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⑥수상한 국책사업 비결

나랏일로 흥하고 나랏일로 망했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평소 경제보다는 정치 인맥이 많았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정치상인’으로 통했다. 이에 충남ㆍ경남 지역의 중견 건설업체였던 경남기업이 전국 도급 순위 16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정치계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성 회장을 둘러싼 정치 로비 의혹과 경남기업의 국책사업에 대해 정리해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경복합경영자로 평가 받아왔다. 대아건설 회장으로 지낸 1992년 민자당 재정위원을 지낸 데 이어 경남기업 인수 후 2014년 국회의원으로 지내기까지 성 회장은 정치와 비즈니스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경남기업의 사세 확장을 도모해왔다. 특히 한가람회, 충청포럼 등 정치계 모임의 핵심 인물로 참여하면서 정치권 인맥 쌓기에 힘썼으며, 수많은 로비 의혹도 받아왔다. 이에 성 회장은 기업인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치상인’ ‘정치권 줄대기의 달인’으로 통했다.

정경 복합경영자
국책 낙찰률 98%

성 회장의 기업경영 마인드가 정경일치임이 드러난 건 민자당 재정위원으로 지낼 당시인 1992년 8월31일이다. 그날 오후 한준수 연기군수가 국회 민주당 원내총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권개입 부정 사례를 폭로한 것이다. 한 군수는 충남지사와 민자당 후보로부터 8500만원 상당의 선거자금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며 수표 일부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표 90여장의 일련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대아건설이 발행한 수표임이 밝혀졌다. 1980년 전국 도급 순위 169위에 그쳤던 대전 지역 중소기업 대아건설이 1992년 전국 61위에 올라선 배경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국정감사에서도 대아건설이 1988년 이후 수주한 51건의 충남 발주관급공사의 낙찰률이 98.62%로 나타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낙찰 사업의 응찰가가 1만원 차이인 사업도 상당수인 것으로 조사돼 충남지사 선거 과정에서 비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권력의 향방을 기막히게 읽고 ‘맨주먹 붉은 피’로 들이댄 사람이었다”며 “공직이나 정치권에서 뜨는 사람이 있으면 30∼40명씩 모아 성대한 축하연을 열어주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4년 대아건설은 서울 일부 지역의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며 서울로 무대를 확장했다. 당시 대아건설은 1996년까지 동작구 사당동의 3개 지역과 노원구 공릉동·월계동, 강서구 등촌동 재건축 사업의 시공사로 참여했으며 6구역재개발지구 참여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 회장은 1995년 한가람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김 비서실장은 1995년까지 한양대 법과대학원 겸임교수로 지내다 1996년부터 한나라당 국회의원직을 맡았다. 성 회장이 정치 인맥을 맺기 위해 미리 김비서실장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성 회장이 2000년에 설립한 충청권 정치인과 관료 및 언론인의 모임 충청포럼도 정치권 인맥 쌓기를 통해 사세를 확장하고자 하는 성 회장의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당시 성 회장은 개인 비용을 투자해 롯데호텔에서 거물급 정치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충청포럼 출범식을 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급순위 169위→14위로 급성장
‘정치상인’인맥 활용해 기업경영

성 회장이 신한국당 재정위원으로 지낼 당시인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에게 대전 민방 협조 명목으로 10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성 회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졌으며, 김총리의 도움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인 2003년 8월 성 회장은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경남기업을 인수하고 이듬해인 2004년 대아건설 등과 합병해 통합법인 경남기업을 출범시킨다. 경남기업 인수전에 보성건설, 금광기업 등 5~6개 기업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기도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인 대아건설이 경남기업을 인수한 데에 대해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2004년 성 회장은 노무현 후보 캠프에 3억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이회창 후보 캠프에도 거액이 제공됐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사실 유무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총선 직전 비례대표 당선권 보장을 전제로 자유민주연합에 정치자금 16억원 전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성 회장은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지만 특별사면으로 1년형의 징역에 그쳤다.

참여정부의 도움
대기업으로 성장

2004년 당시 경남기업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996억1800만원 사업비의 토당-원당 도로(고양시대체우회도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1000억830만원 사업비의 오리-수원복선전철4공구 사업의 시공사로 참여했다. 또한 대전지방국토관리청, 한국철도시설공단, 농업기반공사 등 한 해 동안 3616만2200만원 상당의 토목사업을 진행했다. 전년 대비 72.25%의 사업을 확보했다.  

