쳤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원조친박이지만 지난 2011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박 대통령의 행보를 사사건건 공개 비판해 사이가 틀어졌다.

박 대통령은 그런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까지 미뤄가며 최경환·황우여 부총리와 김희정 장관까지 투표에 참가시켰지만 유 원내대표는 친박계가 내세웠던 이주영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이미 당내에서 친박계와 비박계의 세력이 역전됐다는 단적인 증거였다.

최근 들어서는 콘크리트 같이 단단하던 핵심친박계조차 청와대의 행보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례적으로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서 최고위원은 “박근혜정부 내각에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며 “전부 대통령만 쳐다보면서 책임지고 일을 하지 않는다. 제대로 일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도 이걸 아셔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원로모임 ‘7인회’ 소속인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도 지난 16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이나 후보 시절에는 문제가 있을 때 순발력도 있고 타이밍도 잘 맞추고 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에서처럼 항상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김 고문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지,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해서야 되겠느냐”며 “잘 굴러가지 않고, 국민들이 비판하니까 우리는 (국민들에게) 미안해 죽겠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의 포용의 리더십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김 대표의 전략은 친박계를 배척하기 보다는 친박계를 껴안는 쪽이다. 과거 어떤 입장을 취했던지 자신의 편에 서겠다면 받아준다는 것이다. 당 대표 경선에 나와 자신과 경쟁했던 김영우 의원이나 김상민 의원 같은 젊은 인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정도로 김 대표의 포용력은 대단하다.


김무성 세결집
친박의 갈아타기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물러날 곳이 없다면 친박계가 배수의 진을 치고 비박계와 끝까지 싸우겠지만 투항하면 받아준다는데 질 것이 뻔한 싸움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이른바 ‘박근혜 키즈’로 불리는 의원들은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인사들도 아니라서 언제든지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성완종게이트 이후 여권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됐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이완구 전 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등이 치명상을 입으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김무성 대세론이 힘을 얻고 있다.

‘대세론’의 주인공이 김 대표로 압축되면서 친박계 인사들의 입지는 더 흔들리고 있다. 20대 총선이 끝난 후 새누리당이 김무성의 사람들로 대폭 물갈이 되고 나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현실이 된다. 당장 김 대표는 ‘수평적 당청관계’를 넘어 ‘당 중심의 당청 관계’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권력을 상당 부분 넘겨받아 실질적인 주도권을 틀어쥐려 할 것이다.

김무성 대세론, 이동하는 권력
연일 날개 없는 지지율 추락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 박 대통령의 탈당설이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사정설이 유포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가경쟁력강화포럼 등 친박계의 세결집 시도도 부쩍 잦아졌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요즘 당에서 대통령 말 듣는 사람이 몇 없다. 몇몇 핵심 측근들만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골리앗 대 다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옆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가장 확실한 카드는 박 대통령이 당내 비박계 인사를 향해 사정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지만 이 또한 가능성은 낮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친박계든 비박계든 새누리당 인사가 검찰 수사를 받는다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 총선이 끝난 이후엔 사정기관 마저 미래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정 카드를 사용하고 싶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로써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을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레임덕 공포
식물대통령

물론 비박계가 당을 완전히 장악한다고 해도 당장 청와대와의 정면충돌할 가능성은 적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보수진영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더더욱 그런 무리수를 두기 보단 박 대통령과의 ‘협력적 긴장관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든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사사건건 비박계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각종 현안들에 대해 당에서 청와대에 결재를 받으러 다녔다면, 앞으로는 청와대에서 당으로 결재를 받으러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임기 반환점도 돌기 전에 레임덕 위기에 봉착한 박 대통령은 과연 남은 임기 동안 계획했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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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