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권이 여론조사 신뢰성 문제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여론조사가 각종 선거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지만 동일한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 날 실시한 여론조사마저 판이하게 다른 결과가 나올 정도로 그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여론조사 조작은 가능한 것일까? 정치권 여론조사 전쟁의 막전막후를 살펴봤다.
“질문 내용만 살짝 바꿔도 순위가 바뀌는데 여론조사 공천을 누가 순순히 받아들이겠나? 어떤 방식이든 공천 잡음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정치권이 여론조사 신뢰성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여론조사가 각종 선거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신뢰성을 검증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달라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의 측근인 강연재 변호사는 지난달 3일 전당대회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문재인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여론조사 결과를 믿는 여론이 별로 없을 것 같다”며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또 강 변호사는 해당 여론조사를 발표한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대해 “이 기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을 계속 조사해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누가 의뢰하고 조사비용을 내는지 상당히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리얼미터 측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도 문 대표가 별다른 이슈도 없이 그것도 하필 전당대회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추월한 것은 수상하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여론조사는 단순한 인기도 조사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과제별 적합도를 측정하는 여론조사 방식을 생각해냈다. 다소 새로운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니 문 대표가 1위를 차지한 것일 뿐 문 대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해당 여론조사를 기획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의 발언처럼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정치권의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한 상태다. 일례로 새정치연합 당대표 후보들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거의 동일한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날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각 후보 캠프마다 판이하게 다른 결과가 나와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
또 최근 여야는 정당지지율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이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새누리당(34.7%)과 새정치연합(33.8%)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3.1%) 내로 줄어들었다며 공세를 펼치자, 새누리당은 즉각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새누리당(42%)과 새정치연합(29%)의 지지율은 아직도 상당한 격차가 있다며 반박한 것이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의 조사표본이나 질문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화 착신 전환 등의 방법으로 당내 경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한 사건 등 여론조사 왜곡 사례 4건을 적발해 고발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부 여론조사 중에는 질문지만 살펴봐도 어느 쪽에서 의뢰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편파적인 경우도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 자체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겠지만 질문 내용을 살짝 바꾸는 정도로도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너무 낮은 여론조사 응답률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응답률이 10%를 채 넘지 못하는데 1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무려 90명 이상은 그냥 전화를 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못 믿을 여론조사에 정치권 '부글부글'
여론조사 조작 가능성은? "방법은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여론조사 맹신은 절대적이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오는 4월29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를 100%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내년 총선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의 정치적 실험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친박계와 친이계가 여의도연구원장 자리를 놓고 1년 넘게 싸우고 있는 것도 다 여론조사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당초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지명했으나 친박계의 강력한 반발로 아직까지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지난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이 비례대표로 영입했지만 세종시 문제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까지 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게 되면 여의도연구원이 실시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친박계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여론조사 시 조사문항을 어떻게 만들지, 지역별 또는 세대별 가중치를 얼마나 둘 것인지 등의 판단은 모두 연구원의 고유권한이다.
친박계는 이미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 학살을 당해 본 경험이 있다. 당시 친이계가 친박계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며 내민 근거자료도 여론조사 결과였다.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사정도 비슷하다. 친노계는 각종 선거 때마다 일반 당원 및 국민 여론조사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당헌에 명시된 ‘국민네트워크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도 내년 총선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오락가락 결과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여론조사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1인 인지도 조사를 빙자해 후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공표해 여론조사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경우를 막기 위해 1인 인지도 조사를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새정치연합 민병두 의원도 가상휴대전화번호(안심번호)를 이용한 휴대전화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안심번호를 이용한 여론조사방법은 피조사자의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고, 응답자의 전화번호와 거주지역이 연계될 수 있어 여론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 민 의원 측의 설명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무조건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론조사를 아예 배척하자는 것은 말 그대로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며 “신뢰할 수 없다고 여론조사를 배척하기보다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