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혈세' 국회 애먼 돈 완전 해부

영수증도 필요 없어 "먼저 쓰면 임자"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권이 불투명예산 논란으로 시끄럽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국회의원 시절 국회 대책비를 생활비로 썼다고 밝힌데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도 재판 과정에서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아들 유학자금으로 썼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영수증 처리도 필요 없는 불투명 예산이 국회 곳곳에서 집행되면서 국회의원들이 혈세를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 한 해에 사용하는 불투명 예산이 많게는 9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국회 사무처에서는 해당 예산의 사용내역이 공개될 경우 국가 이익에 반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해당 예산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회가 무슨 국정원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원들이 대단한 일에 쓰는 줄 알았던 불투명예산의 사용처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 사건에 휘말린 홍준표 경남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받은 국회 대책비를 생활비로 썼다고 밝혔고, 입법로비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은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아들 유학자금으로 썼다고 고백했다. 국회의원들을 믿고 불투명예산의 사용처를 묻지 않았던 국민들로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의원님 쌈짓돈
혈세 낭비 심각

이번에 문제가 된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 등에 지급되는 돈이다. 특수활동비 중에는 정책 개발부터 의원 외교, 의원 연구 활동 지원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이 돈을 모두 합치면 연간 80억∼90억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특히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는 여당 원내대표에게는 연간 4억원 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지사가 국회 대책비라는 명목으로 여당 원내대표 시절 월 4000∼500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직 여당 원내대표는 “그 돈을 원내대표가 혼자 다 쓰는 것이 아니라 당이나 상임위 등과 분배해서 쓰게 되어 있어서 정작 원내대표가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된다”고 반박했다.

어찌됐든 국회는 특수활동비 지출내역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가 지급되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미스터리다. 이 돈은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어 개인 생활비로 유용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고, 사적으로 유용하다 적발된다하더라도 이번 사례처럼 처벌할 근거가 모호하다.

여의도는 감시 사각지대 "올해만 84억 증발"
대책비를 생활비로…직책비를 유학자금으로


국회의원들이 개인 비리 혐의로 자금 흐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때 특수활동비를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떳떳하게 밝히는 이유다. 특수활동비가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국회의원들도 인정하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의 경우 불법 사찰 국조 특위 위원장을 맡은 후 받은 9000만원의 활동비를 전액 반납하기도 했다. 
 


여야의 대립 속에 불법 사찰 국조 특위가 공전만 거듭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들어 여야는 무려 31개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렇다한 성과를 낸 특위는 없다. 한 달 평균 회의 개최 횟수가 1회 미만인 특위도 9곳이나 됐다. 그런데 활동비를 반납한 위원장은 심재철 의원이 유일하다.

 


국익 위해?
의원 위해?

국회의원들이 쌈짓돈처럼 쓰는 예산은 특수활동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대표적으로 정당 국고보조금이 있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지난 2012년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중간에 후보를 사퇴했음에도 보조금 27억원을 수령하면서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한 해에 각 정당에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은 무려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액수지만 정당 국고보조금은 선관위에서 서면 위주의 회계조사만 할 뿐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는다. 정치자금법에는 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개발에 사용해야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정당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보조금의 대부분은 각 당의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또는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국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비용인 셈이다. 반면 다른 국가에서도 정당보조금을 지급하긴 하지만 철저한 회계감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고 대부분 선거운동을 위한 보조금 등 제한적으로 지급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묻지마식 지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미사용 정치자금 역시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처럼 사용되고 있다. 정치자금은 엄밀히 따지자면 국회의원들이 자발적 기부를 통해 모은 것이니 세금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피 같은 돈을 사용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정치자금법에는 정치자금을 ‘사적 경비’로 쓰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적 경비와 공적 경비의 구분이 모호하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식사비용을 정치자금으로 계산하고 정치활동을 위한 만남이었다고 신고하면 공적으로 비용을 사용한 게 되는 식이다. 또 쓰다 남은 정치자금은 임기 직전 다 써버리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남은 돈은 모두 소속 정당에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의원들은 정치자금을 자신의 보좌진 퇴직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지급하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외유성 해외연수 비용 또한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애먼 돈이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전진한)는 국회의원들의 해외연수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경악스러웠다. 대부분 의원들의 해외순방 일정이 해외 진출 기업들이나 동포들과의 만찬 중심 일정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친선협회 차원의 의원외교 역시 대부분 외유성 출장을 의심케 하는 일정들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 2013년에는 의원 외교라는 명분으로 동남아를 찾았던 의원들이 현지 국가 국회가 회기 중이 아니어서 방문지 국가의 의원들을 만나지 못하고 국장급 국회공무원을 대신 만나고 돌아오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의원들은 해외순방을 마친 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고할 의무도 없다.

