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이번엔 워낙 인물이 많아서 될 줄 알았는데…."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완구 국무총리가 치명상을 입었다. 이번에야말로 ‘충청대망론’을 기대하던 충청인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충청대망론은 또 한 번 좌절되고 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충청대망론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해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깜짝 등장하면서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켰다.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쳤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한동안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완구 국무총리 역시 승승장구했다.
이 총리는 총리 지명 이후 상승세를 타더니 여권 내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 이어 차기 대권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야권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떠오르고 있었고 여야를 막론하고 충청권에 3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충청대망론은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불씨 살릴까?
충청권에서는 이번에야 말로 충청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던 중이었다.
충청권 인사들의 대권 콤플렉스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충청권의 인구가 이미 호남을 추월한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충청권 출신 대통령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 출신의 윤보선 대통령이 있지만 4·19혁명으로 이승만의 자유당정권이 붕괴된 이후 내각책임제하에서 선출됐고 재임기간도 2년이 채 안됐다.) 충청 출신 대통령의 탄생은 충청인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도 충청대망론을 염원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가 터져 나오면서 충청대망론에 올랐던 인물들이 동시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 총리는 각종 의혹에 휩싸여 여론의 뭇매를 맞다 결국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아직 의원직을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추후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 총장 역시 성완종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았다. 일각에선 성완종 게이트의 최대 피해자는 이 총리가 아니라 반 총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성 전 회장은 자살 직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획사정을 당한 것은 반 총장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반 총장은 이에 대해 “성 전 회장과 아는 사이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충청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당장 “반 총장은 성 전 회장이 주도했던 충청포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친동생이 경남기업의 상임고문으로 수년간 일했는데 이제 와서 모른 척을 하다니 너무 매정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충청대망론을 향해 똘똘 뭉치던 충청민심은 그야말로 와해 직전이다.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충청포럼의 한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성 전 회장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할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으로 알고 있고, 반 총장이 바쁜 와중에도 충청포럼 행사에 자주 참석했었는데 이제 와서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 하니 황당했다”며 “성 전 회장과 선을 긋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대선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는 정도로 말하면 될 걸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충청인들의 마음이 이번에 많이 돌아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완종 외면한 반기문 성토 목소리 커
'충청 대통령' 성완종 게이트로 망했다
반 총장은 성완종 게이트를 거치면서 자신의 든든한 지지조직이 될 수 있었던 충청포럼을 사실상 잃게 됐다. 충청포럼을 이끌던 성 전 회장이 사망한 만큼 충청포럼도 해체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로서 반 총장의 최대 약점은 국내에 별다른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선거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하부조직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면 유력한 대선후보이니 만큼 사람을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인사들로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고 대선캠프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잡음에 시달릴 위험성도 높다.
게다가 성완종 게이트 이후 충청포럼이 사실상 정관계 로비창구로 이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충청권 출향 모임이 전체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충청포럼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고 충청포럼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뒤늦게 “한두 번 모임에 참여했던 것이 전부”라며 선을 긋기 바쁜 모습이다.
반 총장의 최측근이 운영하고 있는 ‘백소회’의 경우 지난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4월 정기모임을 개최했으나 참석자가 눈에 띄게 줄기도 했다. 백소회는 반 총장의 최측근인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백소회에는 지역의 정관계 인사 100여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 이후 정관계 인사들이 충청 출향 모임 참여를 꺼리는 이유는 자칫 정치적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충청권 출향 모임이 크게 위축되면 충청대망론 역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충청대망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충청민들이 똘똘 뭉쳐야 하는데 이번 사건 진행과정에서 충청 출신 정치인들끼리 볼썽사나운 진실공방을 펼치면서 충청의 민심이 전체적으로 와해돼 추후 이를 하나로 묶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반 총장과 이 총리를 대신해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청대망론을 실현할 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 당내에선 문재인 대표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안 지사가 불과 1~2년 안에 문 대표를 제치고 대선주자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포기는 일러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충청대망론을 포기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도 2년 넘게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동안 언제 어떤 이슈가 터져 나올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반 총장이 언제든지 다시 유력 주자로 떠오를 수도 있고 이 총리에 대한 모든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돼 오히려 동정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충청 출신의 새로운 인사가 대권 주자로 새롭게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사태로 충청대망론이 한풀 꺾이긴 했지만 충청 출신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충청민들의 염원은 여전한 만큼 충청대망론이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