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명 사망에 징역 5년’ 음주운전 벤츠 가해자 형량 논란

3명이나 죽였는데 5년만 살면 된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커뮤니티 <다음 아고라>에 고급 외제차를 몰고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가 3명의 사망자를 냈음에도 징역 5년 형이 길다고 항소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해자는 이미 음주 전력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애초에 징역 5년도 짧다는 지적과 음주운전에 관한 처벌 형량이 너무 관대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가해자 정모(31)씨는 면허 취소 기준을 넘긴 알콜 농도 0.196%로 벤츠 승용차를 몰고 원당역 고가도로를 달렸다. 정씨는 앞서가던 SM5 차량을 들이받고, 피해 차량은 사고 충격으로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로에서 마주 오던 올란도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총 8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죽은 사람만 억울
적반하장 항소까지

SM5에 타고 있던 1명 사망, 올란도에 타고 있던 2명 사망 등 5명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3명은 사고 피해 차량인 올란도 탑승자로 목, 척추, 다리 등 중상을 입었다. 나머지 부상자 2명은 가해 차량인 벤츠 탑승자와 그의 동승자로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12월 고양지방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가해자 정씨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정씨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사고 현장에서 중상을 입은 김모(34)씨는 먼저 가해자 측의 무성의에 울분을 토했다. “사고가 난 지 한달이 지나도 피해자 측에 전화 한통도 없었다. 너무 황당해 수사관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자 다음날 가해자 아버지가 왔다”며 “가해자 아버지는 자신이 의붓아버지라고 밝히고 말도 안 되는 자기 입장만 일관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해자 아버지가 “자신은 의붓아버지다. 하루 놀고 하루 일하고 있다. 고의로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술 한잔 하고 그렇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왜 친어머니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고 의붓아버지만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에서 합의를 본 피해자는 SM5 차량을 운전했던 이모(36)씨를 제외하곤 없다. 올란도 차량에 탔던 피해자 5명의 유족들은 김씨를 제외하곤 가해자 측에서 단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인 이모(31)씨의 동생은 “가해자 측에서 지금까지 딱 두 번 연락이 왔다”며. “한 번은 1차 공판이 끝나고 왔다. 유가족 중 먼저 합의하는 사람에게 30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원당역 고가도로서 앞서가던 SM5 충돌
알콜농도 0.196% 거의 만취상태로 운전

이어 “김씨에게 찾아가 ‘다른 집 모두 합의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조차 덜고자 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또 “두 번째는 사고 100일 뒤에 문자가 한 통 왔다. 사망자의 명복과 부상자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백일기도한 사진을 보냈는데, 정말 황당했다”고 밝혔다.

유족은 피해자 측이 직접 찾아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하는 게 자식 있는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라는 입장이다. 특히 가해자의 항소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김씨는 “검사가 7년 형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5년 형 선고했다”며 “사람 3명을 죽였는데, 술 먹었다는 이유로 5년 형이 말이 됩니까”라고 격분했다. 이어 “재판 때는 감형을 받으려고, 우리한테는 한 장의 진심 어린 편지도 써주지 않았던 가해자가 재판관한테만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한민국 법은 정말 복수극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솜방망이 처벌
적정한 수위는?

사망자 3명은 모두 30대 초반이었으며, 김씨는 사망한 이씨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그는 “3월15일 오늘은 원래 내 결혼식이었다. 사람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게 법이라고 따라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때 병실에 있던 배선줄로 목을 매어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다.

가해자 의붓아버지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자식과 다르게 작은 설렁탕집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는 의붓아버지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해자 유족을 지금까지 한 사람밖에 찾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 의붓아버지는 “합의를 안 한다고 해서 안 갔다”며 “유족 측에서 나를 죽인다고 해서 살해 당할 것 같아서 못 갔다”고 답했다. 이어 “병원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고, 주위 사람들은 49일이 지나고 가는 게 맞다고 해서 늦게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해자의 친어머니는 어디 가셨으며, 그동안 왜 유족들을 찾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의붓아버지는 “아내까지 유족들 만나러 다녔다간 쌍초상이 난다. 심장이 좋지 않아 충격 받을까 봐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가해자 어머니는 절에서 100일 동안 불공을 드렸으며, 여전히 절에서 사망자의 명복과 피해자의 쾌유를 빌고 있다고 한다. 의붓아버지는 가해자 어머니가 불공드리는 모습을 항소심에서 재판 증거로 제출할 것이며, 공탁금 1억을 법원에 걸어 놨다고 전했다.