게다가 국회는 19대 국회 들어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던 국회 의장단의 해외순방 일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사용된 예산내역까지 철저히 감추고 있다. 이 역시 공개될 경우 국가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명분이다. 당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외유성 논란이 일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정을 아예 비공개로 전환해버린 것 아니냐”는 반발이 있었다.

과거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온 의장단 해외순방 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현지 한인간담회, 현지 의장단 예방 등의 일정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일정들이 공개된다고 해서 어떻게 국익에 해가 된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시대 역행
묻지마 예산

물론 국회는 의장단의 해외일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더라도 자체 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철저히 감사받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전진한)’의 강언주 간사는 이에 대해 “그동안은 의장단의 해외일정에 대해 모두 투명하게 공개했고 문제가 있으면 직접 찾아가 영수증을 하나하나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살펴보면 너무 과다하게 예산을 사용한 부분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해외순방 경비의 경우 개인적으로 유용할 가능성은 적다고 하더라도 감시를 벗어나면 불필요한 예산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특히 예산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인데 국회만 오히려 기존에 공개되던 예산 사용내역조차 비공개로 전환한 것은 시대를 거꾸로 역행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국회서 의장단과 관련한 애먼 돈은 또 있다. 국회는 국회의장과 부의장에게 각각 150만원과 130만원을 주유비로 매달 꼬박꼬박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의장단이 아무리 일정이 많다고 해도 주유비로 지급되는 금액치고는 다소 많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의장단은 주유비로 사용하고 남은 돈을 반납할 의무가 없다.

일하라고 줬더니 개인 주머니에?
정보공개 거부, 투명 행정 역행


심지어 의장단이 사용하는 관용차량은 ‘국회사무처 공용차량 내규’에 따라 운행일지도 작성하지 않는다. 지급받은 주유비 중 실제 주유비로 얼마나 사용했는지 남은 돈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파악할 자료가 없는 것이다. 일반 업무용 관용차량이 차량운행일지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해외 출장과 관련해서는 국회의원들의 항공 마일리지 사용실태도 도마 위에 오른다. 매년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의 항공 마일리지 사용실태에 대해 지적한다. 업무상 출장을 통해 항공 마일리지를 쌓아놓고도 쓰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지침위반이자 혈세 낭비라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르면, 공무 출장자는 항공권 예약 시 적립된 항공 마일리지를 우선 활용하고 해당기관 회계담당자는 마일리지 활용 여부를 확인 후에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항공 마일리지를 잔뜩 쌓아놓고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에 공개된 자료를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 중 일부는 약 2년의 임기 동안 10만이 넘는 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하고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해당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면 국가는 항공 마일리지를 회수할 방법이 없다.

노동의 대가?
꼼수의 대가?


국회의원들의 꼼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예정에 없던 임시국회를 소집할 때마다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1인당 100만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들은 4월 임시국회 내내 파행을 거듭하다 5월 임시국회를 열었는데 겨우 법안 3개를 처리하고 1인당 100만원에 달하는 특별활동비를 챙겼다. 이를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회는 예산 심사권을 가진 기관이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들의 혈세를 아끼고 아껴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최근 서민들은 부족한 세수로 인해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담뱃세, 주민세 인상에 연말정산 파동과 공무원연금 개혁까지 모두 세수 부족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혈세를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한다면 국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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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