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난 2·8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문재인 신임 당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분위기 쇄신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치르며 벌어질 대로 벌어진 계파갈등을 수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 안팎에선 새정치연합이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를 치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문 대표 취임 이후 더욱 힘을 받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분당론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박지원처럼 우리도 결국 당할 것이다.”
지난 2·8전당대회를 지켜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비노계(비노무현계)의 반응이다. 문재인 대표와 막판까지 박빙 승부를 펼친 박지원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일부에서는 저보고 반드시 속는다고 한다. 손학규, 안철수 전 대표가 당했고, 세 번째가 제가 될 것이라고 하더라”며 친노세력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었다.
친노 당 장악
강한 적개심
그런 박 의원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친노(친노무현)진영은 전당대회 막판 국민여론조사 경선 룰을 변경했고, 전당대회 투표결과는 국민여론조사에서 결정적으로 갈렸다. 때문에 당내에서는 문 대표 측이 비판을 무릅쓰고 국민여론조사 경선 룰을 막판에 변경한 것은 국민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을 미리 알아챘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당대회가 끝난 후 박 의원은 결과에 승복했지만 비노진영에선 이에 대한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당대회 관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노에 의한 친노를 위한 친노의 전당대회였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경선 룰까지 변경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문 대표는 계파의 기역 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하지만 이런 당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친노 '그들만의 리그'에 비노 반감
국민여론조사 신뢰성에 의구심
문 대표는 취임 이후 새정치연합의 분위기 쇄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물밑에선 분당 논의가 오히려 더 활발해졌다는 후문이다. 박 의원은 실제로 전당대회 과정에서 “탈당을 권유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친노가 당 장악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문 대표는 취임 후 대표 비서실장과 당 대변인에 각각 비노계로 분류되는 김현미 의원과 유은혜 의원을 발탁했다. 문 대표가 첫 인선에서부터 탕평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문 대표는 향후 당직 인선에서도 탕평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친노진영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계 입장에서는 문 대표의 당선을 위해 힘을 모았는데 비노진영 인사들만 주요 직책에 발탁하면 불만이 쌓일 것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 대표는 지금 친노와 비노 사이에서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과연 문 대표가 총선 때까지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슬아슬 조마조마
줄타기 언제까지?
비노진영으로서는 내년 총선 공천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전당대회에서도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경선 룰 변경을 시도하는 친노세력이 과연 공정한 공천을 해줄 것이냐 하는 우려다.
비노진영에선 경선 때마다 친노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국민여론조사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실제로 안철수 의원 측 인사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강연재 전 부대변인은 지난 3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해당 여론조사에서 문 대표는 갑자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치고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1위를 차지했다.
강 전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를 믿는 여론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이 기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을 계속 조사해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누가 의뢰하고 조사비용을 내는지 상당히 궁금하다”고 말했다. 해당 여론조사기관은 근거 없는 모함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시사하고 나섰지만 정치권에서도 반 총장에게 지지율이 크게 밀리고 있던 문 대표가 특별한 이슈도 없이 갑자기 1위에 오른 것은 수상하다는 반응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내 경선 때마다 친노진영이 다른 항목에서는 모두 지고도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겨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친노진영은 선거만 다가오면 여론조사 비율을 늘려야 한다며 막말로 깽판을 치고 있다”며 “비노진영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를 이미 잃었다. 이런 행태가 계속된다면 비노진영도 결국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도 여론조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여론조사 결과가 민심과 직결되는지는 의문이다. 친노는 적극적인 지지층이 있지만 확장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그래서 친노는 당내 경선은 이기고도 늘 본선에서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친노 방식대로 경선을 치르자는 것은 결국 친노만 본선에 내보내자는 것이고 막상 본선에서는 새누리당에게 다 내주자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문 대표의 불안한 리더십도 새정치연합의 분당론이 힘을 받고 있는 이유다. 문 대표는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하지만 신임 최고위원단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전원 불참했다.
문 대표는 중도층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마련한 야심찬 행보였지만 신임 최고위원단의 전원 불참으로 중도층의 표심을 얻는 데도 실패하고 취임 첫날부터 체면만 구겼다. 특히 친노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유대인이 히틀러에게 참배한 격”이라며 문 대표를 강하게 질타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가 사실상 친노진영조차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도층을 잡아야 하는데 대부분 좌클릭 되어 있는 친노진영 인사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문 대표가 대선행보를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이번 같은 잡음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로서는 친노진영을 컨트롤 하는 동시에 취약한 당원 지지기반을 추스르는 것도 당면한 과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심은 문 대표에게 등을 돌렸다. 게다가 호남민심이 문 대표와 친노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된다. 친노로 분류되는 서갑원 전 의원은 지난해 전남 순천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패하기도 했다. 야권의 정치기반인 호남이 제1야당에게 등을 돌리면 이틈을 파고들어 분당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리더십 흔들
등 돌린 호남
고작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4·29재보선도 새정치연합의 분당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실정을 반복해 쌓은 반사효과에 가깝다. 이 같은 지지율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지속되기 어렵다. 당장 당내에서조차 문 대표가 전당대회 기간 철저한 성찰도 없었고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 문 대표가 과연 4월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에 재보선이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을 등 3곳은 모두 야당 강세지역이다. 패한다면 문 대표의 리더십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또 문 대표가 야권연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가운데 외곽에서는 국민모임 등의 신당과 정의당까지 독자후보를 내겠다는 방침이어서 선거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계파의 기역 자도 정말 안 나올까?
외곽에서는 신당 움직임 가속화
문 대표는 그간 선거에서 별다른 표몰이를 하지도 못했다. 문 대표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박 대통령이 전국을 누비며 총선을 진두지휘할 때 자신의 활동반경을 낙동강 벨트로만 국한시키고 PK사수에 올인했다. 하지만 성적은 자신을 포함해 부산 2석, 경남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전체적으로 불리했던 선거 판세까지 단숨에 바꾸며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박 대통령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문 대표가 당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당대회 출마를 강행한 가장 큰 명분은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하면 친노와 비노진영 간 책임론 공방으로 계파갈등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문 대표는 지난해 7·30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처럼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정치권은 새정치연합의 다른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당권도 갖고 대권도 가지면 우리 당의 정세균·손학규·안철수·조경태 이런 분들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라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4월 재보선
시험대 오른 문재인
문 대표는 대선 전 당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대권주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측근인 문병호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현재 당내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전혀 없다. 때문에 안 의원 주변에서는 안 의원의 탈당을 종용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안 의원 측 인사들은 이미 외곽에서 ‘새울림’이라는 정치 조직을 정비하며 세 불리기에 나섰다. 안 의원은 이들과 선을 긋고 있지만 아직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안 의원의 측근인 이계안 전 의원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어 당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 대표는 취임 이후 계파갈등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새정치연합의 분당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문 대표 ”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