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에 손짓하는 보이지 않는 손 실체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손잡자 손"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손학규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기획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고문은 비록 원외인사지만 요즘 야권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손 전 고문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도 모자라 아예 정치권과 연을 끊겠다며 전남 강진의 한 토굴집에 기거하고 있지만 주변인들은 끊임없이 그를 흔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손 전 고문 측에서는 손 전 고문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한 토굴집에서 칩거 중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주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손 전 고문이 칩거 중인 토굴집은 손 전 고문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연일 문전성시다. 선거에서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정치인에게 이처럼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호남이 부른다?
비노가 부른다?

손 전 고문 부부는 몰려드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죽하면 손 전 고문 부부는 이들을 피해 아예 토굴집을 비우는 날이 점점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 전 고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계에 복귀할 뜻이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정계복귀설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손 전 고문 측근들 사이에서는 손 전 고문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가만히 있는 손 전 고문을 주변에서 흔드는 바람에 토굴집에서 칩거하고 있는 손 전 고문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게 됐다는 불만이다. 그들은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기획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지지자 100여명 토굴집서 복귀 촉구
야권 위기 처하자 몸값 높아진 손학규


손 전 고문에게 야권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이유는 현재 새정치연합이 처해있는 상황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4·29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손 전 고문이 이를 수습할 구심점이 되어달라는 요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놓고 각 계파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비노계(비노무현계)의 경우에는 손 전 고문을 통해 문재인 대표와 친노계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농후하다. 손 전 고문은 지난해 치러진 7·30재보선에서 패하자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깜짝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유독 책임감이 강한 손 전 고문의 성격 탓이다. 손 전 고문은 지난 2008년에도 대통합민주신당 당대표로 선출된 후 3개월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하자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당시에도 손 전 고문은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무려 2년간이나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약속 지킬까?
복귀 할까?

이를 두고 비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대선과 재보선 패배 이후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문재인 대표와 비교하면 손 전 고문은 너무 책임감이 강해서 탈”이라며 “문 대표와 친노계(친노무현계)가 손 전 고문의 반만큼이라도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 대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행보를 걸어온 손 전 고문을 띄움으로써 교묘하게 문 대표와 친노계를 깎아내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손 전 고문 띄우기는 ‘호남신당론’과도 맞닿아 있다. 비노계를 중심으로 야권에서는 최근 신당론이 무게감 있게 거론되고 있는데,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심점이 될 만한 거물급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호남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손 전 고문이 야권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손 전 고문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등 야권 내 쟁쟁한 대권주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호남은 야권의 심장이다. 야권 후보가 호남의 민심을 얻지 않고는 어떤 선거에서도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호남의 민심이 손 전 고문에게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번 여론조사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이른바 야권 빅3로 불리는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등이 모두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호남의 민심이 수도권 출신인 손 전 고문을 대안으로 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신당까지 가지 않더라도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비노계로서는 문 대표의 대안으로 손 전 고문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비노진영에서는 꾸준히 문 대표 체제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문 대표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임시 전당대회를 열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런데 문 대표가 실제로 당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현재 당내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손 전 고문은 매우 매력적인 카드다.

특히 총선과 대선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중도층의 표심인데 문 대표와 비교해 손 전 고문은 중도 이미지가 강해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게다가 손 전 고문은 3선의원을 하면서 당 대표까지 지냈고 보건복지부장관과 경기도지사까지 역임해 정치력과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가장 경계하는 상대라는 평가도 있다. 당대표를 지냈지만 초선의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차례 정치적 미숙함을 보여준 문 대표나 안철수 의원과 비교하면 손 전 고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한다.

