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비상' 캠퍼스 성범죄 천태만상

새내기 노리는 늑대오빠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대학은 학문의 성과를 상아처럼 쌓아올렸다는 의미에서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렸다. 대학의 높은 지성과 고매함을 추켜세우는 말이다. 대학에 막 입학한 새내기 학생들도 이런 기대와 청운의 꿈을 안고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빛나는 꿈이 무색하게 대학은 성범죄로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서울 유명 사립대 재학생 유정량(가명·25·여)씨는 “최근 대학 내에서 성 문제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민감하고 조심하는 분위기다. 오티에서는 성교육까지 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강대학교 경영대 오리엔테이션(OT)에서 갓 입학한 새내기를 상대로 도 넘은 성희롱 문구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마셔라, 부어라’
그놈의 술이 원수 
 
지난달 25일 서강대 경영대학 재학생과 신입생 300여명은 강원도 평창의 한 리조트에 2박3일간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재학생 선배들은 5개로 방을 나누고 여성의 신체를 빗대 ‘아이러브 유방’ ‘작아도 만져방’ 등 선정적인 이름을 붙였고, 그 아래 방마다 지켜야 할 규칙을 적었다. 
 
규칙 중에는 제일 어린 후배가 한 선배를 지목해 그윽한 눈으로 ‘라면 먹으러 갈래?’라고 말하기가 있었다. 이는 영화에 나온 대사로 “나랑 잘래?”라는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신입 여학생 필수로 대동해 섹시 댄스 추기’ ‘3초 이상 스킨십 하기’ 등 자극적인 문구로 가득했다. 곳곳에는 어린 학생들이 보기에 민망하고, 선정적인 표현이 가득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해당 학생회는 곧바로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 같은 성희롱이 개인의 일탈이 아닌 단과대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공분을 사고 있다. 서강대 경영대는 “다음날 바로 문제를 파악하고 학생회 차원에서 재발방지와 대응에 대해 논의했다”며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온 뒤 학생회에서 약식 사과문을 올렸고, 교내에 사과문을 대자보 형식으로 붙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내 선·후배간 성범죄 사건 잇달아
십중팔구 술 때문에…핑계도 가지각색
 
요즘 대학가 술집은 갓 입학한 앳된 신입생과 술자리를 주도하는 학교 선배들로 꽉 차 있다.  
선배들이 나서 새내기들의 대학생활 적응을 도와준다는 취지로 만든 새내기배움터, 엠티와 각종 술자리는 새내기들의 성범죄의 취약지대로 지적받고 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위원은 “신입생들 경우 이전에 형성된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약자이기 때문에 성범죄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들은 대학 내에서 성 관련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술·놀이 문화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술을 마시며 흔히 말하는 ‘왕게임’이나 각종 술 게임을 하며, ‘볼에 뽀뽀하기’부터 ‘키스하기까지’ 수위를 넘나드는 스킨십 벌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새내기들은 싫어도 티를 내지 못한다. 선배들에게 모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정수민(가명·22·여)씨는 “초반에는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했다. 종종 술 게임을 하면서 ‘이건 좀 아니다’라고 싶었지만, 벌칙도 군말 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한국정책연구위원은 “술 게임이 벌어지는 분위기에서 집단의 놀이문화에서 소외되기 싫어서 성희롱 위험이 있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대 여성연구소에 의뢰한 대학생 성희롱·성폭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280건의 학내 성범죄 발생장소 중 술집 등 학외 유흥공간이 15%인 4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학내 공공장소(22건), 엠티·수련회 등 (20건) 순으로 나타났다.
 
“내가 챙길게”
오빠 본심은?
 
‘선배를 조심하라. 그 중에서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 선배를 특히 조심하라’는 흔히 대학가에서 나오는 말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김정순(가명·25·여)씨는 신입생 때 갓 군대에서 제대한 복학생 선배와 잠깐 사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과 술자리에서 처음으로 그 복학생 선배를 만났다”며 “당시 그 선배가 나한테 무척 잘해줬다. 내가 벌주를 마실 때 대신 마셔주며, 그날 집까지 바래다줬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있지 않아 나한테 고백했는데, 나도 좋은 마음으로 사귀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학생 선배는 사귄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아 김씨의 주요 부위를 스킨십 했다. 당시 김씨는 불쾌했지만, 사귀는 사이니깐 어느 정도까지는 허락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귄 지 한달 즈음 복학생 선배는 김씨에게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에 김씨는 이를 받아드릴 수 없어 결별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당시 느꼈던 게 “결국 나랑 그 짓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김씨는 영리하게 해결한 경우다. 
 
예나 지금이나 
“당하고 후회”
 
지난 6일 <국민일보>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학교 1학년인데 대학 선배랑 잤어요’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글쓴이는 “이틀 전 얘긴데 계속 뒤숭숭해서 글을 올린다”며 사연을 풀었다. 그는 “어쩌다 알게 된 25살 먹은 선배인데 ‘너를 왜 이제 만났느냐’ ‘너 같은 후배가 제일 좋다’하며 자신을 띄워주기에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며, “주량이 센 편인데 그 선배가 권하는 술을 받아먹다 취해버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같은 동네 사는 친구에게 챙겨달라고 부탁했는데 기억이 끊어졌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가 나를 챙긴다며 모텔로 데리고 갔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잠자리를 갖고 일어나 보니 선배는 사라지고 없고 동기를 통해 ‘바빠서 연락 못했으니 집에 잘 들어가라’는 내용의 카톡만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술 때문에 몸을 챙기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없던 일로 하려고 하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힘들어했다. 
  