“100% 우리의 잘못이니깐 보험 회사에서도 최선의 금액을 주라고 했으며, 보상금 때문에 집도 팔아서 이제 아무것도 없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붓아버지는 “피해자 측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며, 뭘 해도 하나하나 다 서운할 것이다”고 수긍했다. 가해자 측은 형량에 대해서도 “많이 배운 판사들이 정한 것이지 우리가 논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형량? 많이 배운
판사 몫 아닌가”

현행법과 판례를 보면 이번 사건의 판결은 ‘극히 통상적’이라는 게 현실이다. 현행법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상)에 따르면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원동기포함)을 운전해 사람을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였을 때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가들은 쉽게 말해 살인죄도 참작할 동기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4∼6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물며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실수로 죽였는데 “어떻게 형량이 더 나올 수 있겠는가”라는 반응이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형량(처벌수위)을 여러 기준을 고려해 판단한다. 피해 정도뿐만 아니라 공탁 여부와 합의 여부 피해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 등을 보고 판단한다. 피해자 수가 같은 사건에서도 형량이 달리 적용될 수 있다.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한달 지나도 전화 한통이 없어”

판례를 본다면 2012년 대구고등법원은 음주운전으로 2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원심 징역 2년 판결을 파기하고, 가해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 일부를 보면 “가해자가 벌금형 전과 외 다른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과 가로등 조명이 없어 어두웠던 만큼 피해자들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피해자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참작하며 가해자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볌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해 원심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지난 3월12일 김씨는 이 사건을 <다음 아고라>에 ‘이슈 청원’을 했다. 19일까지 약 2200명 의 누리꾼이 서명했으며, 서명 목표 100%를 달성했다. 대부분 누리꾼은 “현행법이 음주운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사건의 가해자가 재범이며, 3명의 사망자를 냈음에도 ‘징역 5년 밖에 안 된다’는 게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최근 잇따른 음주운전 사건·사고로 피해예방을 위해 혈중알콜농도 0.05%에서 0.03%로 줄이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2년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강화해 음주로 인한 사망사고 건수가 2000년 1276건에서 2010년 287건으로 10년 만에 4분의 1로 감소했다.

“판결이 너무해”
네티즌 부글부글

경찰청 교통사고통계에 따르면 한국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0년 1만236명에서 2013년 5092명으로 절반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음주사고 사망자 수는 2000년 1217명에서 2013년 727명으로 감소율이 미흡하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음주사고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11.9%였지만 2013년 14.3%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식사 시 반주 습관과 음주 빈도의 증가로 향후 사망자 비율이 더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속 인터뷰> ‘3명 사망에 징역 5년’ 김기윤 변호사에 물었더니…
“음주운전 사망, 피해자만 억울”

음주운전 사건의 피해자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청원서는 현재까지 2200명이 서명했다. 발의 5일 만에 2000명을 달성한 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잇따른 음주운전 사건사고로 국민들은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강화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나 이번 사건을 진단해봤다.


▲음주운전 형량이 낮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법원에서 유사한 사건을 선고한 판례에 비추어 볼 때, 특별히 형량에서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이 사건 판결에서 국민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이유는 형량이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괴리인 것 같다. 아무리 음주운전으로 3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해도 무기징역을 선고한 예는 드물다. 가장 최근에 나온 판례들만 보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징역 1년에서 5년 사이 정도다.


▲개선해야 하지 않나?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사법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민의식 면에서 지금까지 음주에 무척 관대했다. 억울한 사람이 참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재판부가 이를 참작해 개선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또 막연히 판사한테 형량을 높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판사는 기존의 판례와 양형위원회의 권고 사항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양형위원회도 양형기준을 만들 때 최대한 국민의 의식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국민 법감정이 사회에서 이슈가 되지 못하면 양형위원회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국민의 법감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결국 국민이 음주운전 처벌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게 중요하다. 그건 언론이 보도하거나 <다음 아고라> 같은 곳에서 관심을 끌게 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적 관심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다음 아고라>같은 청원 서명이 효과는 있다. 하지만 당장 가해자의 형량을 높게 선고할 수는 없다. 재판부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중립적인 판결을 한다. 누구의 입장도 더 들어주거나 덜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결국 재판부는 국민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의지와 형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동일할지라도 오늘날에 적용되는 형량은 더 무거울 수 있다. 꾸준히 청원서나 기사를 양형위원회에 보내 양형위원회에서 참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활동들이 사회적 역할의 씨가 될 것이다.

▲그래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데?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피해자만 억울하다. 또 가해자는 형량이 길다는 이유로 항소까지 해 분통이 터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 쌍방이 상소했기 때문에 형량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유족들은 가해자가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황당하고 서운할 수 있다. 가해자 측은 나름 유족들을 뵐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판사도 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재판부에서 피해자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가해자가 피해회복을 위하여 공탁금을 납부한 사실이 있는지, 진지한 반성이 있었는지, 합의를 위해 노력을 하였는지, 피해자의 유족들이 보험금을 수령하였는지 등을 재판부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여전히 법은 음주에 너그러운 편인가?

음주에 대한 처벌이 많이 강화된 편이다. 과거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불구속 수사가 대부분이었고, 판결 선고 역시 집행유예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음주운전으로 연예인들이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에 대해 질타를 받는다. 경찰 수사도 구속수사로 전환됐고, 실형도 많이 선고한다. 점점 강화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그렇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앞으로 음주운전의 최대 쟁점은?

음주운전을 다시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일 것이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재발률은 40%에 달한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아직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편이며, 사회의식이 ‘술 먹고 실수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주에 대한 사회적 문화가 전반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양형이 계속 높아지거나 형사처벌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불이익을 점차 증가하면서도 음주운전을 습관처럼 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음주운전 개선을 국민 개개인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도 음주운전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 및 시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