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제1야당이 무너지고 야권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 레이스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작 정치권의 관심은 딴 곳에 가있는 듯하다. 이른바 야권 재개편론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이 탈당한데 이어 지난 22일에는 새정치연합의 창업주 안철수 의원의 측근들이 신당 추진을 위한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정말 야권 춘추전국시대는 열리게 될까?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20년 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와 상황이 똑같다. 당시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전에 언론사들이 성수대교를 포함한 한강교량의 문제점을 집중보도했는데 당국은 늘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안이하게 대처하다 결국 사고가 났다. 지금도 언론에선 우리 당이 깨질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당 지도부만 무사태평이다.”
안이한 대처
야권 핵분열?
지난 6일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동영 전 의원의 탈당설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그 분은 구당하겠다는 것이므로 나갈 리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불과 5일 뒤 탈당을 선언하고 진보진영의 신당추진모임인 ‘국민모임’에 합류한다.
이에 대해 한 정치부 기자는 “당시 기자들은 이미 정 전 의원이 탈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시점인데 문 위원장이 그런 발언을 해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정보가 느린 것인지 궁금했다”며 “어찌됐든 당 안팎으로 분당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당 지도부가 너무 둔감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그런 당 지도부의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언론에선 매일 같이 새정치연합의 분당설과 야권 신당 창당설을 보도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그럴 리가 없다”는 한결같은 반응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대는 흥행실패, 그 이후가 더 궁금
심상치 않은 새정치연합 내부 분위기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느긋한 대응과는 달리 정치권에서는 이미 새정치연합을 둘러싼 각종 분당 시나리오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당권 주자인 박지원 의원조차 공공연히 분당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의원은 지난 20일 전북 합동연설회에서 “문재인 의원이 당권과 대권을 다 갖겠다는 것은 꿩 먹고 알 먹고 국물까지 다 잡수시겠다는 것”이라며 “문 의원이 당권과 대권을 다 차지하면 정세균, 김두관, 김부겸, 박영선, 박원순, 손학규, 안철수, 조경태, 천정배 이런 분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 문 의원이 대표가 되면 당은 초토화가 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 “분당 후 반기문 UN사무총장과 함께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며 당 안팎에서 적극적인 분당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공생할까?
공멸할까?
이미 구체적인 분당 움직임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정치연합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은 이미 탈당을 선언하고 신당 추진모임인 국민모임에 합류한 상태다. 국민모임에는 정 전 의원뿐만 아니라 최규식·김성호·임종인 전 민주당 의원과 유원일 전 창조한국당 의원, 최순영 전 민노당 의원도 합류하기로 했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낸 중진 의원인 천정배 전 의원도 참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모임은 정의당과의 연대 가능성까지 타진하고 있어 외곽에서의 신당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새정치연합의 창업주인 안철수 의원의 측근들이 신당 추진을 위한 원탁회의를 개최해 화제가 됐다. 가칭 ‘신당 추진을 위한 원탁회의’(이하 원탁회의)는 이날 향후 신당 창당 여부와 정치적 노선 등을 폭넓게 논의 했다. 원탁회의에는 윤석규 전 새정치추진위 전략기획팀장과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강동호·지재식 전 기획위원, 정기남 전 새정치추진위 공보팀장, 강연재 전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안 의원은 측근들의 돌출행동일 뿐이라며 원탁회의와 거리를 뒀지만 최근까지도 안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강연재 전 부대변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원탁회의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분당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이미 정동영 전 의원이 참여했었던 ‘구당구국 모임’과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 중도 성향 의원들은 야권 재편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 정대철 상임고문도 최근 여러 차례 “중도 신당을 통해 지지층을 중도·보수까지 확장해야 한다”며 중도 신당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당장 다가오는 4월 재보선은 야권 재개편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치러지게 되는 4월 재보선은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중원, 광주 서구을 등 3곳에서 치러진다. 기존에 통진당 의원들이 지역구를 갖고 있었던 만큼 모두 야권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이겨도 본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4월 재보선은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어 치르게 되는 첫 선거다. 2·8전당대회 이후 재보선을 준비할 시간도 비교적 충분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새 당 대표로서는 단 한 곳만 빼앗겨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만약 두 곳 이상 빼앗긴다면 조기 퇴진론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까지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전패하기라도 한다면 지금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안 된다며 당 안팎의 분당 움직임에 힘이 실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4월 재보선의 판세는 결코 새정치연합에 유리하지 않다. 