지방의 모대학교 대학생 남녀 10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희롱 피해경험 규모를 보면 ‘술자리에서 남성 사이에 끼어 앉거나 술 시중을 들게 하는 경험’이 여성은 104명(21%), 남성은 16명(3%)이며, 여성에 대한 가해자는 선배가 가장 많았다.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신체접촉 당한 경험’은 여성은 86명(17%), 남성은 16명(3%)인데, 여성에게 가해행위를 하는 사람 중 62%가 ‘선배’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학 내 선·후배간 술자리에서 성 관련 문제는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암암리에 서로 덮거나, 혹자는 ‘쿨’하게 잊는다고 한다.
 
여전한 폭탄 음주문화

정신 차리니 게임 끝!
 
지난 11일 서강대의 논란에 대해 이상근 서강대학생문화처장명의의 입장 자료를 내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하게 진상을 파악해 그 결과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서강대의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성범죄 관련 상담 건수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강대 측은 “상담 실적이 한 건이던 두 건이던 개인의 비밀보장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며 “학교 정보 노출 우려도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일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 소속 박주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3일 교육부에 ‘최근 5년간 대학 내 성범죄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일주일 후 박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작년까지 4년제 대학의 성범죄 건수는 100건으로 집계됐다. 
 
숨기기 바쁜 학교
나몰라라 교육부
 
문제는 통계에 잡힌 대학이 78개교로 전국 4년제 대학(198개)의 3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특히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에는 최근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서울대와 고려대가 포함돼 있다. 
 

자료 제출이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교육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도 대학의 성범죄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성범죄에 관한 통계는 국회 등에서 요구할 때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대학 내 성범죄 정책을 세우려면 기본적 통계는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 의원은 “통계로 현실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대안을 만들 수 없다”며 “최근 대학교수의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부는 기초적인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2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시각 미술을 전공하는 에마 셀코위츠는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남학생에게 강간 당했다. 이후 그는 다른 피해 학생들을 만나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대학 당국의 조사위원회에 참석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지난해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남학생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그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대학 측에 항의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매트리스를 들고 다녔다. 자신을 강간한 남학생이 학교를 떠나기까지 매트리스를 들고 캠퍼스를 돌아다니겠다고 밝혔다.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이유를 물었고, 함께 매트리스를 들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기숙사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나와 시위를 벌였다. 이 사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다른 대학에 퍼졌고, 매트리스는 성폭행 피해 고통에 대한 연대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10월29일 전국 행동의 날에는 아메리칸대학 등 미국 내 다른 대학뿐만 아니라 헝가리 등 외국 캠퍼스에서도 침대 행렬이 이어졌다. 그런데 왜 침대일까.
 
설코위츠는 학내 언론 컬럼비아데일리스펙테이터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강간을 당한 뒤부터 그 경험은 내게 무거운 짐이 됐고, 어디를 가나 짊어져야 하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침대는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을 때 물러나 있을 수 있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지만, 지난 1∼2년간 내 삶은 그 은밀한 곳을 모두 드러내 보여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니인터뷰] 캠퍼스 성범죄 심각성 알리는 원준재 인하대 성평등상담소장
“아직도 피해자 처신을 탓합니까”

 
▲대학 성범죄가 만연하는 이유는?
대학뿐만 아니라 사람이 만나는 곳이면 성범죄는 발생한다. 최근 대학의 사건들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지성의 상징이라는 캠퍼스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수준의 범죄라도 대학이 아니고 기업체나 직장이라면 언론에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처신을 잘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의식이 변화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성 관련 문제가 불거진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조용히 덮었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사건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성범죄 예방교육의 효과로 피해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전보다 긍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신고도 전보다 증가했다. 젊은 세대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장이 이전의 세대보다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을 방증한다. 
 
▲과거에도 많았나?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지금 신고하는 사건 중에는 몇 년 전만 해도 신고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다. 예를 들어 남학생 간의 성추행사건은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던 사건들이다. 또 피해자가 흔히 여성이라고만 생각하기에 남성 피해자들은 신고하지 못했다.
 
남성 피해자가 신고하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답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남성 피해자가 신고해도 ‘많이 괴로웠겠다’라고 이해하는 인식이 높아졌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 당시 피해자는 그냥 ‘재수가 없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여기고 넘기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학교에서 선·후배 간의 성추행을 그냥 넘겼던 것과 같다. 
 
▲ 대학 내 성범죄 집계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학 내 성범죄 집계가 어려운 이유는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칫 사건이 알려지면 피해 당사자가 사회적으로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 2차 피해란 아직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냉기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공개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게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피해 당사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담당자들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밀보호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또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대학교나 기업이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 때문에 쉽게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고려대나 서울대의 경우 성범죄 관련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두 학교가 다른 학교보다 성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성희롱·성폭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성희롱이 발생하였을 때 바로 ‘안 돼요! 하지 마세요! 그만두세요! 이런 행동은 성희롱입니다!’ 등의 분명한 표현을 상대방에게 해야 한다. 성희롱과 친근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적 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이 불쾌하다면 ‘그만하는 게 좋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폭력은 예방이 최고다.
 
원치 않게 사건이 발생하면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나 전문기관에 연락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또 신고를 통해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가 점점 팍팍해지더라도 인간으로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계속 교육돼야 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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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