손 전 고문은 친노계를 제외한 당내 다양한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크게 친노계와 비노계로 나뉘고 있는데 비노계는 사실 동교동계, 안철수계, 김한길계, 김근태계 등등 다양한 계파의 느슨한 집합체에 불과하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도 최근 비노계에 대해 “친노가 있기 때문에 그 나머지인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게 됐을 뿐”이라며 “소위 비노라고 불리는 이들은 친노가 아니라는 게 유일한 공통점일 뿐, 하나의 조직이나 이해로 뭉쳐 있는 계파가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느슨한 집합체를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 이끌기 위해서는 모든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손 전 고문만한 인물이 없다는 지적이다.


손 전 고문은 당내 인사들은 물론이고 당을 떠난 인사들과도 관계가 원만하다는 장점이 있다. 정동영 전 의원 같은 경우는 탈당을 선언하기 전 강진에 있는 손 전 고문을 먼저 찾아가기도 했다.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 후 비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친노를 제외한 야권 빅텐트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야권 빅텐트
친노만 왕따?

여기에 친노 대 비노의 대립구도를 형성하기 위해서 손 전 고문만큼 제격인 인물도 없다. 손 전 고문은 친노 패권주의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후보경선에서 손 전 고문은 문 대표에게 패했는데, 당시 불공정 경선 논란으로 손 전 고문 측 지지자들이 보안요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단상을 향해 패트병과 계란을 투척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때문에 손 전 고문은 친노 패권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문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었다. 비노계로서는 손 전 고문이 꼭 필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과도 같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친노계가 손 전 고문의 조기등판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바람에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다소 과대평가되는 부분도 있다”라며 “손 전 고문을 조기 등판 시키지 않을 경우 대선을 앞두고 손 전 고문이 마치 구원자처럼 나타나 속된 말로 대선을 날로 먹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친노진영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차기 총리로 손 전 고문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부의장은 지난 1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계를 은퇴한 손 전 고문을 야권의 동의하에 삼고초려해 책임총리의 실권을 준다면 통합과 안정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손 전 고문을 차기 총리로 추천했다.

호남권 여론조사서 차기 대권주자 1위
정치1번지 종로 입주, 복귀 초읽기?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이 부의장의 제안은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공개적인 회의에서 왜 뜬끔없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주변 반응이었다”며 “자꾸 외곽에서 손학규 대망론이 뜨니까 친노진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손 전 고문을 조기등판 시켜야겠다는 조급함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를 떠나 총선과 대선 패배의 공포감이 손 전 고문의 복귀를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4·29재보선에서 수도권 3곳은 물론이고 텃밭인 광주 서구을까지 무소속 후보에게 내줬다. 충격적인 패배에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둔 국회의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이젠 새정치연합 깃발을 달고는 호남에 출마해도 당선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식으로든 당을 싹 갈아엎기를 원하는 당내 인사들의 불안감이 손 전 고문의 복귀 요구로 분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손 전 고문의 토굴집으로 모여들고 있는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은 “토굴을 부수고라도 (손 전 고문을) 여의도에 모시고 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점점 과격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하필 호남?
대권 노리나?

이른바 손학규 대망론을 손 전 고문이 스스로 띄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왜 하필 야권의 심장인 호남에 거처를 마련했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친자식도 아니고 사위 고향이 전남 강진이라 그쪽에 거처를 마련한 것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

손 전 고문이 정말 정치에 복귀할 뜻이 없었다면 토굴집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자택에 머물렀으면 된다. 애초부터 정계복귀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손 전 고문은 최근 정치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새 거처를 마련했고, 측근들과 5·18묘역 참배를 하는 등 사실상 정계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과연 손 전 고문에게 손짓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일까? 손 전 고문은 화려하게 복귀해 ‘제2의 김대중’이 될 수 있을까?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되돌아 본 김대중의 정계복귀
손학규, DJ 길 걸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후 다음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 성명을 발표한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1월에 영국으로 출국해 케임브리지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다가 1993년 7월 귀국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상임공동의장을 지내다가 김영삼정부가 부침을 겪자 정계은퇴선언 2년7개월 만에 다시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는 은퇴 번복 시비가 있었으나 이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결국엔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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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