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여성보좌진 성희롱 실태 고발

"밤샘 근무 속 어리고 예쁜 인턴 노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이 여기자 성추행 사건에 휘말리자 그의 지지자들은 ‘남자가 술 먹고 여자 가슴 안 만져 본 사람 있냐’며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벌써 10년이 다 된 이야기지만 기자를 만난 여성보좌진들은 국회에는 여전히 그런 황당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성희롱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국회 여성보좌진들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꼭 여자보좌진이 커피를 타게 해요. 여자보좌진보다 직급이 낮은 남자보좌진이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에요.”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늘 불안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국회의원이 나가라고 하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의원들이 인사 전권을 쥐고 있는 기형적인 인사시스템 탓이다. 그런데 그런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여성보좌진은 ‘을 중의 을’이다.

여성보좌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국회에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 문화가 팽배하다. 위의 사례는 아주 사소하지만 여성보좌진들이 남성보좌진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은연중 차별

흔히 국회 의원회관에는 300개의 소(小)왕국이 있다고 한다. 인사 전권을 쥔 국회의원이 왕이 되고 왕이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각 의원실마다 분위기와 근무환경은 천차만별이다. 국회의원이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 보좌진들은 웬만한 부당한 일로는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밤샘 근무와 잦은 회식까지 겹치면서 여성보좌진들은 성희롱·성추행과 같은 악질적인 추태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성보좌진 A씨는 그동안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려왔다. 동료 남성보좌진들은 A씨가 짧은 치마를 입고 온 날 농담처럼 A씨의 몸매를 평가했다. A씨의 신체 특정부위를 비하하거나 섹시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언급해 칭찬하거나 지적하는 행위는 모두 성희롱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 국회의 성희롱예방교육은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는 의무사항이지만 국회의원과 보좌직원들에게는 권장사항일 뿐이다.

여성보좌진 B씨는 의원회관에 들어온 후 같은 의원실 보좌관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처음에는 자주 옆에 와서 말을 거는 정도였지만 점점 강도가 세졌다. 퇴근 후에도 계속 메시지를 보내거나 사적으로 따로 만나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정중히 거절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랑이라고 했지만 그 보좌관은 유부남이었다. 나이 차이도 20살이 넘게 났다. 결국 의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의원실을 떠나게 된 것은 B씨였다. 해당 보좌관과 의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끈끈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어디다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어떤 이유든 자신이 모시던 의원을 음해한 보좌진은 다시 의원회관에 발을 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성보좌진에게 술시중 지시
회식 성희롱 사례 무궁무진


여성보좌진 C씨도 같은 의원실 남성보좌관에게 시달린 경험이 있다. 이 보좌관은 같은 의원실 여성보좌진들에게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겠다는’ 등의 핑계로 석연찮은 신체접촉을 자주 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아무도 항의를 하지 못했다. 듣기 거북한 야한 농담도 자주 했다. 가끔은 좋은 것(?)은 공유하자며 야한 동영상이 링크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분명한 성희롱에 해당되지만 아직까지 해당 보좌관에게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없다. 워낙 남성 중심적인 의원실 분위기 때문이다. 항의를 한다고 해도 장난 좀 친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지역사무실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여성보좌진 D씨는 황당하게도 지역 주민들의 성희롱에 시달렸다. D씨는 “지역사무실에 찾아온 한 지역주민이 대뜸 나를 가리키며 비서가 가슴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의원은 바로 앞에서 듣고도 웃으며 넘어갔다. 의원이 웃으며 넘어간 일을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나? 지역유지들 앞에서는 의원도 ‘을’일 뿐이니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나도 그냥 넘어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외에도 여성보좌진들은 크고 작은 성희롱이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보좌진 A씨는 “회식 자리에 가면 꼭 여성보좌진들에게 국회의원 술시중을 들게 한다. 의원님과 일부러 멀리 떨어져 앉으려고 해도 다른 남자보좌진이 와서 오늘 의원님 좀 챙기라고 말한다. 별일이 아니라고 하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기자님이 말씀하신대로 국회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너무 뿌리 깊어서 한 번에 바꾸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여성보좌진들은 회식 자리에서 강권에 못 이겨 의원이나 남자보좌진들과 러브샷을 하거나 블루스를 춰본 경험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회식자리 에피소드만 해도 무궁무진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어떤 국회의원은 자신의 여성보좌진을 술자리마다 데리고 다니며 그날 만나는 주요 인사에게 인사를 시키고 술자리 내내 주요 인사의 술시중을 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보좌진을 마치 술집 작부처럼 취급한 셈이다.

또 다른 국회의원은 시도 때도 없이 여성인턴에게 안마를 시킨 경우도 있었다. 여성보좌진 C씨는 “국정감사 등으로 야근이 잦을 때 해당 의원은 꼭 ‘오늘은 막내한테 안마 좀 받아야겠다’며 여성인턴을 시켜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게 했다. 선배로서 또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인턴이 안쓰러웠지만 내 코가 석자라 아무런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들 모른 척

특히 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쫓겨나는 것은 여성보좌진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회의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괜히 자신이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전후사정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당사자들을 내보내 것으로 문제를 서둘러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위기이다보니 직접적인 성추행, 성폭력 등이 아니면 피해를 당해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른 직장에서도 직장 내 성추행, 성희롱 등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국회는 의원이 절대적인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갑을 관계를 악용한 성추행, 성희롱 등의 사건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물론 개개인의 성적인 인식이 잘못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조직 내부의 성문화 실태가 잘못 자리 잡아 구조적으로 성희롱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며 “이제라도 여성보좌진 권익 향상을 위해 자체적인 분위기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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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