서울 관악을과 경기 성남중원은 물론이고 호남 텃밭인 광주 서구을 선거조차 장담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현재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서울 관악을에 출마시키고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각각 경기 성남중원과 광주 서구을에 출마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거물급 인사들이라 이들의 출마가 성사된다면 아무리 야권 강세지역이라고 해도 새정치연합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동영 전 의원의 참여로 힘을 받고 있는 국민모임도 4월 재보선에 후보를 낼 것으로 알려지면서 야권표 분열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모임에서 거론되고 있는 출마 예상자들도 만만치가 않다. 당사자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권에서는 서울 관악을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 성남 중원구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광주 서구을 천정배 전 의원 등의 출마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비판하며 신당 창당을 추진한 국민모임인 만큼 새정치연합과 후보를 단일화할 명분도 마땅치 않고, 선거에 임박해 단일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오히려 표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정윤회 문건 파동과 담뱃세 인상 논란 등으로 연일 하락하고 있지만 새정치연합은 반사이익은커녕 오히려 새누리당보다 지지율이 더 떨어져 선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 19일 발표된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39.3%로 전주대비 1.5%p 하락했지만 새정치연합은 21.2%로 전주대비 2.4%p 하락했다.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015년 1월12일부터 16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CATI) 및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으로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우후죽순 신당
최후의 승자는?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이 재보선 목표에 대해 이례적으로 “3곳에서 전부 승리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때문에 일각에선 재보선 결과에 따라 5~6월에도 분당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른바 ‘6월 분당설’도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결정타는 내년 4월에 치러지게 될 20대 총선이다. 현재 친노(친노무현)계의 좌장격인 문재인 의원이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당직 인선과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난다면 새정치연합 내 분당 움직임은 본격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총선에서 참패하기라도 한다면 분당을 막기 위한 백약이 무효할 것이란 분석이다.
안철수계 외곽서 중도 진보정당 추진
4월 재보선 이후 야권 핵분열 할까?
또 문 의원이 당권을 잡을 경우 호남 3선 이상 중진들이 물갈이될 것이라는 ‘호남 3선 물갈이론’이 제기돼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계기로 호남신당이 창당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비록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이번 전당대회에는 박주선, 김동철 등 호남권 비노계 인사들이 대거 출마해 눈길을 끌기도 했었다.
따라서 문 의원이 당권을 잡은 후 내년 총선에서 이들을 물갈이 하면 결국 이들이 당을 뛰쳐나와 호남신당을 만들 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들이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만큼 이들로서는 당이 자신을 내친다면 굳이 당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정서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박주선 의원의 경우는 이미 지난 19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하자 탈당한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던 전력이 있다.
이처럼 야권 내에서는 ‘국민모임’과 ‘안철수계 신당’을 비롯해 ‘비노계 중도 신당’, ‘호남 신당’ 등의 출현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연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단 안철수계 신당은 국민모임의 노선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며 국민모임과는 연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를 전후로 야권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야권 춘추전국시대
이제 곧 열린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 내부에서는 친노와 비노계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데 더 이상 함께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자성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며 “어차피 현재 지지율로는 다음 총선 때 수도권은 물론이고 텃밭까지 뺏길 수 있다. 서로 자기 말만 옳다고 악을 쓰고 있으니 각자 신당을 만들어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을 둘러싸고 분당 이상 징후가 계속 포착되고 있는데 당 지도부는 제1야당 프리미엄만 믿고 있는 듯 하다”며 “새정치연합의 혁신이 계속 늦춰진다면 언젠간 야권 지지자들도 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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