경남기업이 노무현정부 때인 지난 2005년 러시아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으로 석유공사에서 260억원의 성공불융자금을 지원받았다. 정부로부터 받은 성공불융자 전체 330억원 중 상당 금액이 노무현정부 때 집중돼 있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과 멕시코만 가스탐사 사업에 나서면서 70여억원의 추가 성공불융자를 받았다. 경남기업이 공물자원공사로부터 받은 일반융자금은 130억원이다.

성공불융자는 정부가 위험도가 높은 사업을 하려는 기업에 필요자금을 빌려주고 사업이 실패하면 융자금 전액을 감면해주고, 성공할 때는 원리금 외에 특별부담금을 추가 징수하는 제도다. 경남기업의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으로 알려져 정부예산 260억원은 사라진 셈이다.

경남기업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노무현정부 시절 사세가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매출액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경남기업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은 2003년 4888억8305만원, 2004년 6153억8639만원, 2005년에는 9061억8670만원, 2006년 9617억1227만원, 2007년 1조2890억7194만원으로 2004년보다 2배 이상 급성장했다.

반면 이명박정부 출범 당시인 2008년에는 매출액이 1조7624억1400만원으로 출발이 좋았으나 2009년 1조7103억5648만원, 2010년 1조5962억5237만원, 2011년 1조4156억9587만원, 2012년 1조1345억2846만원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는 7492억568만원으로 급락하고 만다.

MB정부 이후
매출 급락

2007년 11월 성 회장은 행담도 개발 사업의 시공권을 받는 조건으로 김재복 사장에게 120억원을 빌려준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징역 1개월 만인 2008년 1월 노무현정부로부터 특별사면 대상으로 선정돼 석방됐다. 이로써 성 회장은 노무현정부로부터 두 번째 특별사면 대상자로 지정됐다.

2007년 경남기업은 베트남 하노이에 주상복합타운 랜드마크72(사업비 1조370억700만원)을 건립한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남기업은 2009년 5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채권단에 신청하기에 이른다. 경남기업은 당초 예상한 워크아웃 극복시기인 2012년 6월에 워크아웃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굵직한 국책사업의 시공사 및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1년 앞당긴다.

최근 랜드마크72에 정관계 인사 수백명이 다녀갔다는 현지 직원의 증언이 나오면서 성 회장의 로비 장소로 활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남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성 회장이 생전 명절 기간에만 랜드마크72에 머물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지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수백명의 정관계 인사가 성 회장과 식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남기업은 2008년 대규모 국책사업을 맡는다. 한국토지공사로부터 수주 받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관련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참여정부와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됐을 개연성이 엿보인다. 사업비 1325억2900만원 규모의 행정중심복합도시1-2공구 사업과 사업비 400억5200만원 규모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우회도로 공사를 수주 받았다. 또한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로부터 서울지하철915ㆍ916공구 사업으로 1354억4800만원도 수주 받았으며 용인지방공사의 광교택지개발지구A23블록주택건설공사, 대전지방국토관리청 청양-홍성고속도로, 한국철도시설공단 경부고철10-1공구 노반공사, 환경관리공단의 광양시 광양읍 하수관거정비공사 사업도 진행했다.


정권 도움으로 성장
정권에 찍혀 급추락

반면 이명박정부 당시인 2009년 경남기업의 국책사업 규모도 현저하게 줄어든 양상이다. 2008년 1조5930억8800만원에서 2009년 5705억200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 당시 경남기업은 민간도급건축 사업도 없었다. 2010년 1조331억7800만원 규모의 13개 국책사업을 맡았지만 경남기업은 2011년 두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지난 8일 성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 “나는 MB맨이 아니다. MB 정부의 피해자가 MB맨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중앙일보>와 JTBC가 공개한 성 회장의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2013년 9월3일 김전수 전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개선국장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만났으며, 9월13일에는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을 만났다고 기록돼 있다. 경남기업이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날짜가 10월29일인 점을 미루어 볼 때 차입금 상환 연장을 요청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성 회장은 2012년 11월 선진통일당 원내대표를 지낸 후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30년 로비인생
성공 VS 실패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경남기업의 도급 순위를 살펴보면 1981년 169위에서 1991년 72위으로 급성장한 데 이어 2006년 16위의 자리에 앉는다. 2013년까지 꾸준히 20위권 내에 머물다가 지난해 26위로 하락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200만원으로 건설 사업을 시작한 성 회장이 대아건설을 2조원대의 대기업 경남기업으로 성장시킨 데는 정치권의 인맥 쌓기와 로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수많은 정치 자금 로비 의혹을 남긴 성 회장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정치상인으로 자수성가한 성 회장의 30년 로비인생의 결말을 두고 과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방 중소기업 건설사를 대기업으로 사세 확장한 그의 비즈니스는 실패했다고 평가해야 할까?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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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